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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빈 Aug 18. 2022

나의 브이백 도전기 - (1)

브이백을 고민하게 된 이유 - 첫째의 아토피

2022년 5월 31일 정오경, 둘째 루카가 태어났다. 오전 11시에 병원에 걸어들어가니 이미 자궁이 10cm까지 열려 힘주기를 해야 한다고 해서, 무통과 항생제 수액은 커녕 병원에 들어가기 전 필수 코스인 코로나 검사도 하지 못하고 아기를 낳았다. 아기가 태어난 시간은 오전 11시 58분, 말로만 듣던 '잘못하면 길에서 낳을 뻔 한' 출산을 한 것이다. 2019년 11월 유도분만에 실패하고 제왕절개로 첫째를 낳았으니, 둘째는 브이백 (VBAC, Vaginal Delivery after Cesarean), 즉 제왕절개 후 자연분만이기도 했다. 


브이백을 했다고 이야기할 때 한국의 지인들은 대개 "그게 가능해? 몰랐어!"라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또 나처럼 절박하게 브이백을 결심할 누군가를 위해 둘째 출산의 기록을 남겨본다.


브이백에 대한 이야기는 2019년 11월에 낳은 첫째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요가를 좋아하고 약 먹는 것을 썩 즐기지 않는 편이어서 자연스럽게 자연주의 출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임신기간 내내 수영과 요가를 하고, 히프노버딩과 같은 책을 찾아 읽으면서 나름대로 출산을 준비했다. 낳는 장소에 대해서 잠시 고민하였으나, 첫 아이라 겁이 나기도 하고 마침 자연주의 출산을 한다는 순천향대학교병원이 집 가까이에 있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순천향대학교병원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바로 맞은편에 있는 마마스조산원을 방문하기도 하였으나, 역시 종합병원에서의 출산이 안전하다고 느껴져 선택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마스조산원에서 관리를 했다면 결과가 좀 달랐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막달이 가까워질 수록 걷기, 스쿼트, 등산을 하며 아이가 내려오기를 기다렸으나 41주가 되도록 소식이 없었다. 결국 유도분만을 결정하고 오전 8시에 병원에 입원했다. 긴장한 남편은 날이 밝도록 잠을 자지 못했고, 덩달아 나도 선잠을 자 피곤한 상태였다. 수액줄을 잡고 촉진제를 투여하자 금세 진통이 왔다. 가끔 간호사가 들어와 내진을 하고 갔는데,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질 속에 손을 넣어 난폭하게 휘젓는 끔찍한 느낌이었다. 유도제가 투여되면서 시작된 진통도 진통이지만, 내진이 주는 고통이 너무 커 무통주사를 요청했다. 마취과 의사가 들어와 무통주사를 투여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찾아보니 이를 경막천자후두통이라고 하는데, 척수액이 새면서 나타나는 아주 드문 부작용이었다. 척수액이 새서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24시간 침상 안정을 취해야 해서, 나는 머리도 움직이지 못하고 바로 누워 진통을 겪어야 했다.


무통주사 덕분에 통증은 사라졌지만 부작용 때문인지 메스꺼움과 피로감이 심했다. 물 한 모금 넘길 수 없는 상황에서 10시간 정도 지났을까, 무통도 듣지 않는 엄청난 고통이 1-2분 간격으로 찾아왔다. 자궁 경부가 10cm까지 열렸기 때문에 이제 힘주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상태에서 나름대로 힘을 줘보기도 하고, 남자 간호사가 들어와 갈비뼈 아래쪽을 밀어주기도 했지만 아이는 내려오지 않았다. 2시간 정도의 힘주기 끝에 기진맥진해진 나는 교수님에게 제발 수술시켜 달라고 빌었다. 수술장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죄인이 된다

사실 나처럼 유도분만을 시도하다가 결국 제왕절개를 하게 되는 케이스는 아주 흔하다. 어떤 산모는 유도제로 자궁이 충분히 열리지 않아서, 어떤 산모는 태아 상태가 나빠져서, 그리고 어떤 산모는 나처럼 자궁이 다 열릴 때까지 진통을 겪고 아기가 내려오지 않아서 제왕절개로 출산을 마무리하게 된다. 사실 첫째가 별 일 없이 컸다면 나도 대수롭지 않게 제왕절개로 둘째를 낳았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첫째는 100일 전후부터 심한 아토피 증상을 보였다. 이제 막 기기 시작한 아이 얼굴에 진물이 흘러내렸다. 아토피 명의라는 의사를 찾아갔지만 받아온 것은 스테로이드와 항생제 뿐, 그나마도 항생제를 먹고 아이가 설사를 해서 요로감염으로 일주일을 입원하기도 했다. 한 살이 되고 두 살이 되면 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시간을 지나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와서인지 피부 상태는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까지도 아토피 증상은 남아있고, 아이는 스테로이드, 항히스타민제와 항바이러스제를 달고 살면서도 밤마다 깨서 온 몸을 긁는다. 땅콩과 견과류에 알러지가 있어 외출 할 때는 꼭 알러지 반응이 나타날 때 응급으로 사용할 에피펜을 들고 나간다.

첫째가 심한 자가면역질환을 가지게 된 것이 꼭 제왕절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는 아토피 유전인자가, 남편의 가족에게는 식품 알레르기 유전인자가 있는 데다가, 아이는 나를 닮아 건조한 피부를 타고났다. 임신 중에 꾸준히 실내 수영장을 다녔던 것 (공기 중의 염소 성분이 알러지를 가지고 태어날 확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햇빛을 충분히 쬐지 않아 비타민 D가 부족했던 것, 아기를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매 끼니 평소 먹지 않던 소고기를 먹었던 것 (나름대로 무항생제 소고기를 사 먹었지만, 알고보니 '무항생제 소고기'라는 것은 도축 전 며칠 간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한다) 등이 내가 의심하는 부수적인 요인들이다. 

어찌 되었건 임신과 출산은 이미 돌이킬 수 없고, 아픈 아이를 두고 얼마나 많은 날을 눈물과 후회로 보냈는지.. 많은 것을 포기하더라도 오로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에게 집중하며 2년 반을 보냈고, 다들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앞으로도 평생 아이 앞에서 나는 죄인일 것이다. 아픈 아이를 둔 엄마 마음은 그렇다.


캘리포니아에서 브이백을 고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둘째를 가진 후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은 최대한 없애고 싶었다. 세탁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샴푸를 포함한 모든 세정제를 끊었다. 청소는 모두 남에게 맡겼다. 일광욕을 하고 수영장에서의 수영은 피했다. 붉은 고기는 가능한 먹지 않았고, 플라스틱 용기 사용도 최대한 피했다. 출산 방법은 마지막 관문이었다. 자연분만을 하게 되면 아이가 산도를 통과하면서 질내 세균에 노출되어 알러지를 가지게 될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두돌이 되면서 더욱 강력한 엄마껌딱지가 된 첫째도 브이백을 고민하게 한 이유였다. 두 번째 제왕절개를 거친 몸으로 갓난아기를 케어하면서 첫째까지 안아 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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