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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쓰민 May 08. 2024

부담의 속내

대상이 누구인가

어버이날을 맞아 가족톡방에 안부 겸 인사겸 짧은 글을 남겼다.

4월에 받은 건강검진결과를 엊그제 전달받고 콜레스테롤을 제외한 모든 수치가 정상적이라 결과지를 열기 전까지 조바심 냈던 가슴을 쓸어내린 생각이 났다. 내년 건강검진에 더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에 건강과 은혜와 평안이 함께하길 기도한다는 짧은 바람을 남겼다.

얼마 지나 카톡에 미리 보기 된 내용엔 ‘어버이날 선물은 현찰로 듬뿍’이라는 글이 빼꼼히 보였다. 보는 순간 밀려오는 짜증과 답답함에 눌러 다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식을 현금인출기정도로 생각하는 건지 바로 전달 한국에 다녀가신 다음이라 적지 않은 지출이 있었음을 알고 있으면서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부아가 났다. 소원했던 관계를 풀려 노력했던 마음이 금세 차갑게 변해버린 자신을 보는 것도 좋지 않은 마음을 보탰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어지는 말을 보려 톡방을 눌렀다.

‘어버이날 선물은 현찰로 듬뿍 주면 감사~~ 아니어도 감사~ㅋㅋㅋㅋㅋㅋㅋ

진심 섞인 농담 해 봤어~~~’

내용을 마저 보니 가슴이 터져버릴 듯했다. 눈에 거슬리는 물결이며 웃기지도 않는 내용에 웃음을 표시하고 진심 섞인 농담이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에 기가 찼다.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때다 싶어 쏟아낸 진심이 매우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엄마는 자식을 인출기로 생각하나 봐, 부담스럽네라고 쓰려는 생각을 잠시 멈춰 세웠다.

그새 비집고 드는 생각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저 말을 쓰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애써 찾은 방법이 농담과 웃음을 가장한 진심이라니. 차라리 당당하게 요구했으면 내 마음이 조금은 편했을까 싶다가 아마 그래도 내 기분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란 결론에 이렀다. 다음으로 이 화의 대상이 엄마인지 나 자신을 향한 것인지 ,‘화’인지 ‘미안함’인지 모두가 뒤엉켜버렸다.

내 감정은 그럴지라도 내 말로 인해 다른 형제들의 생각까지 물들어버릴까 대꾸 없는 톡방에 반응을 했다.

자식들이 센스가 없었네, 듬뿍 줄 수 있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멘트와 머쓱함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을 남겼다.


성경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이 있다. 부모에 대한 구절이 나올 때마다 마음을 다잡지만 불쑥불쑥 마주하는 현실에선 다잡은 마음이 쓸모없다. 자식의 도리를 말하기 전에 부모의 도리를 들먹이는 무자비한 마음이 앞설 때면 매번 걸려 넘어지는 이 문제가 나의 아킬레스구나. 이것이 내가 풀어야 할 숙제임을, 그래야 비로소 나아갈 수 있음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결국은 내가 왕성한 경제생활을 했더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서둘러 경제활동을 재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늘 내 감정의 메인이다. 주고 싶은 만큼 주고 싶은 그 마음이 시작이었다. 좋은 마음이 그렇지 못한 마음으로 잔뜩 삐뚤어져 원망의 대상도 그 감정의 색깔도 순식간에 틀어버린 일. 그것이 오늘 시끄러웠던 내 마음의 소리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이런 내 마음을 빨리 알아채 못된 말로 상처를 입히지 않은 일이다.


무엇이 부담되는 순간, 그 대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엄한 곳을 향해 휘두른 말의 칼날은 항상 나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니 말이다.

결국 난 이런 깨달음뒤에야 듬뿍에는 미치지 못해도 부담을 덜어내고 현금을 보낼 수 있었다.

오늘의 이름은 부담의 속내라 적어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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