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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Oct 23. 2021

봄이의 위로

나에게 돌아온 말

  정말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대학시절부터 결혼 후까지도 꾸준히 일해왔던 전공과 경력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새로운 전공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틀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말이다. 영어교사로 10년 넘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왔는데, 한 순간에 내려놓기가 마음이 아프고 아까워서 꽤 오랜 기간을 망설이고 속상해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와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할 것 같은 것, 성공한다면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게 이혼하고 난 지금에는 더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야 했고, 아이에게는 나이 들어서 최대한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외동아들인데 혹여나 나 때문에 결혼할 때 힘들어질까, 부담을 지우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되었다. 그래서 임용고시를 보는 것이 우리의 상황에서 최선의 옵션이라고 생각했다.


 방향을 정하고 나서도 마음을 쉽게 다잡을 수 없이 또 고민에 빠졌다. 그냥 계속 영어로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임용고시를 보려면, 나는 시간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닌데,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고 생각했다. 시간을 낭비하게 되면 어떡하지? 이게 단기간에 되는 공부일까? 끊임없는 불안함, 불확실성 때문에 망설였다.


  고민 끝에 이렇게 결정을 했다. 다니던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신청할  있어서 1 유급 육아휴직을 걸어놓고,  기간 동안 공부를 하기로 말이다.  당시 육아휴직비는  낮아서  50 원을 받았다. 양육비도 받았다가  받았다가 거의 끊겨가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주말에 오전 카페 알바까지 병행하기로 하였다. 알아보니, 육아휴직 중에  15시간 이하는 합법적인 것이라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페는 시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등성이에 있던 곳이어서 손님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주인분께는 조금 죄송하기는 했지만,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틈틈이 전공서적을   있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영어 석사도 있고, 경력도 많은데 그냥 몸 덜 고되게 과외를 하면 되지 않냐는 지인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아르바이트처럼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공부로도 충분히 스트레스받고 머리가 복잡한데, 누군가의 내신 준비를 해주면서 내공부를 하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둘 중 하나의 공부에 소홀해질게 뻔했다. 그래서 카페에서 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육아휴직을 결정하고 이제 공부하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주변에 알렸다.

응원해주는 친구들도 많았다. 아니 사실, 내 친구들은 모두 응원과 격려를 해주었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은 알더라도, 내가 선택한 것이니 지지해주고 믿어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인 중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너 지금 이런 상황에서 임용고시 공부한다고? 야…(웃음) 너도 솔직히 알잖아.
그거 현실도피라는 거… 그냥 현실적으로 그거 말고 다른 걸 해. 영어 할 줄 안다며? 그럼 그쪽으로 가~


그 얘기를 듣고는 불안감이 커졌다. 이미 난 이 길로 결정해서 주변 환경 세팅 다해놨는데, 이제 공부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말 이건 누가 들어도 불가능한 일을 내가 허무맹랑하게 선택한 걸까? 누가 생각해도 그런 상황인 건가?  그 지인은 계속 얘기했다.


내가 임용 준비하려다가 포기했어. 왠 줄 알아? 단기간에 절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야. 절대로!


그 사람 때문에 그날은 참 심란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인 일인데, 그 사람과는 점차 연락이 끊기게 되었고 나는 그냥 그  불안한 마음을 잡고 내가 결정한 길로 일단은 최선을 다해 가보도록 했다. 연락이 안 끊겼다면 계속 내 옆에서 그런 말을 해주었을 것이고 나는 많이 흔들리거나 포기하지 않았을까를 상상해보면 끔찍하다.


그리고,  육아휴직을 쓰고 나오면서는 직장 보스가 나에게 휴직에 대해 물어보면서 임용고시 준비해보려 한다고 얘기했더니 또 비슷한 얘기를 하였다.


1년 만에? 호호호호~ 다시 여기로 돌아와서 만나게 될 것 같은데? 그때 다시 만나요~ 호호 홍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었겠지만, 불쾌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내 결정에 비웃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조언하는 건지 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불가능한 선택은 한건 아닐지 책을 펼치고 펜을 들고 있으면 문득문득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는 했다.


그리고 그런 의혹들이 올라올 때마다 머리를 흔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지우려고 노력했었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이 쉽게 가라앉는 건 아니었지만, 하루에 봐야 할 책이나 공부량이 많았기에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그렇게 반년을 지내오다가, 시험 보기 100일 전쯤인 8월쯤 되니까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이 시험이 안되면 정말 어떡하지?


다시 만나자면서 웃던 상사나, 현실도피라고 했던 지인이 그것 보라며 웃는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서 눈물까지 계속 나왔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여기저기 하소연하기도 어려웠다. 아이가 유치원 가고 나면 무조건 책가방 싸들고 카페나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계속 공부하다가 봄이가 유치원 하원 하는 시간에 맞춰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시간에는 최대한 같이 있어주고, 9시가 딱 되면 봄이는 잠자리에 들게 하고 나는 침대 발치에 위치한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최대한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처음에는 새벽까지 늦게 공부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몸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자가면역 질환자여서 몸이 안 좋아지면 공부하기에 지장이 크게 올 수 있는 상황이어서 딱 12시가 되면 자고 차라리 일찍 일어나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새벽 4,5시에 알람이 없이 일어났다. 잠이 많아서 20대에만 하더라도 주말에 12시에나 일어나던 나였는데, 그만큼 간절했고 절실했다.


그렇게 불안하던 그때, 봄이에게 큰 위안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봄이가 자기 전에, 책상에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문득 말을 했다.


엄마, 1등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거야. 알았지?


그 말이 기억이 났다. 어린 봄이가, 혹시나 1등을 못해서 속상해할까 봐서, 열심히 했던 게 중요한 거지 꼭 1등 안 해도 돼.라고 내가 언젠가 위로해주면서 말해주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6살 아이가 나에게 이 말을, 내가 제일 위로가 필요한 때에 나에게 돌려주다니… 깜짝 놀라기도 했고 찡하기도 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건 사실, 결과가 중요하다. 결과가 합격이어야 내가 공부한 그 시간이 아이와 나에게 보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냥 아이의 그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 고마워 봄이야. 오늘은 엄마가 오랜만에 같이 누워서 재워줄게. 가자!


  아이는 내가 공부하느라 몇 개월째 혼자 누워서 잠들었다. 물론 내가 침대 발치에서 공부하고 있었다고 해도, 내 품이 그리웠는지 공부하다 뒤 돌아 아이를 보면 어느새 내쪽으로 기어와 잠들어있어서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같이 누워서 재워준다 하니 신나 하면서 누웠다. 안쓰러웠다.

아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토닥토닥해주는데… 아이가 금방 잠들었다. 아이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작은 등이 든든하고 듬직해서 살포시 얼굴을 갖다 대었다. 눈물이 났다. 아이가 꺨까봐서 아무 소리도 안 내고, 미동도 안 하고 눈물만 흘렸다. 얼마만큼 누웠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눈물 온도 때문에 깰까 봐서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감동스러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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