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승부의 세계
U-20 월드컵 기간의 마지막, 2019년 6월 16일 우리나라 시각 오전 1시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을 2시간 앞두고 현재 시간 6월 15일 밤 11시에 독일 축구 영화 한 편 소개합니다.
대표
월드컵, 그리고 축구. 듣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단어입니다.
본 영화 <베른의 기적>은 월드컵을 배경으로 한 스포츠 영화이지만 그 이상의 감동과 메세지를 안겨주는 영화입니다.
평상시 프로 축구 경기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가 월드컵에 열광을 하는 이유는 바로 국가의 자존심을 건 총성 없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오프사이드 룰을 제외하면 손을 제외한 모든 몸의 부위를 이용하여 공을 운반해서 승부를 가리는, 별도로 공부할 것 없이 삼척동자도 이해 가능한 심플한 룰을 가진 원초적인 운동. 그저 조그만 공 하나를 가지고 22명의 선수들이 몸으로 부딪쳐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 바로 축구입니다.
축구는 선수들간의 단결과 유기적인 플레이와 전술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메시나 호나우도 같은 소수의 외계인이 게임을 지배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그리고 골을 성공시켰을 때 그 골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라운드의 모든 이들이 얼싸안고 때로 울고 웃는, 이른바 경기를 잠시 중단시키고 서로간의 기쁨을 나누는 세러모니가 가능해서 경기를 보는 가운데 보는 이로 하여금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경기입니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스포츠인가요.
물론 TV로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이 익숙했던 저는 처음으로 축구장에 간 고등학교 2학년 때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깜짝 놀랄 함성 소리에 그라운드를 보니 이미 골 세러머니 중....
자빠뜨리고 이상 야릇(?)한 포즈로 좋아하는 선수들을 보며 리플레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앗차차 현실은 리플레이가 없다는 사실에 어색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영화로 돌아가면,
세계 2차 대전의 전범이자 패전국가 독일에 대한 만행과 특히 유태인들의 아픔에 대한 소설과 영화는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문화 콘텐트들을 볼 때 독일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어떨까 궁금한 것은 비단 저뿐만은 아니겠죠. 독일 베를린에 여행갔던 저는 홀로코스트를 생생하게 전시/재현해놓은 박물관과 여러 구조물들을 통해 2차 대전 전쟁에 대한 아픔과 그들의 진정성 있는 반성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전범 국가인 뻔뻔한 아시아의 이웃 섬나라와는 매우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독일은 2차 대전의 패전으로 인해 남북으로 분단되었던 한국처럼 동서로 분단되었으며, (한국도 동서로 분단되었더라면 동한과 서한이었겠지요.)
주변국가들은 독일에 전쟁의 배상과 책임을 물었고 심지어 독일 내부에서도 나치에 대한 크나 큰 적개심으로 전쟁의 관여도에 따라 세대간의 내부 갈등도 극심했기에 2차 대전 직후 당시 독일 국민들은 좌절감과 패배 의식이 팽배했었습니다.
2차 대전에 참전했고 11년간 러시아 포로 수용소에서 모진 고생을 했던 영화 주인공의 아버지는 '전쟁 앞에서 개인은 복종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합니다. 결국 전쟁은 그 전쟁에 휘말렸던 모든 이를 피해자로 만듭니다. 11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 사회와 가정에서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해 갈등하는 그가 변화하는 과정도 이 영화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의 시간,공간적 배경인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625 전쟁의 상처로 온 국토가 초토화가 된지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한국이 처음 참가한 월드컵이기도 합니다. 비행기 티켓을 구하지 못해 미군 수송기를 타고 일본으로 이동했고, 일본에서 태국 방콕과 인도 캘커타, 이탈리아 로마를 거쳐 겨우 스위스 취리히에 입성합니다. 비행 시간만 무려 48시간으로 첫 경기 헝가리전 킥오프 10시간 전에 도착해서 몸을 추스리고 컨디션을 조절할 시간도 없이 게임에 임하게 됩니다.
헝가리, 터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인 서독과 한 조가 되었던 한국은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에게 9대0, 터키에게 7대0으로 지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월드컵 그라운드를 다시 밟을 때까지 32년간의 긴 터널을 지나오게 됩니다.
