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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23. 2021

나였다, 딱지가 붙도록 놔둔 건…

넌 특별하단다 연극을 본 후

 인생을 아가면서, 고전작품들은  번은 최소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세 번은 다음과 같다; 인생 초년기, 중년기 그리고 노년기.


 나는  말을 어디에서 들었을까? 이제는 기억이 안 날정도로 오래전 들었던 말인데,  말에 공감한다.  

 내가 어릴 적에 읽었던 그 작품들을 몇, 다시 읽어 보았을 때 느끼고 알게 된 것은, 어릴 때는 잘 모르고 지나갔던 숨겨진 상황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아는 경험치가 그간 쌓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살아오며 겪었던 많은 경험들이 나로 하여금 같은 글을 다른 느낌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주며 읽게 해 주었다.


그런데 꼭 고전작품만이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좋은 예술작품이라면  그러한 경험을 우리에게 충분히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아이들만의 것이라고 여기던 아동문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2017년, 이혼 후 친정에서 살고 있던 나는, 주말에 그 당시 6살이던 아들의 손을 잡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 대학로에 갔다.


어릴 적에 부모님과 나, 그리고 여동생 이렇게 넷이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녔던 것 같다. 어릴 때여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부모님이 정성껏 남겨둔 사진이나 기록 등에서 전국 휴양지, 관광지를 다닌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 즈음, 우리는 서울에 사는데 아빠는 경상도에 발령을 받으셔서 장시간 떨어져 지냈었다. 처음엔 주말에 올라오시다가 몸이 고되었던지 2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정도로 간격이 멀어졌었다. 그리고 워킹맘이셨던 엄마는 사춘기의 나와 내 동생을 데리고 틈틈이 주말에 여기저기 다녀주셨다. 미술관, 전시회장, 극장, 영화관, 서점 등 다양한 곳으로 말이다.  일하느라 피곤했어도 엄마 또한 우리에게 최대한 다양한 것을 보여주고 체험시켜주려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엄마도 독박 육아하면서 참 애쓰셨다. 아빠 또한 멀리서 외로이 직장 다니시느라 애쓰셨고 말이다. )


나 또한 이혼하고 내가 마음 정리가 안되어 괴롭더라도, 아이의 5살은 그때뿐이고, 6세도 그때뿐이기에 내가 평일에는 일하느라 챙겨주지 못해도, 아이와 있는 주말만큼은 같이 여기저기 다니려고 노력했다. 내가 자라면서 좋았던 건 최대한 물려주고, 안 좋았던 건 싹 걸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 부모님이 두 분이 나와 동생에게 해준만큼 나 혼자 내 아이에게 해줄 순 없어도, 노력이라도 하고 싶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알려줘야 할 중요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여기저기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세상엔 이런 것들이 있어, 재미있지?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거야. 엄마가 아는 건데, 이건 이런 거야.”라고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걸 가르쳐주는 것 말이다.


그래서 아이와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세상 구경을 하고, 연극을 보여주러 대학로에 갔던 것이다.

왠지 뭔가를 계승해주는 느낌이 들어 특별했다. 내가 엄마손 잡고 동생이랑 연극을 봤던 바로 그 극장에 아이와 나 단둘이 연극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랬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별 기대 없이, 그리고 어린이 연극인데… 아이를 위해 온 것일 뿐 그다지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생각에 빠졌다가 연극을 봤다가 푹 빠져서 관람 중인 아이의 얼굴을 힐끗 봤다가 귀여워서 웃다가 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관람하다가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깜짝 놀라고 결국 눈물을 흘렸다. 바로 그 내용 때문이었다.


이혼하기 전에 ‘너는 특별하단다’를 읽었을 때는, ‘당연하지~누구나 다 특별하고 소중한 거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었다. 그냥 뻔한 좋은 교훈이 담긴 책정도.

그런데 이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연극을 보고 있으니,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이다.


주인공은 자기 몸에 온통 달라붙은 안 좋은 의미의 표식인 똥딱지(어린이들을 위한 연극이라 용어가 약간 각색되었다)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몸에 별 딱지도 똥딱지도 붙지 않은 인형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 인형에게 물어본다. 어떻게 아무런 딱지가 없냐고 말이다.

그 인형의 대답은..


똥딱지도 별 딱지도,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붙은 거야. 
남이 어떤 딱지를 주더라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거든.
네가 그런 것에 의미를 두지 않으면 딱지들은 떨어질 거야


눈물이 왈칵 났다. 마치 나에게 하는 얘기 같이 아팠다.

내가 이혼을 했다고 움츠려 들고 괜히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된 것 같아 짜증 나던 참이었다. 누군가 손가락질하거나 수군거리진 않을까 내내 신경 쓰였다. 그 누구도 내 앞에서 대놓고 얘기하거나 손가락질한 적은 없지만 사회적 편견과 온갖 미디어에서 접한 이혼가정/한부모가정/애 딸린 이혼녀/홀어머니 등에 대한 이미지만으로도 움츠러들었다.

그 똥딱지는 내가 붙인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딱지를 붙이고 있다는 건 내가 그것에 매우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다른 똥딱지를 던져도 너무나 쉽게 달라붙을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딱지를 주어도 내가 안 받고 안 붙이도록 하면 되는 거였네. 나였네. 딱지가 붙도록 놔둔 건.

아이가 보지 못하게 쉴 새 없이 눈물을 닦고 코를 풀었다.


살다 보니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은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그리고 그것은 뒤에서 이야기가 돈다. 비밀스럽게든 요란하게든의 차이일 뿐.

그런데 숨길만한 일도 그 당사자가 아무렇지 않게 공개하고 이야기하면, 그냥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여겨지고 대해진다. 정말 그렇다. 그렇게 공개했는데도 뒤에서 이야기가 돌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비난을 받게 된다.


아이와 연극을 보러 갔던 2017년에서 시간이 흘러 이젠 2021년…

 이젠 내 직장에서 이혼했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고 다닌다. 더 나아가 농담의 일부로 사용하기도 한다.

나 이혼했어. 나 건들지 말라는 얘기지.”

누가 나에게 이혼과 관련한 똥딱지를 던져도 나한테 붙지 않는다. 그 딱지를 던진 사람에게 가서 붙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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