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나무의 마법
봄이다.
겨울 내내 추위에 취약한 날 지독하게 괴롭히던 오한, 건조함은 슬쩍 한 발치 물러서고 어느새 분홍빛과 노란빛으로 칙칙했던 아파트 단지가 화사하게 물들었다. 두꺼운 기모 티셔츠와 바지를 내려놓기 위해서 임부복 사이트에서 산뜻한 색상의 티셔츠와 롱스커트를 주문해본다.
요즘은 임부복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가려지고 무채색인 옷만 있는 게 아니었다. 봄의 자연색을 닮은 노랑노랑 혹은 분홍분홍 한 샤랄라 한 임부복들이 임신 초중기를 견뎌내느라 우울했던 내 마음을 슬쩍 설레도록 바꿔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임신 전에는 타이트하고 샤랄라 한 청순한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던 나름 마른 체형이었던 내가 임신 후에 배가 쫄려 몸에 맞는 옷을 찾아 입느라 입고 싶은 옷들을 전부 손에서 하나하나 내려놓다가 결국 외출을 포기해버리고 마는 불상사를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리라. 겨울옷에도 요즘 임부복에는 사랑스럽고 여성스러운 옷이 많긴 한데, 꼭 봄과 여름 사이 출산 후에는 체중 관리를 할 거라 다짐을 해왔어서 더 이상은 임부복을 새로운 신혼집에 더 늘리고 싶지 않았다. 임부복이 새로운 집에 늘어날수록 나의 몸은 안심이 되어 점점 더 말랐던 체형으로 돌아갈 수 없는 퍼져버린 몸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위기감에.
출산 후에도 여리여리한 핏의 느낌으로 입을 수 있다는 랩스커트와 단가라 티셔츠를 몇 개 주문해놓고 조금은 낯선 모양과 기능의 수유브라도 하나 주문해본다. 내 몸은 이제 한 달 뒤면 출산 예정일이 되는데 출산 후에 입원 예정인 병원과 조리원에서 출산 준비물로 수유브라를 준비해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수유브라는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써본 적도,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어떤 브랜드의 어떤 디자인이 나한테 맞을까 싶어서 많고 많은 수유브라들 중에서 적당한 가격과 모양으로 보이는 것 중에 하나만 미리 주문해서 입어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겨울 내내 추위와 첫 임신, 그리고 이사 여행 등등의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을 겪어내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는데 창문만 열면 보이던 앙상한 나뭇가지들에 부푼 팝콘처럼 분홍빛으로 물든 벚꽃들과 샛노란 개나리들에 어둑어둑했던 먹구름 낀 마음이 화사하게 걷히는 느낌마저 든다. 이것을 바로 ‘팝콘나무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대가 하루에도 수십 번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격한 감정의 엄마이거나 혹은 아기를 가진 산모라면, 그 외에 그렇지 않은 사람 누구라도 마음에 우환이 있거나 먹구름이 잔뜩 낀 힘든 사람이라면 당장 지금이라도 그 어두운 곳에서 벗어나 미세먼지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창문부터 활짝 열어젖히고 바깥 풍경부터 확인해보길 추천한다.
그 누구보다도 감정이 하루아침에 천국과 지옥을 널뛰기하듯이 날뛰던 나 조차도 분홍빛 팝콘 나무의 기적 앞에서는 화사한 조명을 켠 화장대처럼 밝아지고 설렘으로 가득 차올랐기 때문에.
한 달 뒤에 아기를 낳게 될 두려움?
아기를 출산하고 나면 겪게 될 불면증?
아 몰라, 지금은 내 눈에 담긴 팝콘 나무 향에 잠식돼서 달달하게 취해있을래. 내일 걱정은 내일 하지 뭐. 주문했던 셔링 임부 랩스커트에 리본 플랫슈즈 갖춰신고 한강 가서 샤랄라 하게 한 달 남은 임산부 시절을 즐겨볼래. 아가가 나오면 언제 자유를 저당 잡히게 될지 모르니 말이야.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그 이름
봄,
팝콘 나무의 마법을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