축구는 22명이 90분간 공을 쫓아 달리다가 결국엔 독일이 이기는 스포츠다.
- 잉글랜드 축구 스타 게리 리네커
현재 독일은 월드컵의 단골 우승후보이지만 당시 헝가리와 독일(당시 서독)의 위치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독일은 2차대전의 책임으로 4년간 국제대회 출전이 금지되어 무려 16년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은 팀이었고, 헝가리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을 포함, 월드컵 직전까지 4년 동안 무패를 자랑하던 무적의 팀이었습니다. 한국과 한 조에 속한 독일(서독)은 같은 조인 헝가리, 터키에도 비교할 수 없을 약팀이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독일과 헝가리 결승전에 앞서 열렸던 조별 예선의 첫 경기에서 독일이 8대3으로 헝가리에게 졌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헝가리의 압도적인 승리와 월드컵 우승을 점쳤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이 영화는 어떻게 그려냈을까요? 2003년 독일에서 개봉하여 400만명이 넘는 대흥행을 기록했던 영화로 많은 독일인들에게 경제성장으로는 '라인강의 기적', 그들의 국기 스포츠인 축구로는 '베른의 기적'을 이야기할 정도로 전후 현대 독일의 눈부신 성장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독일인에게는 우리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이상의 임팩트를 가진 실화이죠.
1998년 IMF 이후 긴 경제적 어려움과 실의에 빠졌던 한국 국민들이 2002년 4강 신화를 이루며 느꼈던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감은 우리 내/외적인 성장에 큰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2년 마다 열리는 청소년 월드컵 축구 역사에서 한국은 1983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루어내었습니다. 이 때의 선전을 계기로 외신은 우리 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을 빗대어 그 유명한 '붉은 악마'라는 별명으로 우리 대표팀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1991년 포르투갈 남북 단일팀을 이루어 8강에 진출했지만 심심찮게 그 이후 예선 탈락을 하는 등 청소년 월드컵에서 우리에게는 8강 진출이 가장 좋은 성적입니다.
심지어 2017년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만족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 우리 청소년 국가대표팀은 승패를 떠나 이미 뜨거운 색깔의 역사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우리 청소년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월드컵 결승전의 값진 경험은 성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자신감과 자긍심으로 어떤 강팀과 맞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부딪혀 싸워 이겨낼 수 있는 좋은 자양분이 될 것임에 분명합니다.
<베른의 기적>은 스포츠 영화를 넘어 가족의 사랑과 전쟁의 아픔을 그려낸 감동적인 수작임에 틀림없습니다. 2차 대전의 상처를 가진 아버지와 분단된 독일의 상황에서 공산주의자로 동독에 넘어간 큰 아들과 이로 인해 방황하는 막내 아들 등 독일 현대사의 크나큰 질곡과 기복 속에서 베른에서 일어난 축구 경기와 감동적인 승리로 인해 어떻게 화해하고 그 상처가 치유가 되는지를 잘 그린 영화입니다.
이제 곧 열릴 한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가슴이 두근 두근)
p.s.1 이 영화에서 연출하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 당시 비 오는 잔디에서 독일을 승리로 이끌었던 스파이크를 제작한 '아디 다슬러',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창업자입니다. 사실 아디다스는 그의 형인 '루돌프 다슬러'와 함께 동업하여 만든 스포츠 브랜드였지만 형제 간의 갈등으로 아디다스를 뛰쳐 나온 형이 본인의 브랜드를 다시 만든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퓨마' 입니다. ^^
p.s.2 U-20 결승전이 끝난 후 덧붙입니다. 아쉽게도 우승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대한민국 청소년 축구판 '베른의 기적'은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종료 휘슬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고 구르던 우리 대표팀에게 매우 감사합니다. 그들은 이번의 경험으로 잠깐 넘어졌지만 다시 박차고 일어나 앞으로 더 오랜 기간 더 멋진 플레이를 보여줄 것입니다. 뜨거운 여름의 초입에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선물을 받았음에 감사합니다. ^^
<끝>
<베른의 기적 - 축구, 총성 없는 전쟁> written by 최종병기, ⓒ 최종병기
병맛나는 삼류 쌈마이 글, 자유롭게 퍼가셔도 좋지만 출처는 표기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