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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인 Sep 23. 2021

늘 예상을 벗어나는 나라

되는 것도 하나 없는데 안 되는 것 빼고 다 되는 나라

 내게 이란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그건 '신비롭다'이다. 보통 여행을 가면 비행기 위해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끝없이 펼쳐진 바다나 색색의 도시풍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란은 예상 밖이었다. 하늘에서 바라본 이란의 풍경은 마치 떨어지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였고 공항에 다다랐을 때도 도시는 사막의 연장선 같았다. 이란에 대한 첫인상은 온통 메마른 흙빛이었고 삭막하고 척박한 땅처럼 보였다. '내가 이런 데서 살 수 있을까?' 싶었다. 다행히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도착하고 난 뒤론 생각이 바뀌었다. 이란의 모든 집들은 가까이에서 보면 뒤통수를 크게 한 대 맞은 느낌이다. 내가 생각했던 흙집은 흙이 아닌 어마어마한 크기의 잘 다져진 대리석들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란의 건물은 값비싸고 고급진 대리석을 건물 전체에 두르고 있었다. 심지어 지하 주차장까지 말이다. 건축양식은 한눈에 보아도 모두 견고하고 우리나라의 획일적인 아파트들과는 달리 문하나, 창문 하나하나에도 신경 쓴 듯 집집마다 모양이 다 다르다. 그래서 도시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신랑의 이야기로 이란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대리석 생산지라고 한다. 덕분에 이란의 어느 장소에 가도 고급 호텔 로비에 와있는 기분을 준다. 광택이 뛰어나고 시원한 대리석은 이란의 뜨거운 날씨를 식혀주기 적합한 바닥재다. 나는 날이 너무 더우면 집에서 맨발로 대리석 위를 걷기도 한다. 이란의 상징 페르시아 카펫이 발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대리석 바닥은 차고 미끄러워서 카펫은 안락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제격이다. 이란은 멀리서 보면 차분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페르시아 카펫처럼 매우 화려하고 다채롭다. 

 

 웅장하고 잘 다져진 건축물과는 달리 이란의 도로와 거리는 '대충 알아서 살아라' 하는 공간 같다. 마을 어귀는 울퉁불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경쟁하듯 놓여있고 한국의 서울은 저리 가라 불법주차가 만연하다. 인도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를 위한 곳인지 성인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길이 이렇게 애처롭기는 처음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싶은데 이란 사람들에게는 그마저도 아닌가 보다 인도로 걷다가 앞사람이 답답하면 서슴없이 자동차 도로로 걷는다. 제대로 된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는 본 적이 없고 차에 치일 듯 말 듯 너도 나도 무단횡단을 한다. 자동차 도로는 더 살벌하다. 중앙선은 그저 폼이다. 심지어 그려지지 않은 도로도 많다. 상황에 맞게 도로는 1차선에서 3차선까지 자유자재로 늘어나고 줄어든다. 차선을 변경할 때도 깜빡이는 켜지 않는다. 먼저 들이 밀면 그만이다. 안전거리는 앞차와의 간격이 5cm 면 충분하다. 심지어 내가 목격한 장면 중엔 앞차가 경사로를 내려와 뒤차를 박았는데도 운전자는 그저 차 안에서 빨리 가라고만 한다. 한국이었으면 뒷목 잡고 드러누웠을 텐데 신기하고 쿨한 나라다. 아무튼 도로는 충격 그 자체!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처음 이란에 도착했을 때 신랑에게 공항 주차장에 놓인 차들을 보고 "왜 이렇게 멀쩡한 차가 하나도 없어?"라고 했다가 웃음을 터트린 게 생각이 났다. 지금은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았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인해 수입과 수출이 어려운 나라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들은 한국의 80~90년대의 모습으로 머물러있다. 도로는 움직이는 박물관처럼 올드카로 즐비하다. 그리고 이 모든 자동차는 당연히 수동이다. 수동운전은 기어를 수시로 바꿔줘야 하고 오토카에 없는 클러치 장치가 하나 더 있어서 운전이 번거롭다. 이란 사람들에게 차를 정차한다는 건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차들은 목적지를 향해 최대한 멈추지 않고 달린다. 그러다 보니 이런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충격적이지만 이란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문화다. 신랑은 도로에서 이란 사람들의 정과 융통성과 쿨함을 배운다고 한다.

"무슨 운전을 이 따위로 해!"라고 말하다가도 어떻게 운전해도 다 허용이 되는 나라가 이란이다.

 

이란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되는 것도 하나 없는데 안 되는 것 빼고 다 되는 나라". 실제로 이란은 안 되는 것이 많은 나라다. 특히나 여성에게 더 그러하다. 기본적으로 인터넷도 잘 안 터지고 해외 포털사이트는 접속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국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려면 VPN이라는 중간 경로를 제공하는 어플을 설치해야만 한다. 또 한국에서는 이란 환율을 취급하지 않아서 원화를 달러에서 다시 이란 돈으로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 뜨거운 나라에서 남자는 반바지를 입지 못하고 여성은 반바지는커녕 반팔도 못 입는다. 노출은 물론이요 라인이 드러나는 딱 붙는 옷도 입으면 안 된다고 한다. 워낙에 외국인이 없는 나라여서 그런지 영어로 소통하기도 어렵다. 이슬람 공화국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도 먹지 못한다. 한국사람에게 삼겹살을 먹지 말라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곳이 안 되는 것 빼고는 다 된다고 한다. 한 가지 예로 신랑의 직장동료들과 가졌던 첫 외식자리에서 나는 사람들이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나는 비흡연자다 보니 매우 불쾌했다. 그러나 골초의 나라라는 별명답게 이란은 어디서든 흡연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담배연기를 참아야만 했다. 반대로 신랑은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보니 자신도 담배가 당기기 시작했나 보다. 주머니를 뒤적뒤적하는데 담배가 없다. 집에 놓고 온 것이다. 나는 잘됐거니 하고 약 올리는 표정을 지었는데, 잠시 뒤에 웨이터가 음식이 아닌 담배 한 갑을 은쟁반에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친구들이 담배를 사다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나는 '뭐 이런 헤로운 서비스가 다 있어' 싶었는데 신랑은 이게 '안 되는 것 빼고 다 되는 나라'의 예라고 말한다. 이란은 보통 이런 식으로 형식과 룰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많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문화를 가진 나라. 늘 예상을 벗어나는 나라. 이방인이 살아가기에 지루할 틈 없는 이 나라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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