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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인 Dec 01. 2021

나를 위로해준 집주인

위로는 눈짓만으로도 충분하지

 우리는 터키에 와서 일주일간 에어비앤비에 머물기로 했다. 그동안 집을 구해야 한다. 이것이 터키에서의 첫 번째 미션이었다. 어차피 한국처럼 전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바로 계약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걸림돌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우리 부부 중 누구도 터키어에 능통하지 못하다. 이 두 가지는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다행히도 한국의 직방과 다방과 같은 부동산 포털사이트가 터키에도 있었다. 우리는 우선 그것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예상 밖에 신랑의 회사 근처로는 우리의 예산에 맞는 매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터키의 환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는데 반대로 집값은 계속 폭등하고 있었다. 또 코로나로 쉬고 있던 대학교들이 개강을 하면서 타지에서 온 학생들이 가성비 좋은 집들은 모조리 쓸어갔다. 여러모로 시기가 좋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예산을 올리기로 했다. 고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기에 정말 큰 결심이었다. 확실히 가격을 올리니 지도상에 볼 수 있는 매물의 수가 대폭 증가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매물들을 보고 싶다고 해서 맘껏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터키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전화로 집을 보고 싶으니 약속시간을 잡자고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결국 우린 문자로 소통을 해야 했다. 운이 좋으면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젊은 중개인을 만날 수 있었지만 계약이 성사되진 못했다. 대부분은 우리의 연락에 돌아온 답변은 '미안하지만 외국인과는 거래할 수 없다' 이거나 무응답이었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라 차별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가 갔다. 어떻게 그들이 우리의 신용에 확신할 수 있을까. 불법체류자라 여길 수도 있고 월세를 밀려놓고 자기 나라로 도망가버릴 수도 있지 않나. 게다가 외국인에게 집을 내주려면 집주인이 거쳐야 하는 번거로운 서류 절차도 있었다. 처음에는 아쉬운 대로 연락이 닿는 중개인을 만나 집을 보기도 하고 나중엔 신랑의 회사 근처 아무 부동산에 들어가 매물을 보여달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번역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오히려 오번역이 낳는 알 수 없는 소통장애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나오는 중개인이 고맙다가도 한편으론 불편했다. 그들에게 비친 우리의 꼴이 얼마나 어수룩한 이방인처럼 보였을까. 원활하지 못한 소통은 때론 이렇게 오해를 낳는다. 신랑과 나는 문득 이러다 부동산 사기를 당해도 모르겠다며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터키에 온날부터 지금까지 날씨는 매일 비가 오고 우중충했다. 날씨 탓인지 우울함 한 스푼이 내 몸과 마음에 들어와 암흑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난관에 봉착하자 처음보다 더 강렬하게 '안락한 우리의 집'에 대한 갈망만 더 커져갔다. 

 결국 우리는 다음날 신랑의 회사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안 그래도 회사에선 정착에 필요한 게 있으면 현지 직원을 한 명 붙여준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집 구하는 과정부터 막힐 줄은 몰랐다. 나는 지극히 사적인 일이라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어딘가 싶었다. 우리에게 파견된 터키 직원 M양은 기꺼이 우리를 도왔다. 책상 앞에 있는 것보다는 밖에 나오는 게 더 좋아 보이기도 했다. 다행이다. 그녀는 우리가 집을 구할 때까지 며칠을 함께 동행을 하고 통역사의 역할을 담당해주었다. 자신이 살 곳도 아닌데 이렇게 업무시간에 나와서 같이 집을 보러 다녀준다는 건 참 고맙고도 감사할 일이다. 물론 회사에서도 허락한 그녀의 임무였지만 나는 사실 꽤나 고마우면서도 불편했다. 우리 부부가 회사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염려와 굳어버린 내 혀와 뇌가 하루 종일 영어를 뱉어야 한다는 것도 한몫했다. 언어는 답답한 마음을 한층 더 두텁게 했다. 짓궂은 날씨의 영향도 있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우리 모두 피로도가 높았다. 항상 아침 일찍 나가서 어둠이 깔릴 때쯤 숙소에 들어오곤 했다. 그래도 내게 의식주중에 가장 중요한 건 주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우리에게 2세가 생겨도 문제없을만한 깨끗하고 안락한 가정집이 필요했다. 신랑도 내가 집에 가장 오래 머무를 테니 나의 기호와 결정을 중요시 여겨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을 보던 날, 나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터키와의 첫인상은 좋지 못했지만 내가 보았던 첫 번째 집은 마음에 쏙 들었다. 집을 하나만 보고 결정할 수 없기에 여기저기 돌아다녀봤지만 계속 그 집이 마음 한편에서 자기에게 오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첫 번째 집은 다른 곳과 달리 사진에서 본 것보다 더 근사하고 깨끗하고 안락했다. 아이를 키우던 가정집이어서 주방이 잘 갖춰져 있었고 창이 크고 햇볕도 잘 들어왔다. 무엇보다 가장 최근까지 집주인이 그곳에서 직접 살았었다고 했다. 어딘가 신뢰가 갔고 마음이 끌렸다. 주변에 마트와, 채소가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빵집과 공원이 가까운 곳에 있었고 지하철역도 도보로 이동이 가능했다. 신랑의 회사는 집에서 딱 세 정거장만 가면 된다. 더 고민하다간 좋은 집을 놓칠 것 같았다. 우리는 당장 집 계약을 하러 부동산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집주인을 처음으로 만났다.

 신랑과 나는 '드디어 집을 구했다'라는 기쁨과 안도를 느끼는 동시에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좋은 집을 찾고자 곤두세웠던 신경들이 느슨해지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낸 눈엔 힘이 풀리고 어깨도 축- 쳐져 있었다. 공인중개사 아저씨가 각종 서류들을 출력하고 있는 동안 우리의 모습은 설명이 필요 없는 '지친 사람들'의 표본이었다. 그렇게 지쳐있다 나는 주인아저씨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저씨는 나와는 달리 또렷한 눈매였다. 나는 급히 기운을 차리고 웃어 보였다. 주인아저씨는 새까만 머리와 눈썹에 눈이 정말 크고 진하게 생기셨다. 수염은 깔끔히 면도하셨지만 푸른 라인이 또렷하고 덩치가 우람하신 딱 마초 같았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선한 눈빛은 병아리를 보고 어찌할 줄 모르는 배우 마동석을 떠올리게 했다. 아저씨는 내게 시선을 거두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마치 "힘들지?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서로 아무 대화도 없었는데 나는 마음이 뭉글뭉글 눈가가 촉촉해졌다. 눈짓 하나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겉모습과 달리 아저씨의 눈빛에서 자상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류에 모든 사인을 하고 귀여운 아기 열쇠고리가 달린 집 열쇠를 건네받았다. 그리곤 아저씨는 우리에게 건물을 한층 한층 오르며 이웃들을 소개해 주셨다. 1층엔 친척이, 2층엔 주인아저씨의 어머니와 그 외 가족, 3층엔 경찰가족이, 그리고 4층은 우리 집이었다. 아저씨게 소개받은 이웃들은 모두 아저씨만큼 따뜻한 사람들 같았다. 왠지 여기서라면 이웃들과 가족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건물 전체에 퍼지는 훈훈한 기운은 우리 부부가 이곳에서 안정적으로 살도록 보듬어 줄 것 같았다. 그렇게 내게 말없이 위로를 건넨 천사의 집에서 우리는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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