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주부여서 하는 게 아니에요
해외살이를 결정하고 난 뒤, 나는 당연히 한국에서의 직장을 정리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나의 경제활동보다는 신랑의 벌이가 미래지향적이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 더 이상 출근을 안 해도 된다라는 기쁨과 동시에 앞으로 내가 무능력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아 슬펐다. 한국을 떠날 때쯤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하나 있다. "너는 거기 가서 뭐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이상하게 말문이 막히면서 황당한 기분마저 든다. 상대는 별 의도 없이 던진 순수한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게는 마치 "신랑은 돈 벌고 일하는데 너는 거기서 뭐해?" 내지 "넌 왜가? 네가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있어?"라고 묻는 것처럼 들린다. 부부는 서로에게 정신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어서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하기 위해선 내가 무언가 해야만 하는 걸까. 처음엔 그 질문이 굉장한 압박처럼 느껴졌다. 나중엔 같은 질문을 수차례 받다 보니 사람들이 무슨 답변을 기대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거창하게 말할 무언가가 없다면 그냥 "주부"인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말해버리고 나면 "그래, 그래야지" 라며 그게 나의 역할이라는 듯 무한 긍정을 해준다. 그때마다 나는 '뭐지. 답이 정해져 있었던 건가. 그럼 도대체 왜 물어본 거야?' 라며 나를 떠보는 그 질문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신랑은 내게 해외로 나가자고 하면서 한 번도 '주부로 살아라' 또는 '내조를 해달라'며 강요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즐기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고 내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해외생활에 주부라는 단어는 없었다. 나는 현지 언어도 공부하고 친구들도 사귀고 나의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며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의 가장 큰 임무는 신랑을 보살피고 응원하며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것을 주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이 모든 걸 한 단어로 또는 직업군으로 명명할 수 없기에 나는 많은 이들에게 귀찮은 듯 주부가 될 거라고 말했다. 이란에 와서도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나를 소개할 명쾌한 한 단어를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여기서 뭐하냐는 질문에 나 스스로를 " I am a house keeper"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우 기분이 울적해졌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주부가 어때서?" 맞다. 나의 주부 민감증에 세상의 모든 주부들이 들고 일어날 일이다. 도대체 나는 왜 주부라는 단어에 이토록 반응하는 걸까. 나는 왜 주부가 되기 싫은 걸까. 거기엔 강력한 이유가 있었고 지금부터는 온전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아본 적 없는 나의 반성이다. 맞벌이가 당연시되는 시대에 그동안 내가 바라본 주부는 사실, 시집을 잘 간, 신랑의 덕을 보며 팔자가 좋아진, 일 하지 않는 여성 또는 어쩔 수 없이 육아 및 집안일을 하는 사람으로 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결혼 후 일하지 않거나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여성에게 붙여준 그럴싸한 직업이라고 말이다. 처음엔 이것이 사회의 보편적인 시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사회의 시선이 아닌 나의 잘못된 시선임을 깨달았다.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 때문에 나는 주부라고 말하면서 주부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 누구에게도 신랑 덕에 팔자 늘어졌다는 소리도 듣기 싫고 각종 집안 허드렛일 하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싫었다. 그래서 신랑에게 나는 기필코 무언가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만의 소속을 찾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반강제적으로 주부의 삶을 살다 보니 그동안의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주부라는 직업은 매우 고차원적인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집안일 만을 하는 게 주부가 아니다. 주부는 아주 크게 가족 구성원의 몸과 정신건강을 보살피고 가정의 평화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주부이다. 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밥을 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처음엔 이곳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집안일뿐이라는 게 매우 속상했다. 달리 할 게 없어서 집안일을 좀 더 꼼꼼히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청소와 빨래, 요리, 설거지 등을 미루지 않고 하니깐 신랑이 귀가했을 때 집안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옷은 왜 여기다가 두었니, 설거지는 대체 누가 하니, 화장실 휴지 다 썼으면 제발 채워두라는 식으로 사소한 집안일들로 자주 싸웠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란에 와서는 집안일로 다퉈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신랑에게 식사를 내주고 신랑이 온전한 휴식을 가지면 다음날 신랑은 본업에 충실할 수 있고 일이 잘 풀리면 나에게 더 잘해주고 우리만의 시간도 더 오래 가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주부가 된 이후로부터 우리는 정신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어렴풋이 이런 게 내조 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마바람을 휘날려야만 내조일까. 아내의 온전한 몸과 정신으로 신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신랑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고 잔잔한 내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얼마든지 주부가 되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