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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둥이긴개 Apr 28. 2024

나쁜 목소리는 없습니다

  작년에 성우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겨 수업 과정을 신청한 적이 있다. 직장에서도 목소리 톤이 꽤나 좋다고 많이 듣기도 했었고. 어쩌면 나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신청하게 됐다. 그리고 백세 시대에 현재 하고 있는 일만 갖고 계속 살아가기에는 불안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었고,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넓혀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수업 첫날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각자 온 계기는 모두 달랐다. 취미로 연극을 하다가 목소리를 더 다듬고 싶어서 온 사람, 한 아이의 아빠로서 책을 잘 읽어주고 싶다는 소망에서 온 사람 등등. 성우를 생각하고 온 사람은 의외로 적었던 거 같다. 취미반이라서 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쁜 목소리는 없습니다. 본래의 자신의 목소리를 잘 살리면 됩니다. 


  정확하게 이 멘트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으나, 이런 취지의 말을 선생님으로부터 자주 들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와닿지는 않았다. 결국은 예체능의 영역이고, 재능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고정관념으로 박여있던 나였다. 


  하지만 다양한 상황 속의 배역을 맡으며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다가 문득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 이 수업에 왔을 때 목소리 톤이 안 좋다고 느꼈던 분이 계셨다. 처음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남자인데 얇상한 톤과 성량이 보통 사람보다 좋지는 않아서 사실 "첫 귀"에 기분 좋게 들리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마 이 분도 취미로 왔겠거니 싶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전부터 다른 학원을 다니시면서, 성우를 준비하셨던 것이다. 음... 남의 일이긴 하지만 좀 걱정되기는 했다. 


  과정이 끝나가는 회차 중에, 짧은 애니메이션을 연기하는 게 있었다. 해보면서 느낀 게 나 같은 굵은 톤은 그렇게 어울리지는 않았다. 나는 애니메이션과는 상극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근데 그분이 입을 떼자마자 매우 놀랐다. 단점으로 생각했던 얇상한 톤이 애니메이션이랑 아주 잘 맞았던 것이다. 가볍게 들리는 배경 음악과 캐릭터와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비로소 나쁜 목소리가 없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히려 그분으로서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다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반대로 내 목소리는 특징 없이 좀 식상하지 않을까라는 비교적인 심리도 와닿았다. 나는 반성했다. 


  성우 수업을 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오랜만에 이번 글을 읽은 내 목소리를 한번 담아보고자 한다. 지금은 하는 일에 욕심이 생겨서 살짝 생각은 접었지만, 그래도 틈날 때마다 대본을 보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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