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쓰민 Jun 20. 2024

무더위와 무거운 이불

왜 그랬을까

6시간도 훌쩍 넘어가니 이제야 끝이 보인다. 하필이면 이렇게 무더운 날 이불빨래를 결정했을까! 그건 어느 이자카야에서 기름냄새 범벅이 되어 들어온 신랑 때문이다. 12시를 거의 다 칠 즈음 들어와 술 취해 씻지도 못하고 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춥다는 성화에 이불하나를 건네주었다. 밤새 술에 취해 안주에 채해 여러모로 고달팠는지 그 와중에 소란이 들키지 않으려 방문을 꼭 닫고 끝내 먹은 걸 확인했나 보다. 지저분한 화장실, 비릿한 냄새, 수건에 묻은 누런 건더기. 우웩. 비위 상해. 신랑이 일어나자 서둘러 배갯입과 덮고 잔 이불을 빨래통에 넣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끝났으면 됐을 일인데 필라테스를 끝내고 기왕 땀범벅이 되었으니 두꺼운 이불과 베갯솜도 다 빨아 정리를 하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겨울이불은 두께도 있고 사이즈도 커서 애벌빨래 후 세탁기로 들어간다. 반신욕을 하려고 사뒀던 이동식 욕조를 세탁실로 가져와 애벌빨래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세탁실에는 뜨거운 물이 연결된 호스가 없으니 주방에서 솥과 주전자에 물을 끓여다 데야하는 아주 효율적이지 않은 수동식 빨래를 시작한 것이다. 큰 양모이불과 커버, 요와 커버, 솜배게와 라텍스 배게, 그리고 하는 김에 흰 티와 수건들까지 새하얗게 소독을 한다. 그렇게 애벌빨래 후 물 잔뜩 먹은 이불과 베개는 이불을 들어 옮기는 건지 끌려들어 가는 건지 내 허리는 잔뜩 휘어 욕조에 처박힐 기세다.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욕조에서 세탁기로 건조기로 요리조리 옮겨가며 빨래를 한다. 건조기와 세탁기가 돌아가는 시간을 감안해 다음 애벌빨래를 준비하고 내용물에 따라 알맞은 코스를 찾아 한시도 놀리지 않고 열심히 돌아가게 하는 것이 포인트. 마지막 애벌빨래가 세탁기로 가려면 약 30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잘 불려지도록 뜨거운 물을 그득 담아 세제를 풀고 빨래노동에 온몸이 땀으로 적셔진 내 몸뚱이를 씻기로 한다. 너덜거리는 하체와 물 찬 고무장갑 안에서 불어 터진 손가락이 아프다. 쩍 달라붙은 옷을 벗고 씻는다. 나른하고 노곤하다. 어제 설친 잠은 꿀잠이 되어 온다. 오늘은 떡실신각이다. 끝이나진 않았지만 끝이 보인다. 말끔하게 씻었다. 계획대로 건조기, 세탁기 모두 완료. 건조기에 뜨끈한 빨래를 꺼내 침대에 던져두고 잰걸음으로 세탁실로 간다. 세탁기에 빨래를 건조기로, 마지막 욕조에 있는 빨래와 내가 입었던 옷을 세탁기로 들여보낸다. 진짜 물먹은 털이불은 벌렁 드러누운 애 같다. 쥐어짠 뱃심으로 밀어 넣었다. 11시부터 시작해 4시가 다되어간다. 또 한 타임 돌아갈 때까지 충전해야지. 이렇게 진땀으로 뱃심으로 시간으로 애쓴 빨래는 개켜 제자리에 넣으면 그만이다. 무슨 일이 있던 건지 흔적도 없는 것이 우리네 집안일. 그래서 배게는 건조대 주렁주렁 달아둔다. 아무것도 모르면 너무 억울하니까! 

배우자에게 사랑받는 tip : 주렁주렁 달렸으면 무엇이든 칭찬해라. 그것이 얼굴에 달렸는지 머리에 달렸는지 빨랫줄에 달렸던 상관없지~

작가의 이전글 스위스가 시드니를 살렸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