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차가 거침없이 오고 가는데 뻔뻔하게 무단 횡단하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이해한다. 나이가 들고 관절이 예전 같지 않으면 횡단보도 있는 곳까지 고통을 이 악물고 돌아갈 체력이 안된다는 것을.
이제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산다고 젊었을 때처럼 남을 눈치 보는 시간과 에너지 한 푼도 그들에게는 아쉽다. 그 나이가 되면 공중 도덕이란 건 꽤 부질없다.
늙음이 비참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늙어보지 못한 사람은 늙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해 받지 못하기 때문에 비참하다. 그 사실 때문에 아마 많은 젊은 사람은 떨어지는 체력 때문에 생기는 노인의 괴이한 행동과 히스테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과 인식의 지평은 '할 수 있음' 리스트로 강화된다. 나이가 들면 체력 문제로 리스트가 줄어나가고 존재감과 인식의 지평은 약화된다. 거기에는 '도덕을 지킬 수 있음'도 포함된다. 체력과 도덕은 일맥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