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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Oct 15. 2023

카프카가 화가였다면

일민미술관 《I Like to Watch》

전시 기간: 2023.09.07~2023.11.12

관람일: 2023.09.19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이시 우드의 개인전 《I Like to Watch》를 봤다. 전시를 보는 내내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읽은 프란츠 카프카가 떠올랐다. 우드는 21세기의 미국인, 카프카는 20세기의 체코인으로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았지만, 두 사람 모두 권위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성장 배경과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며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 성향이 무척 비슷했다.



1. 프란츠 카프카(1884~1923)

연도순으로 카프카부터 살펴보면, 카프카는 체코의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부유한 상인이었는데, 아버지는 카프카를 좋은 환경에서 기르기 위해 체코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독일어를 사용하는 학교에 보냈다. 민족, 출생지, 언어적 배경이 일관되지 않았던 카프카는 이 때문에 안정적인 성장배경을 갖추기 어려웠고, 카프카의 작품 전반에 카프카만의 불안한 느낌을 형성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급증했지만 인간이 존중되지 못했던 20세기 초반, 카프카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등 사회 구조에 의해 소외당하는 개인의 고통을 소설로 표출했다. 특히 사람이 벌레가 되거나 비정상적인 장소에서 재판이 열리는 등 비현실적인 상황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카프카만의 문체는 ‘카프카스럽다(kafkaesk)’는 용어로 불릴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게 되었다.



2. 이시 우드(1993~ )

우드는 카프카와 무척 비슷한 배경을 가졌다. 그녀는 과학을 맹신하고 정신은 주술적 사고로 무시하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정체성의 기반이 되는 존재인 가족들과 다른 성향을 가졌던 그녀에게 의사 가족들, 특히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는 안정적인 환경이 되어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드는 일상에서 느낀 불안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시 우드의 그림들

일상에서 그림의 소재를 발견하는 방식은, 현실적 소재를 비현실적으로 표현하는 이시 우드만의 스타일을 형성하면서도 우울, 불안, 두려움과 같은 현실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스타일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드가 주로 사용하는 캔버스인 린넨은 빛을 흡수하는 특성이 있어 그 자체로 어둡고 텁텁한 느낌을 주고, 그려진 이미지들은 지나치게 확대되어 여기저기 잘려 있다. 이미지들은 린넨의 특성 때문에 매끄럽지 않고 흐릿하게 마감된다.


그림 외에 우드가 직접 제작하는 뮤직비디오 역시 일관된 스타일을 갖는다. 해상도 낮은 3D 이미지, 사진을 이어붙여 움직이게 만든 스톱모션, 풍선으로 만든 현실의 이미지들처럼 우드는 현실을 재현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질적인 세계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두 작가는 불안정한 성장 배경과 가부장적인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어려움, 이로 인한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작품 성향까지 공통 분모가 많다. 특히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내가 끊임없이 기록하고 대칭적으로 완벽한 그림의 성향을 가진 이유 역시 부모님의 영향이 어느정도 있었겠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작품을 볼 때 성장배경은 그다지 주의깊게 보지 않았는데, 배경을 이해하니 작가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는 전시에서 주는 정보들도 편식하지 않고 고르게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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