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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Aug 08. 2018

틴더 프로필에 당당하게  '나는 페미니스트'

페미는 널 해치지 않아요.

베를린에서 틴더를 할 때 친구가 알려준 팁이다.

"Bio(자기소개)에 I'm a Feminist라고 적어놔. 그럼 어느 정도 거를 (?) 수 있어."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해치지 않는다. 나는 헤테로 섹슈얼 여성이고 남자가 너무(;) 좋다. 그렇다면 왜 일부 남성들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겁을 먹는 걸까?

* 찔리는 게 많을수록 그렇다는 게 솔직한 내 생각이다.


나는 지난 10년간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는 헤테로 남성들과 연애를 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길어봤자 3년? 그러나 '페미니스트 자각' 전후가 딱히 달라진 건 없다. 그냥, '이런 걸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거구나. 그럼 난 페미니스트네.' 하는 정도.




데이트를 하다 보면 '성차별'을 주제로 이야기가 언젠가 나오기 마련인데 나는 늘 먼저 미끼를 던진다.

(내가 남자를 거르는 두 가지 기준은 성차별주의자와 옐로피버다. 당연히 옐로피버용 미끼는 따로 있다.)

"독일이 한국보다 나은 줄 알고 왔더니 아니 글쎄 임금격차가 생각보다 심하지 뭐야? 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의 78퍼센트밖에 안돼!"


(관련 기사 : https://www.ft.com/content/e9f618c0-f210-11e7-ac08-07c3086a2625 )


* 참고로 대한민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중 최고다.

링크 : https://data.oecd.org/earnwage/gender-wage-gap.htm


성별 임금격차에 대해 주제를 던졌을 때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 음, 하지만 여자는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일을 관두기도 하고...

- 독일이 그렇게나 임금차별이 심해? 실망이네 :(

첫 번째 대답이 나온다면 너 이 자식, 아웃이다. 두 번째 경우라면 조금 더 대화해 볼 가치는 있다.

"몰랐어? ^^ 그러면 너는 동일한 능력의 여성, 남성이 임금격차가 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로 이어져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경력단절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놈을 다음에 또 볼 지 오늘로 끝일지 판가름이 난다.




베를린에 사는 여성들의 페이스북 그룹에서 성차별에 대한 말이 종종 나오는데 '독일은 이런 쪽에서는 전혀 진보적이지 않아.'라는 댓글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실제로 몇몇 독일 여성들도 '독일 남자들이 대체로 쫌...;;'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내 기대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하여튼 조금 실망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베를린인 만큼 꼭 독일 남자만 그렇다는 건 아니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칠레, 아르헨티나,... 그냥 온 지구 남자들이 다 그렇다.)


한 번은 대놓고 "너 페미니스트야? 난 그거 반댄데ㅋ"하고 말하는 멍청한 놈을 만난 적이 있다. 데이트하는 여자 앞에서 이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껄였다는 사실도 놀랍고 마치 흥미롭다는 듯이 이 주제에 대해 나와 (감히) 얘기해보고 싶어 하는 그 자식의 태도가 너무 거슬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와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차별에 대해 충격받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남자도 있었다. (사실 몰랐다는 것도 짜증 나긴 한다.) "내가 이런 기사를 봤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왜 잘못된 건지 알겠어." 라던가, 나도 몰랐던 여성의 날에는 먼저 꽃을 주기도 하고. 반사회적인(?) 나의 툴툴거림을 참 잘도 들어줬다. 진짜로 내 불평에 공감하는지, 그저 좋아하는 여자애가 하는 말이니 조신하게 들어주기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화를 무척 좋아한다. 중동의 분쟁이나 러시아의 전투기가 얼마나 멋진지를 빼고 웬만한 얘기는 다 한다. 대화가 잘 통해야 오래 만날 수 있기도 하고.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말할 때는 절대적으로 내 말을 '잘 들어주는' 남자가 좋다. (니들이 무슨 할 말이 있어!!) 왜 여자들이 그렇게 불만이 많은지 궁금하면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칼럼을 찾아보던가 책을 읽던가 테드 강연이라도 보라고 하지 절대 내가 설명해주지 않는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나를 Strong Feminist라고 했다. '너 같은 페미 처음이야 (두근).'인 걸까? 나처럼 게으른 사람(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하게 말하긴 하지만 딱히 공부를 한다거나 활동을 하는 건 없다.)에게 그런 말을 할 정도라니, 너와 내가 살아온 29년이 얼마나 달랐나 싶고, 참 기분이 별로다.  




처음부터 페미니스트인 나를 드러내면 남자들을 걸러내는 것이 한층 쉬워진다. 페미니즘은 헤테로 연애에 있어  결코 걸림돌이 아니다.  하지만  "나도 페미니스트야!"라고 하는 남자는 신뢰가 가지 않고  "난 페미니스트 별룬데ㅋ" 하는 남자도 당연히 싫다. 남자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하여튼 이런 놈들과는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기도 싫다.


연애가 아닌 캐주얼한 만남이라도 일단 내가 즐거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초반에 더 드러낸다. 갈 놈은 빨리 가라!! 기왕이면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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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고 쉬운 연애 방법에 대하여 #01

연애는 즐거우려고 하는 겁니다.

https://brunch.co.kr/@tranderlan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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