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제대로 주었을까?
엄마는 윤희네 가게에 가서 아줌마들을 만나면 늘 인상을 쓰며 이야기를 했다.
"영준이 아빠는 내가 그렇~게 사업을 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기어코 사장 소리 듣고 싶어 사업을 하더니만 이렇게 생활비도 못 주고 있네. 내 말을 안 듣고 말이야."
엄마는 3년 전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사업을 시작한 아빠가 못마땅했다.
아침에 아빠가 출근하러 신발을 신으면 옆에서 쭈뼛 쭈뼛 서서 엄마는 말했다.
"생활비 안 줘?"
"얼마?"
"쌀도 사야 하고... 영준이 학원비도 줘야 하고..."
아빠는 지갑에서 얼마를 꺼내어 현관을 나가고 그 소리를 듣으며 잠에서 깨면 대강 아침 8시 정도. 주섬 주섬 엉덩이를 긁으며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갔다. 아파트 단지와 연결되어 있는 학교까지는 10분 거리니까 8시 30분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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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학교에 가지 않는 동생과 한참을 자고 있는 아침,
갑자기 벼락 같은 큰 소리 나면서 아빠가 문을 부술 듯이 닫고 나가길래 그 소리에 놀라 부시시 일어나 안방에 가보았다.
안방을 보니 상은 뒤집어져 있고 국과 김치 등 반찬이 다 엎어져서 13평짜리 아파트의 크지도 않은 안방 안이 폭탄 떨어진 듯 전쟁통 난리였다. 무언가를 흘리거나 지저분하면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엄마는 그것들을 그대로 둔채 울면서 어디론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언니라고 부르는 걸 보니 아마도 이모인가부다.
엄마 전화 소리를 엿들으며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오늘 시간표를 보며 책가방에 책과 공책을 주섬 주섬 넣었다.
"영준 아빠가 회사 10명 직원 월급 줄 돈이 없어 돈 없냐고 하는데, 생활비도 안 주면서 그런 돈이 어디있단 말이고! 지금! 갑자기 돈을 어디서 꾸냐고... 그러게 왜 하지 말라는 사업을 해서~ 이 난리고~! 고 쪼꼬만 자동차 부품 회사... 그래~ 밥상 뒤엎고 나갔다니까... 흑흑흑"
이모랑 전화를 할 때는 엄마는 사투리가 섞여 나온다.
이부자리를 보니 동생도 시끄러운 소리에 깼는지 시무룩하게 앉아 있다. 조용히 옷을 입었다. 양말은 어제 신던 양말을 그냥 신는다. 책가방 챙기고 실내화 주머니 들고... 엄마한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를 해야 하는데... 어쩌지... 화가 잔뜩나서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전화하는 엄마에게 차마 학교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조용히 운동화를 신는다.
아, 오늘 미술 시간 찰흙이랑 철사 사야 하는데... 200원... 현관 손잡이를 잡고 시끄럽게 울며 떠드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조금 서성이다가 발을 동동 구른다. 목이 탄다. 내 방을 보니 동생이 울먹거린다. 잔뜩 찌푸리며 엄마 들으라는 듯이 현관을 꽝! 닫고 나간다.
'아, 짝궁이랑 뒷 친구에게 찰흙은 조금씩 빌려서 해야겠다. 도시락은 우짜지... 친구한테 얻어 먹어야 하나. 아님 수도물이라도 마셔야 하나.'
학교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내내 우울해 하다가 미술 시간에는 준비물 없다고 선생님에게 준비 못한 준비물 하나에 한 대씩 손바닥을 세 대 맞았다. 어쩐 일인지 맞은 손바닥이 붉어졌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엄마는 아직도 이모랑 전화 중일까. 시외 전화 요금 많이 나오는데... 그 돈으로 아빠 회사 사람들 월급을...주지.
친구들에게 조금씩 찰흙을 빌렸는데 찰흙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찰흙을 얻을 수 있었다. 두 시간 미술 시간 중 한 시간을 넘게 멍하니 찰흙을 주먹으로 꽝꽝 때리고 책상에 내리쳐 반죽만 했다. 너무 시끄럽게 내려쳤는지 선생님은 내 등짝을 때렸다. 결국 완성도 하지 못한 채 두 시간 수업 시간이 끝났다. 만들려고 했던 축구공 차는 아이는 이게 아이인지 강아지인지 알 수 없어 선생님에게 또 꿀밤을 맞았다. 저기에 있는 유영이는 어쩜 저리 만들기도 잘 만드는지. 어른이 만든 것처럼 만든다니깐.
그 후로 매달 그 날짜 즈음이 다가오면 '아빠가 직원 월급은 잘 주었을까?' 걱정을 했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오늘이 며칠인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씩 철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