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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Jul 27. 2023

르네상스 논쟁: 구성과 색

국립중앙박물관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전시 기간: 2023.06.02~2023.10.09

관람일: 2023.07.20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보고 왔다. 15~19세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어서 서양 근대 회화의 발전 양상을 넓고 얕게 볼 수 있다. 전시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와 지역은 무척 넓은데 보여줄 수 있는 작품 수는 한정되어 있다 보니, 다양한 지역의 발전 양식을 선별적으로 다루게 될 수밖에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이탈리아 중심으로 전시가 흐르다가 갑자기 북유럽이 튀어나오는 식의 흐름이 그랬다. 그래도 그림에서 흥미로울 만한 요소들이나 중요한 감상 포인트를 보기 쉽게 정리한 캡션 디자인은 좋았다. 디세뇨disegno(구성)와 콜로레colore(색)에 관한 캡션이 있었는데, 지역에 따라 사용한 물감 종류가 달랐다는 점이 흥미로워 그 배경을 찾아보았다.

디세뇨disegno(구성)와 콜로레colore(색)에 관한 캡션



르네상스 논쟁:

디세뇨disegno(구성)와 콜로레colore(색)



상업 귀족의 출현으로 인문주의가 유행했던 르네상스 시기에 조형예술 분야가 발달하면서 개인 예술가들이 다수 출현하기 시작했고, 자연히 예술가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했다. 여기서 시작된 신경전을paragone(논쟁)라고 불렀는데, 문학 대 미술, 회화 대 조각과 같은 몇몇 주요한 논쟁들이 있었다. 그중 '디세뇨disegno(구성)' 대 '콜로레colore(색)' 논쟁이 전시에 소개되었다.


디세뇨disegno는 그림의 '구성'을, 콜로레colore는 그림의 '색'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중부의 피렌체 사람들은 디세뇨를, 동방 무역이 활발했던 항구 도시 베네치아 사람들은 콜로레를 더 중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전시에서는 피렌체인들이 사용한 템페라는 매우 빨리 마르기 때문에 색을 덧칠할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구성'에 집중하게 되었고, 베네치아인들이 사용한 유화 물감은 느리게 마르기 때문에 색을 여러 번 겹쳐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어 '색'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도 맞는 설명이지만,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 데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시를 본 뒤, 재료의 영향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함께 찾아보았다.




2-1. 디세뇨disegno(구성)


피렌체는 전기 르네상스를 이끈 상업 귀족 메디치 가문의 본거지로, 상업 귀족들은 인간 중심 사회였던 로마 문화를 흠모했다. 그리스 로마 고전주의를 탐구하던 피렌체의 예술가들은 자연을 단지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찾아 규범화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신이 창조한 완전한 우주를 재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 역시 신의 창조물이니 그러한 인간의 창조물은 곧 신의 창조물이라 여긴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바탕은 르네상스 때 '창조'의 결과물이 가시화된 조형예술 분야가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이상적인 비례 법칙을 화면의 구성과 인물의 포즈를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법칙과 선이 중시되는 경향 아래, 이들은 색을 덧칠할 수 없는 템페라와 프레스코의 단점을 상쇄할 수 있었다.


구성의 기초가 되는 드로잉은 모든 미술의 기초로 여겨졌고, 그래서 피렌체 예술가들은 해부학과 원근법을 발전시켰다. 예술가들은 좋아하는 포즈나 모티프를 모아 패턴북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르네상스 시기에 드로잉은 위대한 예술가의 생각을 보여주는 도구로 생각되어서 드로잉만 전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피렌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다빈치가 해부학을 연구했던 것, 미켈란젤로의 인물들이 역동적인 근육과 다양한 포즈들을 취하고 있었던 것 등 평소 알던 예술가들만 떠올려 보아도 디세뇨의 특징을 쉽게 알 수 있다.


