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혜인 Oct 04. 2021

살람. 만 코레이 하스탐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외국에서 지내게 되면서 가장 많이 겪게 되는 상황은 "where are you from?" 하고 출신지를 묻는 일일 것이다. 반대로 한국에서 외국인을 만났을 때도 우리는 마찬가지로 제일 먼저 그 질문을 던지곤 한다. 다른 나라에 가면 출신지가 이름보다 더 중요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로부터 나를 이해하기 가장 쉽기 때문이다. 나는 이란에서 한 달만 머물기에 특별히 페르시아어를 공부한다거나 언어적으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서 만날 이란인이라면 신랑의 동료들일 것이고 그들과는 모두 영어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실생활에서 필요한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해요. 얼마예요?, 이거 주세요, 또 만나요. 이런 정도는 이곳 사람들도 영어로 말해도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이란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걸까. 길에서 마주치는 젊은 청년들도 자주 우리를 존중해주지 않았다.

 어디서나 생김새가 다른 이방인은 자연스레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선이 간다는 건 분명 호기심이다. 나도 한국에서 외국인을 보면 한 번쯤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본능적인 거라고 생각되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란에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노골적으로 바라본다. 그리곤 행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움찔 놀라며 시선을 회피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 순간엔 그냥 서로 싱긋 웃어주면 좋았을 텐데 무언가 들킨 것처럼 재빠르게 눈동자를 굴린다는 건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가끔은 사람들의 시선이 호기심을 넘어 우리를 구경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도 많다. 우리가 중동 음식을 먹으면 "오! 쟤네 봐! 중동 음식 먹는다!" 햄버거를 먹어도 "와 동양인이 여기까지 와서 햄버거를 먹네?" 하며 구경하는 것만 같다. 아마 한국에서도 외국인이 김치나 떡볶이 같은 매운 음식을 먹는 걸 보면 우리도 신기해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해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게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나 더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는 테헤란에 와서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한국인은커녕 아시아인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이란은 외국인을 만나기 정말 힘든 나라다. 코로나로 인해 이란의 관광비자가 금지되기도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란은 유럽만큼 관광을 목적으로 사람들이 몰리거나 유학생이 많은 나라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7.5배가 되는 이 큰 땅 덩어리에 실제로 존재하는 한국인은 현재 100명도 채 되지 않을 거라 하니 신기할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힐끗힐끗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나 또한 그럴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겪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우리에게 이유 없이 인사를 걸어주는 사람들이다. 낯선 이에게 인사를 건넨다는 건 내 입장으론 참으로 용감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용감한 그들 대부분은 무례하기도 하다. 왜냐면 우리를 보고 다짜고짜 "니하오"라고 말하며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연 우리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건넨 것이 맞을까? 그게 인사라면 우리도 인사할 시간은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니하오라고 외쳐놓고 키득키득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신랑과 나는 자주 제자리에서 벙찌고 만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중국을 "친"이라고 부르는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나는 여기저기서 친, 친 하면서 속닥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친의 대상이 누구인지 뻔히 알기 때문에 기분이 몹시 상한다. 나는 중국인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아무런 확인 없이 한국사람을 중국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모습이 그저 너무 억울하고 분개한다. 물론 중동 사람들이 동양인의 겉모습만으로 나라를 구분 짓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안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왜 모든 동양인을 중국인으로 통합시키는 걸까. 모르면 제발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차라리 현지 언어로 "살람?"이라고 인사해주면 더 반가울 것 같다. 나는 내가 겪은 몇몇 상황을 가지고 모든 이란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보편화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 문제는 이란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서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며 그저 문화인답고 지성인 답지 못한 개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이상은 어느 나라에서든 이런 무례한 사람들은 없었으면 한다. 모든 나라는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나와 모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이란에서 처음으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페르시아어는 "만 코레이 하스탐" , "나는 한국사람입니다"이다. 우릴 향해 니하오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붙잡고 그러면 안 되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할 순 없지만 아주 간단하게 나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심어주는 것이다. 지내다 보니 아주 사소하지만 외국인을 존중하는 마음은 그 나라를 물어봐주는 것부터 시작인란 생각이 든다. 


 신랑의 직장동료와 함께 100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전통 있고 근사한 페르시아 레스토랑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도 역시나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자리를 안내하던 웨이터가 이란인 동료에게 슬쩍 우리의 출신지를 묻는 것을 보았다. 그 웨이터는 메뉴를 주문받고 곧이어 음식이 아닌 이란과 대한민국의 국기를 들고 왔다. 그 국기가 대체 어디서 났는지 언제 준비한 건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반갑고 감격스러웠다. 주변에 앉아있던 다른 손님들은 그 두 개의 국기가 등장하자 "아~ 한국사람이구나" 하고 궁금증이 해소되는 눈빛이었다. 그 뒤로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고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웨이터의 서비스로 인해서 굉장히 존중받고 환대받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100년 이상을 유지하며 승승장구해가는 그 레스토랑의 비결은 결코 분위기와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해외에서 산다는 건 나라가 나를 대표하고 내가 누군가에겐 우리나라의 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비장하고 조심스럽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인식하는 과정은 나도 모르게 애국심을 만든다. 그래서 우리를 다른 나라 사람으로 단정 짓는 모습엔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지내보니 이방인의 삶은 여러모로 굉장한 주목을 받지만 그만큼 존중받거나 보호받지 못하는 점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언제든 크고 작은일에 답답하고 억울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신랑과 함께 지혜롭게 대처하고 감내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다른이에게 내가 경험한 무례함을 범하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난 주부 하기 싫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