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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빈 Aug 18. 2022

실리콘 밸리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Play is the work of childhood, 유아기의 놀이교육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어린이 해방군 방구뽕에 관한 에피소드를 인상깊게 보았다. 작가가 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제에 마음 아파하며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는 생각이 드는 회차였다. 방구뽕이라는 인물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있던데, 정신과와 법원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세상은 넓고 피고인은 다양하다. 야근 후 밤 10시쯤 퇴근길에 대치동을 지나와 본 적이 있는 직장인이라면, 대치동 학원가 문을 두드려 본 적이 있는 부모라면, 드라마가 그린 대치동 아이들의 모습도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방구뽕 에피소드와 관련해서 20년 놀이운동가 편해문씨가 인터뷰한 글을 읽었다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7380922&code=61172211&cp=nv). 이 에피소드가 어린이 인권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 일으킨 점은 훌륭하나, 방구뽕이라는 어른을 통해 아이들을 해방시키다는 내용은 어린이를 고려하지 않은 어른 중심의 문제해결방식이라는 내용이었다. 어린이의 놀이 인권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놀이터 디자인을 통해 변화를 이끄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감명 깊어 그에 관한 생각을 끄적여 본다.


실리콘밸리 유아교육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Play is the work of childhood", 즉 "어린이가 할 일은 노는 것이다". 놀이 중심의 어린이집은 이 곳에서 "play based preschool"이라고 불리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곳은 스탠포드 부설의 빙 어린이집(https://bingschool.stanford.edu/childrens-programs/program-overview)이다.


놀이학교가 지향하는 것은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어른의 생각과 행동이 개입되지 않은 완전한 아이 주도 놀이이다. 놀이학교에서 알파벳이나 숫자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부모에게 선 안에 색칠하기나 실제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은 그리지 않도록 교육한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그 옆에서 아이가 그릴 법한 것들, 즉 선이나 면 같은 추상적인 형체만 그리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놀다가 싸움이 일어나도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다. 중재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서로 양보해야지"라는 말로 양보를 강요하는 대신 똑같은 장난감을 하나 더 가져와 쥐어주는 방식으로 해결하라고 한다. 아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할 때도 "조심하라" 고 말하거나 그 행동을 막는 대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서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정도로 최소한의 개입만 하라고 말한다.


이러한 놀이교육은 미국 내에서도 급진적인 편에 속한다 (캘리포니아는 뭐든 급진적이다). 지나치게 놀이만 강조하는 교육 시스템이 아이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부모도 있다. 놀이교육을 받고 자란 모든 아이들이 문제 없는 창조인재로 자라는 것도 아니다.


만 3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 보니, 아이의 세상에는 글자도 시간도 고정관념도 없다. 대신 감각과 상상만이 가득하다. 아이는 아무 도구도 없는 빈 공간에서도 비눗방울을 쫓아다니고 머핀을 굽는 상상놀이를 한다. 바닷가에 가면 누군가 파놓은 구덩이 하나만 가지고도 몇 시간을 신나게 논다. 


한 번은 아이가 놀이터에서 나선형으로 된 봉 위를 빙글빙글 돌며 천천히 올라가고 있길래, "빙글빙글 도는 대신 사다리처럼 위로 밟고 올라가면 빨리 갈 수 있어"라고 이야기 해주었더니, 아이가 "싫어. 나는 천천히 가는 게 좋아!"라고 대답했다.


놀이교육이 아이를 어떤 직업을 가진 어떤 어른으로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다만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아이의 즐거운 오늘을 지켜주기를. 아이에게 뭔가를 더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체험교육과 과학 실험 키트를 뒤적이는 나의 욕심에 제동장치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의 일부. 특히 "놀지 못해 영혼이 다치는 것보다 놀다가 뼈가 부러지는 게 낫다"는 말이 좋았다.


-어린이 해방 선언문을 복창하는 것 말인가.



“그것도 주입식이다. 놀이는 그런 걸 안 하고도 배울 수 있는 따뜻한 동반자다. 방구뽕이 ‘얘들아, 놀자!’고 하는데, 어른이 권유하고 이끌어가는 건 놀이가 아닐 가능성이 많다. 아이들끼리 ‘얘들아, 놀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리의 일이지 ‘얘들아, 놀자!’면서 어른이 나서는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놀이 훼방자이자 놀이 방해꾼이다. 왜 이렇게 말씀드리냐 하면, 아이들끼리 놔두면 어떻게 놀고 뭐가 되겠냐는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난 이쪽 편, 넌 저쪽 편, 금 밟으면 죽어’ 이런 게 놀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배우지 않아도 잘 놀고, 그렇게 노는 게 싱거워 보여도 그것을 아름답고 진지한 놀이라고 봐줄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아이들의 놀이에 개입하지 않는다. 놀이가 아이들 안에 있기 때문에 놀아주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디자인한 놀이터들도 마찬가지다. 놀이기구 중심의 놀이터가 아니라 놀이 중심의 놀이터를 표방한다. 순천 기적의 놀이터 1호는 잔뜩 펼쳐진 모래밭에 언덕만 우뚝 있는데도 하루 평균 300~400명씩 찾아와 3시간을 놀다 가고, 1년에 아이들 10만명이 이용하는 명소가 됐다.



그의 집 앞마당 모험 놀이터에는 다섯 가지 모토가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자신의 책임으로 자유롭게 논다, 망가뜨리거나 부숴도 좋다, 성공과 실패는 변화하는 것이며 오로지 도전만을 긍정한다, 놀지 못해 영혼이 다치는 것보다 놀다가 뼈가 부러지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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