〈개인적인 추측을 더해보자면, 전시에서 본 작품 중 〈성모자와 세례 요한The Virgin and Child with the Infant Saint John the Baptist〉이라는 라파엘로의 작품은 오더(기둥)와 엔타블러처(보)가 있는 고전주의 건축의 액자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재에 있는 성 히에로니무스 Saint Jerome in his Study〉는 그림 자체에 건축물로 프레임을 만든 것처럼 모서리 부분을 건축물이 둘러싸고 있다. 회화에 건축 프레임이 적극적으로 사용된 것도 '구성'을 강조한 피렌체 르네상스 회화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성모자와 세례 요한The Virgin and Child with the Infant Saint John the Baptist〉
〈성 히에로니무스 Saint Jerome in his Study〉



2-2. 콜로레colore(색)


이렇게 사회적 영향이 컸던 피렌체와 달리 베네치아는 환경의 영향이 컸다. 베네치아는 항구 도시로 도처에 물이 있고, 공기도 습윤하다. 그래서 당시 회화의 주재료였던 회벽에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와 계란 노른자를 안료와 섞어 쓰는 템페라는 공기 중 수분으로 인해 잘 썩는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피렌체가 고전주의에 심취해 건축에서도 오더(기둥)와 엔타블러처(보) 구조로 '완전한 이상'을 표현했다면, 베네치아는 동로마 제국의 영향을 받아 색 대리석과 황금빛 모자이크를 주로 사용하는 비잔틴 양식의 건축이 많았다. 비잔틴 건축이 가진 색감과 도시 곳곳이 물에 반사되는 풍부한 색채감의 환경. 따라서 건축에도 원근법을 적용하는 등 주변 환경 자체가 규범들의 산물이었던 피렌체와 달리 베네치아는 독자적인 환경이 그 자체로 융성했고, 베네치아 예술가들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베네치아의 환경에서 크게 두드러지는 색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 더해, 16세기 초중반 로마 대 약탈로 로마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전기 르네상스를 이끌던 예술가들이 후기에는 상업이 발달한 베네치아로 이주한 역사적 배경도 있었고, 피렌체 예술가들이 만든 고전 규범이 정점에 달하면서 이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감이 생긴 양식적 배경도 있었다. 이때 마침 북유럽에서 개발된 유화 물감이 바다를 건너 베네치아로 수입되었다. 베네치아 화가들은 '구성'에 대한 피로감을 상쇄할 새로운 재료로 유화 물감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들은 드로잉 연습 없이 바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고, 색을 여러 번 겹쳐 이들이 주변에서 보았던 풍부한 색채감을 그림으로 옮겼다.

〈여인Portrait of a Lady〉- 전시에서 베네치아 르네상스 회화 사진을 찍어오지 않아서 18세기 그림으로 대체. 유화로 그린 것은 맞다.




지금은 건축가와 화가라는 직업이 뚜렷하게 분리되어 있지만 르네상스 시기 전까지 회화는 건축의 하위 장르였다가 르네상스 때 문화예술이 부흥하면서 독립적인 장르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분리가 시작된 르네상스 시기에는 화가와 건축가를 겸한 예술가들이 많았다. '구성'과 '색' 논쟁은 각 지역의 예술가들이 사용한 재료의 차이도 있지만, 이들이 살았던 자연환경과 건축, 이들이 공부했던 철학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근대 이전까지 건축은 모든 예술 장르의 집합체로, 시대의 예술을 대표하는 장르였다. 서양 건축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건축을 공부함으로써 그 시대를 이해하게 됨을 발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전과 전시 보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공간 디자이너로서 공간의 배치에 집중해 전시를 봤다면, 최근에는 작품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 새로운 방식의 전시 감상법도 이전 못지 않게 즐겁다.





참고문헌

박인석, 「건축 생산 역사 1」, 마티, 2022, 112

박인석, 「건축 생산 역사 2」, 마티, 2022, 38

Oxford Art Online, “disegno colore”, https://www.oxfordartonline.com/page/1635, 2023.07.27

Medium, “disegno colore”, https://medium.com/@nodoveacovenant/design-versus-illusion-disegno-vs-colore-in-painting-1d05e6969e07,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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