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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둥이긴개 Feb 22. 2024

한밤의 슬픔과 꿈 (2)

밀려오는 적막함

  한 병을 비워내고 나니, 무언가 아쉬웠다. 아직 갈증이 입안에 남아있었다. 과연 목이 말라서 갈증을 느낀 걸까 아니면 좀 더 고양된 취기를 느끼고 싶은 걸까?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 병을 더 꺼냈다. 일렁이는 노란빛과 마주한 나는 땅을 파는 개처럼 마개를 감싼 커버를 벗겨냈다. 코르크마개를 따고 나니, 오렌지향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깨끗한 유리병에 담긴 노르스름한 와인은 금처럼 화려했다. 하지만 빛이 지나가는 속처럼 어딘가 허전하게 보이기도 했다. 


  새로운 술로 다시 석 잔을 비워내니 취기가 상당히 올라왔다. 몸에서 조금씩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고, 주방 테이블에서 침대로 자리를 옮겨 음주를 이어갔다. 왠지 환하게 하얀 전등을 켜고 마시는 게 어색해 침대 스탠드를 켜고 방의 불을 껐다. 스탠드의 주황빛이 내려앉았고 나 또한 홀로 침대 머리맡에 걸터앉아 풀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나 혼자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하염없이 머릿속에서 되새김질을 반복했다. 그럴수록 마치 펌프질을 받는 풍선처럼 외롭다는 생각이 부풀어 올랐다. 

  

  요새는 1인 가구 시대니까 혼인률도 낮고 연애하는 사람들도 적어졌고, 나도 누군가를 만나기 힘든 환경이고, 마땅한 사람 없으면 혼자 살아야겠다... 아니 적어도 혼자 살아갈 결심은 해야겠구나. 그렇게 다독여왔던 나였다. 하지만 그건 결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심이란 내가 마음먹고 행하려는 마음이지, 목줄에 끌려가는 개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버티는걸 과연 결심이라 할 수 있을까. 

  "툭툭" 이슬처럼 몇 방울 떨어지던 눈물은 어느새 잔으로 흘러가는 와인처럼 하염없이 뺨을 타고 내렸다. 잔을 채워가는 술처럼 슬픔도 가득 메워가고 있었다. 옛날이야기 중에 자식들에게 빈 방을 가득 채워보라고 했더니, 가장 지혜로운 자식은 촛불의 빛으로 메웠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사람이 있는 공간은 이미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 기쁜 날에는 기쁨이 가득할 것이다. 잘 나가는 카페는 사람들의 북적임이 가득할 것이다. 허나 이 순간 내 방은 슬픔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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