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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인 Nov 25. 2021

미안한 터키의 첫인상

첫인상은 함께 하는 사람과 만든다

 이란에서 터키로 가는 날, 그동안 집에만 있던 내게 드디어 외출할 수 있는 자유와 히잡으로부터의 해방으로 기쁨이 가득 찰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공항에 가는 날 아침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우울했다. 자꾸 더 있고 싶고 어딘가 아쉽고 슬픈 마음까지 일렁였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이란을 참 좋아하고 있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공항에 마중 나와준 시아막이라는 친구와 신랑은 서로 부둥켜안고 브로맨스 컷을 찍고 있었다. 나는 울지 않는 그들에게 농담처럼 "Don't cry"라고 말하면서 내가 속으로 울고 있었다. 확실히 한국을 떠날 때보다 더 슬픈 느낌이었다. 신랑은 운전하느라 몰랐겠지만 나는 뒷좌석에서 공항 가는 길 내내 목에 담이 올 정도로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쉬움을 덜어내야만 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금은 그 이유를 알겠다. 그것은 몸이 말하고 있던 암시였다. ‘이곳은 정말 평화로웠지만 앞으로 터키에선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이다. 아마 나는 이란이란 나라와 정이든 것 보다 그곳에서 누린 평화가 깨질까 봐 두려워서 슬펐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촉은 예상을 적중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는 터키행 비행기에서 좌석이 서로 떨어져 있었다. 시작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까진 그냥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기내에서 마지막으로 먹었던 페센준(이란식 소고기 장조림) 이 너무 맛있어서 나는 신랑과 떨어져 있어도 혼자 이란에 대한 여운을 음식으로 만끽하고 있었다. 몇 시간이 흐르고 터키에 도착했을 때 나는 화장실이 급했다. 입국심사대에 가기 전에 잠깐 화장실에 들리려는데 신랑이 계속 "지금 아니면 안 될 거 같아?"라고 물어서 왜 저러나 싶었다. 참으면 참았겠지만 가는 길 내내 화장실이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오는데 참을 이유가 있을까. 나는 그중 한 곳으로 냉큼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왔다. 신랑은 내가 화장실을 들어가고 나오는 동안 뭔가 초조해 보였다. 이스탄불 공항은 최근에 세계 최대 규모로 짓겠다고 하더니 완공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새것의 냄새가 폴폴 나고 정말이지 거대했다. 그리고 조금 걸으니 그 거대한 공간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어머어마하게 긴 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줄이였다. 아마 이것 때문에 신랑은 나의 볼일을 최대한으로 미루고 싶었던 것 같았다. 참고로 신랑은 내가 살면서 본 사람 중에 성격이 가장 급하고 기다리는걸 끔찍이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연애하면서도 놀이동산을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그런 신랑의 마음을 공항직원들이 알리가 있나.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우리가 탄 비행기를 비롯해서 중동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지 주변에 히잡 쓴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그들 차례만 되면 심사과정이 까다로워지는 듯 보였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무래도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난민들이 대거 터키로 이동하거나 망명하는 사례가 많아져서 그런 것 같았다. 우리의 차례가 오기까지 우리는 한 시간 가량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가방은 또 어찌나 무겁게 하고 왔는지 둘 다 어깨가 땅으로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신랑은 점점 예민해져가고 있었고 급기야 "저 XX는 뭐하는 XX 데 저렇게 오래 하는 거야 바빠 죽겠는데" 라며 불만이 쏟아져나왔다. 물론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내가 옆에서 기분이 언짢아지는 것일까. 우리는 평소에 서로가 말을 예쁘게 하는 점을 마음에 들어 했고 욕하는 사람들을 상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신랑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올 정도로 지금 이 상황이 나쁜 걸까? 옆에서 계속 짜증을 부리니 나까지 짜증이나기 시작했다. 나는 답답한 신랑의 마음은 이해가 가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의 다음 일정은 에어비앤비에 도착하는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 그런데 바빠죽겠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릴랙스 해"라고 한마디 내뱉었다. 그러나 신랑의 불평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짧은줄로 옮겨갈 수 있을까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동안 신랑이 성격이 급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고 상황을 못받아들이는 사람이었나하고 나는 점점 실망의 늪에 빠지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의 차례가 왔다.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대한민국 여권이 무슨 프리패스권이라도 되는지 우리는 아무런 질문도 없이 도장을 바로 쾅 찍어주었다. 그런데도 뭔가 마음이 시원치 않았다.

 공항을 빠져나오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고 설레어야 하는데 나의 첫 터키고 뭐고 내 표정은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유연하지 못한 신랑과의 해외생활이 심각하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이란이랑 대조가 되는지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하고 바람은 차고 날카로웠다. 딱 내 마음 같았다. 날씨가 좋기로 유명한 터키라고 들었는데 우리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찬바람을 맞은 뒤 겨우 택시를 잡았다. 택시 안에는 냉기가 흘렀다. 그건 바깥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제야 신랑은 나의 기운을 눈치챈 것 같았다.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계속 쓸데없는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다. 나는 터키에 대한 첫인상을 신랑이 망친 것 같아 화가 나 있었다. 그래서 신랑이 말을 걸 때마다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한데 그때 택시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보시던 게 생각이 난다. 눈도 마주쳤는데 흠칫 놀라시기까지 했었다. 보통 공항에서 탔기에 어디서 왔냐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50분가량 이동하면서 한마디 말도 없으셨다. 그래서 그런가. 터키 공항에서 택시를 타면 외국인 상대로 바가지를 잘 씌우니 조심하라 해서 대응책까지 생각하고 왔는데 우리는 딴지 없이 미터기에 찍힌 정확한 금액으로 결제를 했다.

 숙소에 와서는 호스트를 만나서 억지로 웃어가며 잠깐 대화를 나눴었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화났던 마음이 잠깐 누그러 들었었다. 그런데 호스트가 키를 주고 가자마자 신랑은 정말 오래 참았다는 듯이 재빨리 담배를 사러 나갔다 오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제야 신랑이 평소와 달리 그토록 예민했던 것이 담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숙소에 오기까지 그는 강제 금연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몰랐지만 신랑에겐 입국심사 줄보다 더 오래 참았던 게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걸 알게 되자 모든 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더 화가 나고 용납이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눈에 가시였던 담배가 오늘 일의 변명이 될 순 없었다. 사람은 대우받고 싶은 대로 행동해야 하듯 마인드 컨트롤했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담배가 원흉이다'라며 다투고 말았다. 그것이 터키에서의 첫날이다. 내가 터키에 도착했을 때 내 눈과 마음에는 터키의 공기, 풍경, 사람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잔뜩 화가 난 사람이었다. 터키와의 첫 만남이 그래서였을까. 나는 꽤 오랫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여기엔 온 뒤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라는 생각이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과연 터키에서 내 마음이 녹아들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시점이 올까. 터키에 대한 첫인상을 바뀌려면 얼마만큼의 시간과 특별한 이슈가 필요할까.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서 정말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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