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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Jul 18. 2023

최고의 자기계발서는 고전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독후감

트레바리 '이참에 읽자' 북클럽,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줄거리]

귀족 바라문의 아들인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친구 고빈다와 길을 떠난다. 이후 싯다르타는 사문들과 지낸 고행의 시간, 고타마와의 만남을 통한 배움, 카마스와미와 카말라와 함께한 속세의 삶, 바주데바와 강으로부터 얻은 배움을 통해 진정한 자신으로의 깨달음을 얻는다. 싯다르타의  삶을 통해 개인의 깨달음의 여정을 담은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 『데미안』 - 『싯다르타』 순으로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었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는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했고,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까지 여러명의 스승을 만나며 마침내 존경하는 데미안을 닮은 자신을 발견했다. 『싯다르타』의 싯다르타는 일찍이 진리는 혼자서 깨달아야 함을 깨우쳐 스스로 배움의 상대를 찾았고, 이들을 거쳐 마침내 완전한 자신에 이르렀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조금씩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데 가까워져 간다.


주인공이 마침내 완전한 자신을 깨달아가는 여정을 담은 『싯다르타』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자기계발서 중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 책이다. 이 아름다운 고전소설을 자기 계발이라는 자본주의적인 단어에 빗대는 것이 어색하지만, 싯다르타가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들은 신기하게도 요즘 나오는 여러 자기계발서에서 추천하는 조언들과 같았다.


싯다르타가 부처를 떠난 직후 마음의 원인을 바닥 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는(p.59) 과정은 drill down, 5 whys 방법론을 연상한다. 그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 영혼에 침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p.93)고 말하는 그의 태도는 '몰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싯다르타는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알고, 사색할 줄 알았기 때문에(p.97)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할지언정 카마스마리와의 관계에서 동등함 이상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지난한 속세의 삶을 마치고 강가로 돌아와 깨달은 '강은 언제나 변하지만 언제나 그대로다'라는 비밀(p.147)은, '늘 새롭지만 본질은 유지하라'라는 모든 브랜딩 책에 등장하는 법칙을 떠오르게 한다. 브랜딩의 결론은 결국 자기다움을 찾는 것으로 모아지는데, 따라서 시간의 비밀은 브랜딩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우리는 현재를 산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에게 과거와 미래라는 개념도 함께 가져다준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복잡하게 과거와 미래를 계산하기 보다는 현재에 가장 충실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했던 선택들이 자신이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이 되는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 경영이 요구되는 시대다. 자기 경영이라는 실체 없는 이상은 몇 년 단위로 용어를 바꿔가며 항상 서점의 '자기 계발' 코너에 존재하는데, 최근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는 역시 '브랜딩'이다. 나 역시 작년부터 취업 준비와 개인적인 성장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브랜딩 책을 열몇 권 정도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다들 얼추 비슷했고,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말들이라 크게 새롭지 않았다. 싯다르타가 모든 지혜는 말로 옮겨지는 순간 바보 같은 소리가 된다고 말했던 이유는, 자기계발서나 설법은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쓰이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희석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문학은 은유적이다. 그 의미가 한 번에 읽히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과정 자체가 공부가 된다. 그리고 읽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하기 때문에 문학은 사람들이 각자의 길에 이르도록 돕는 촉매가 된다. 그중에서도 시대를 뛰어넘어 널리 읽히는 고전이야말로 진정한 자기계발서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싯다르타』를 읽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평소 눈길이 가장 많이 가는 책장에 문학과 철학책을 옮겨놓은 것이다. 실용서와 자기계발서는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책장으로 옮겼다. 책장에 여유가 있어서 버리지는 않았지만 자리가 모자라게 되면 가장 먼저 버리게 될 칸이다. 원래는 작업에 당장 참고할 수 있는 실용서들, 그리고 '읽기'가 아닌 '보기'를 목적으로 하는 기분 전환용 책을 가장 가까이에 두었고, 문학과 철학책들은 시간이 날 때 읽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배치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싯다르타』를 읽고 나니 의식적으로 가까이해야 하는 책은 고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전으로부터 즉각적인 도움을 얻기는 힘들겠지만, 꾸준히 읽다 보면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내 힘으로 그 순간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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