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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쓰민 Jun 18. 2024

여행핑계

그만하면 됐다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폭신한 잔디에 누워 책을 펼쳐 읽을 것을 상상했었다. 긴 여행에 책만 볼 순 없으니 그래 너무 많이 욕심을 내진 말자 혼자 가는 여행도 아닌데 함께 하는 사람도 배려하자는 오지랖을 떨며 다른 자아를 달랬다. 쓸데없는 짓. 여행 내내 단 한 번도 펼쳐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숙소를 옮겨 다니며 짐을 싸고 푸는 일정에 언제부터는 아예 꺼내두지도 않는다. 염두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드니까지 날아가 경치 한번 관광도 못한 채 캐리어 속에 처박혀있던 두 권의 책은 제목도 기억하지 못한다.


두 권의 책이 심술을 부린 건가? 그렇게 여행을 시작으로 여태컷 책을 읽지 않은 시간이 이어졌다. 여행이 끝난 지 이십일이 지나도록 끝도 없는 여행을 핑계로 글을 멀리했었다. 그러다 며칠 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기운이 꺼질세라 대여섯 권을 재빠르게 결제했다. 우리나라 참 좋지. 다음날 도착한 책은 무슨 놀음인지 모셔놓고는 읽고 싶은 마음이 우러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찬물에도 티백이 우러난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찬물에 우러난 차는 말끔하고 개운한 맛이 있다. 내 차가운 마음에 읽고 싶은 마음이 드디어 우러났는지 어젯밤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이었다. 여행으로 소통의 중요성을 깊게 느끼고 돌아온 나는 이해와 공감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에 무척 이끌렸기 때문이다. 가볍게 잠자리에 들기 전 몇 장만 읽고 자야겠다는 마음보다 더 읽을 수 있던 이유는 일상의 깨달음을 편안하고 쉽게 녹였지만 꼭 알맞은 표현과 단어들의 짜임새가 좋았다. 읽을수록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로 풀 수 있을 만큼 숙성된 이야기는 읽기 편하다. 하지만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글쓰기를 통해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글을 보며 재미도 의미도 지식도 없는 글을 쓰고 있는 내게 조금은 신선한 자극이 되어 주었다. 그런 자극은 도미노가 되어 시드니여행기를 쓰겠다는 작심이틀짜리 나만의 프로젝트를 다시금 가동할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내일은 반드시 도서관에 가서 프로젝트의 다음단계를 완성하겠노라 결심하게 했다. 


어제의 내가 결심한 그것을 오늘의 내가 해냈다. 오늘의 할 일을 마무리하고 이 글을 남긴다. 

오늘 해낸 이 기분을 잘 기억해 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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