짧은 순간, 나른한 기운에 살짝 졸았다고 느낀 신우는 이제 부모님께 가야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신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란 신우의 가슴이 높은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며 가라앉듯 철렁 내려앉았다. 동생을 잃어버려 부모님께 혼날 생각부터 번뜩 떠오른 신우는 주변을 뛰어다니며 신아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아는 온데간데없었다. 국화빵을 샀던 트럭까지 뛰어온 신우에게 아저씨가 말을 건넸다.
“얘야, 뭘 그렇게 찾아다니니?”
“제 동생이요! 아저씨, 혹시 아까 저랑 같이 있던 여자아이 못 보셨어요?”
“흠, 글쎄다. 저쪽으로 가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아저씨가 친절하게 광장에 있는 상생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우는 감사하다는 말도 잊은 채 광장 쪽으로 내달렸다. 사람들로 가득 찼던 광장은 이제 한산해져 있었고, 거대한 조각상 앞에 아까는 보이지 않던 노란색 미니버스가 서있었다. 순간 신우의 눈에 버스에 타고 있는 신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신아는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신우는 단숨에 버스 앞까지 다가갔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버스기사는 작은 돋보기안경 너머로 손에 든 서류를 꼼꼼히 살피느라 입구에 신우가 서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올해는 손님이 이렇게 없나!”
“저... 실례합니다. 동생이 버스에 몰래 탄 것 같아서요... 데리고 내려와도 괜찮을까요?”
버스기사는 정신없이 서류를 보며 혼자 계속 중얼거렸다.
“이 버스를 맡고 나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다들 어떻게 할 생각들인지 원.”
신우는 버스 기사가 눈치 채지 못하게 신아를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살금살금 버스에 올라탄 신우는 신아에게 다가가면서 버스 안을 살펴보았다. 밖에서 봤던 평범한 모습과는 달리 버스 안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의자와 울퉁불퉁한 창틀이 붙어있는 창문들로 꾸며져 있었다. 버스기사가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는 운전석에는 수많은 버튼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버튼이 꼭 조개 모양 같네.’
신아는 안전벨트까지 하고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신아야! 너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일어나!”
신우는 버스 기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소리치며 신아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신아는 요지부동이었다. 신아를 안고 내려가는 것이 빠르겠다고 생각한 신우가 신아의 안전벨트를 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풀 수 없었다. 그때 버스 안에 방송이 흘러나왔다.
“버스가 곧 출발하오니 승객 여러분은 자리에 앉아 벨트를 착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저기요 저희는 승객이 아니라고요! 기사님! 저희 좀 내려주세요!”
당황한 신우가 울먹이며 소리 질렀다. 또다시 방송이 나왔다.
“버스 출발 후 서 계시면 위험하오니 승객 여러분은 반드시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갑자기 신아가 앉아 있는 의자의 옆자리에서 초록색의 긴 벨트가 뻗어 나오더니 신우의 팔을 휘감고는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신우는 빨려 들어가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벨트는 신우의 몸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신우가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버둥거릴수록 끈적한 벨트는 점점 조여왔다.
‘이... 이게 뭐야? 윽 비린내.’
“부르릉!”
버스는 시동이 걸리자마자 출발했다.
“아, 안돼요! 엄마! 아빠!”
차창 밖으로 아직도 주차장에서 마주 보고 싸우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신우는 이대로 영영 부모님을 못 만나게 될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는 버스지? 분명히 우리가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혹시... 납치?!’
눈에 보이는 곳에서만 놀고 있으라는 엄마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겨우 팔을 뻗어 옆에 곤하게 잠들어있는 신아의 손을 꼭 잡은 신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아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버스는 이제 바다 쪽의 광장 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버스기사는 국화빵 트럭 옆에 잠시 차를 세우고는 차에서 내렸다. 신우가 국화빵 아저씨를 향해 소리쳤지만 버스 문이 닫혀있어 닿지 않았다.
“국화빵 하나, 아니 두 개만 주시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하나로는 부족해. 스멀스멀 멀미가 올라온단 말이지.”
“고생이 많네 친구. 여기 있네. 조심하게. 방금 구워서 뜨끈뜨끈하다고. 그럼 안전 운전하게나.”
“알았네, 내년에 또 봄세!”
국화빵 두 개를 후후 불어 입에 넣은 버스기사가 입을 우물거리며 다시 버스에 오르자 버스 안에 있던 모든 창문이 닫히고 비어있는 좌석들이 가운데로 뭉쳐지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우지끈!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비어있는 공간만큼 버스 크기가 줄어들었다. 신우와 신아가 나란히 앉아 있는 좌석과 운전석이 훨씬 가까워져서 버스 기사가 혼잣말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렇지! 이래야 더 빠르거든. 아직 녹슬지 않았군 그래.”
갑자기 버스가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신우는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했다.
“여기 멀미약을 안 먹은 친구가 있군. 고생 좀 하겠는데! 허허허”
버스가 도는 것을 멈추자 신우는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차창 밖에는 바다에 있는 상생의 손의 손바닥이 보였다. 버스는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점점 육지와 멀어지던 버스가 어느 순간 우뚝 멈춰 섰다. 신우는 이제 정신을 차리고 있을 힘도 없었다.
“자 여기서부터가 진짜 여행의 시작이지. 꽉 잡는 게 좋을 거야!”
버스가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더니 쏜살처럼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곧장 바닷물에 처박힐 것 같았다. 신우는 작년에 놀이공원에서 청룡열차를 처음 탔을 때 느꼈던 두려움이 떠올랐다.
“첨벙!”
버스가 바닷물과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 충격으로 의자가 들썩거렸다. 신우는 정신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차창 밖으로 산호초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좀 더 멀리에서 거대한 벽 같은 물체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지만 신우는 자세히 볼 여유가 없었다. 신우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