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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Oct 01. 2021

싱글맘 레벨 1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그림을 그렸던 건, 이혼하고 나서 친정에서 아이와 함께 살 때였다.

4년인가 5년 전 일인데도 기억이 난다.


이혼하고 친정으로 몇 가지 가구와 짐들을 챙겨서 들어갔다.

꽤 넓은 부모님 댁의 거실 한가득 내가 가져다 그냥 쌓아둔 옷장, 서랍장 등과 온갖 사소한 짐들이 중간에 느닷없이 솟아난 돌탑처럼 항상 쌓여 있게 되었다.  거실을 지나갈 때마다 내가 이혼했다는 현실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 괴롭고 죄송했다. 거실은 더 이상 거실 역할을 못하고 황무지처럼 한동안 버려져있었다. 거실에 쌓여있는 가구들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중압감이 가슴을 누르는 듯했고, 모두가 아이 때문에 억지로 웃고는 있지만 뭔가 모를  불편한 마음이 서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혼 전에 내 방이었던 바로 그 방에서 아이와 둘이 생활하게 되었다. 침대와 책상은 기본으로 있고, 내가 챙겨간 짐들을 여기저기 배치했다. 부모님도 나도 뭘 정리하고 치울 정신적 여력도 없고, 그냥 두었던 것 같다. 정말 엉망이었다. 공간도 마음도 말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내 방만은 정리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손자 생각이 끔찍한 부모님이 우리 방만은 포근하게 꾸며주셨던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는 포근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매우 불편했다. 마음이 힘들어서 그랬었겠지…


부모님이 의식주를 제공해주셔도, 그건 의식주일 뿐 생활비나 내 용돈 정도는 내가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앞으로 내가 아이와 내가 살아갈 가정의 가장은 나라는 생각에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마음을 부둥켜 잡고 이혼 후 거의 바로 일을 시작했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직업에 적응하면서 낮에는 웃고, 밤에는 모두가 잠 들고나서야 소리 죽여 미동도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잠들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말… 모두 맞다.

내 인생에서 가장 낮고, 가장 괴로웠던… 그렇게 영원히 낫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혼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더디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예전보단 나았다.  조금씩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고 씩씩하게 잘 버텨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그것도 밤에 혼자 소리 없이 우는 것이 아니라 무려 낮시간에 말이다.


 이혼 후 나와 아이가 지내게 된 그 방은 대부분 아이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침대, 책상, 의자, 카펫 등으로 말이다. 그래서 내 물건들을 넣을 서랍이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구획을 나누어 내 물건을 이리저리 쑤셔놓았었다. 그리고 그중 내 통장들과 중요한 서류 들을 책장 맨 위칸에 두었던 게 생각이 난다. 이미 책들로 가득한 책장이어서 책과 책 사이에 세워서 꼽아두었다. 따로 어디 둘 데도 마땅치 않고 해서 그렇게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통장을 확인해야 할 일이 있어(인터넷 뱅킹 로그인을 하려면 계좌번호를 입력해야 했었다…;) 그 책장에 가서 찾아봤다. 그런데 없었다!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여기 내가 통장 올려놨었는데.. 혹시 여기 치웠어요???”

나는 조금 짜증도 났다.  

‘또.. 엄마가 정리한다고 여기저기 막 버린 거 아니야? 아니면 다른데 두고 기억 못 하시는 거 아니야? 나 지금 급한데..’

“아니? 나 안 치웠는데?”

엄마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신경질적으로 선반 맨 위 책들 사이사이를 벌려 확인해보았다. 없었다.

갑자기 절망적인 기분이 들더니 눈물이 펑펑 났다.

그냥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다른 방에 가족들이 있으니 소리 내어 울진 못했지만 눈물 때문에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 꼭 내 인생 같잖아. 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다 뒤섞여버렸어. 못 찾겠어… 왜 내 팔자는 이런 거야… 정말… 왜’


이렇게 사소하고 작은 일에 이토록 눈물이 터지다니 울면서도 황당했지만, 굉장한 절망감에 한동안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간단한 일… 통장 하나 찾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든 거야 나는..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졌다.

그리고 꽤 울고 나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살겠다고 꼭꼭 잘 참아오고 눌러왔던 감정이 작은 사건 하나에 터져버린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때 이 에피소드에 그린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큰 돌멩이는 용케 피하고 잘 지내오는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작은 돌멩이 하나에 맞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 어쩌면 그동안 내가 아무렇지 않진 않았나 보구나, 내가 애써 내 감정들을 참고 누르면서 살아왔나 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도 엄마라고…

20대.. 미혼일 때는 내 감정에 푹 빠져 잠수를 타거나 아무것도 안 해도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도 있고 그냥 쓰러져있을 수만은 없는 나이기에..

나야.. 엄마라고 정말 고생이 많다. 살려고 노력 많이 하는구나.. 그런데 싱글맘도 레벨이 있겠지.. 안 그래? 난 이혼을 한지 얼마 안 됐잖아..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더 단단해질 거고 지금 힘든 것들이 덜 힘든 때가 올 거야.. 그러니까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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