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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지 Dec 07. 2023

낯선 도시에서 참치캔 따기, 그 사소하고 중대한 이질감

영국 생활 에세이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 Spin-Off

*이 글은 영국 잉글랜드의 작은 도시 '바스(Bath)'에서 생활하며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입니다.


< 이국적인 느낌의 영국 잉글랜드 작은 도시 '바스(Bath)'의 거리 풍경 >


낯선 나라,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건물의 외관, 도시의 분위기 등 전체적으로는 ‘이국’을 느끼게 하지만,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때론 시간적 정신적 비용을 소모케하는 낯선 도시의 생활. 영국 작은 도시에서의 일 년을 담은 책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에 담기에 차마 담지 못한 사소한, 그러나 당시의 우리에겐 아주 중대했던 일들을 여기에서 나열해 보고자 한다.






:) 교 복


내 아이들이 영국 초등학교에 첫 등교를 한 시기는 9월이었다. 한 학년의 시작이기도 한 9월이었기에(영국은 9월에 새학년이 시작된다), 더 없이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영국은 초등학교에서부터 교복을 입는데, 우리나라 학교처럼 교복업체에서 학교의 로고를 넣어 만든 학교마다의 교유성을 띠는 교복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교복의 디자인이 아주 단조롭다. 바지나 스커트는 회색 혹은 검정색이고, 반팔 상의는 칼라가 있는 폴로 티셔츠, 긴 팔은 아무 무늬 없는 맨투맨과 카디건으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의는 거의 대부분의 학교 공통이라고 보면 되고, 티셔츠 색깔로 구분한다. 그렇다고 모든 학교가 중복없이 자기 학교만의 색깔을 보유하는 것도 아니다. 흰색, 노랑색, 파란색, 초록색 등등 흔한 기본 색깔들이 주를 이룬다. 물론 학교마다 로고를 넣은 교복 디자인을 따로 갖고 있지만, 그리고 그 교복은 특별히 지정된 업체에 주문하여 구입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이 로고 없이 색깔만 맞춘 교복을 아주 저렴하게 구입해서 입는다. 어디에서? 마트에서!

영국은 마트에서 교복을 판매한다. 마트마다 가격이 조금씩 다른데 대형 마트에 가면 반팔 티셔츠 3개 세트가 10~15파운드(약 1만 5천원~2만원) 정도 한다. 다른 옷들에 비해서 꽤 싼 가격이었다.


< 'Back to School'을 위한 교복을 판매 중인 영국 마트 >



내 아이들의 학교 교복 역시 바지와 스커트는 회색(혹은 검정)이었고, 반팔은 노란색 폴로 티셔츠 긴 팔은 보라색 맨투맨 혹은 가디건이었다. 이 교복들을 언제, 어떻게 입으라는 안내는 없다. 하복을 입는 시기, 동복을 입는 시기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날씨에 따라 알아서들 적절히 입고 다닌다. (그래서 2월에 날씨가 푹한 날, 노란색 반팔만 입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우리는 기념 삼아 일단 학교 로고가 들어간 정식 교복을 주문하긴 했는데, 입학 결정이 조금 늦었던 관계로 교복 주문 시기가 지나버려 교복을 받으려면 한 달 정도 걸렸다. 늦었다고는 해도 어쨌든 학기 시작 전인데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는 것이 의아하긴 했으나 별 수 있나. 매일 입고 다닐 교복이 여러 벌은 필요하기도 했으니, 우선 당장 입학할 때 입을 교복을 마트에서 사기로 했다.

그런데 바스의 마트에는 보라색 긴 팔 맨투맨이 없었다. 가디건도 없었다. 파랑, 노랑, 초록, 빨강 등은 있는데 보라색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몇 군데 마트를 돌았지만 못 찾고, 검색을 하여 찾아간 시티 센터의 교복가게에서는 다른 학교 로고가 들어간 보라색 티셔츠만 있을 뿐이었다. 알고 보니 영국 학교 교복에서 보라색은 흔하지 않은 색깔이었다. 하필 보라색이라는 지인의 안타까운 탄식을 뒤로하고, 결국 인터넷으로 보라색 교복 맨투맨을 구입했다. 영국에서의 첫 인터넷 쇼핑이었다.

그해 8월 영국 날씨는 여름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긴 팔 티셔츠를 샀다. 반팔은 계절상 곧 안 입게 될 것이고, 쑥쑥 자라는 아이들의 옷은 곧 작아질 테니 다음 해에 본격적으로 반팔을 입는 시기에 사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았다.

첫 외국 학교 등교가 걱정이 되면서도, 아이들은 처음 입어보는 교복 또한 마음에 들어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에 설렘이 묻어났다. 어렵게 구한 보라색 티셔츠와 회색 바지 그리고 스커트를 각각 어여쁘게 차려 입고 학교에 갔던 아이들은 그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교했다. 하필 9월 시작과 함께 날씨가 여름으로 역행했고, 우리는 영국 날씨의 변덕이 이 정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힘겹게 구한 보라색 맨투맨 교복을 입고 등교한 우리 아이들 >



일기예보상 한참은 반팔을 입어야 할 듯했기에 그날 오후 바로 마트로 갔다. 그리고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하고 말았다. 일전에 보았던 교복 코너가 없어지거나 대폭 축소되었다. 당시에 가득 쌓여 있었던 노란색 티셔츠들도 함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기 시작 전에 필요한 것들을 다 구입할 것이므로, 학기 시작 후에는 수요가 별로 없을 교복 코너를 줄여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마트의 교복 코너는 필요한 시기에 주요 영역에 등장하는 ‘팝업 스토어’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꽤 큰 마트에서는 상시적으로 교복을 마련한 곳이 있긴 했는데, 안타깝게도 노란색 반팔 폴로 티셔츠의 재고가 거의 없었다. 바스(Bath)의 마트와 아동복 가게를 다 돌아도 노란 반팔 티셔츠를 못 찾은 우리는, 브리스톨(바스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 외곽의 마트에까지 가서야 노란 티셔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부모들이 품 들이지 말고 쉽게 쉽게 구입하라고 마트에서도 판매하는 교복을 우리가 이렇게 어렵게 구해야 했던 것은 이 낯선 도시의 교복을 구입하는 방식을 모르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요란하게 알아가는 것이었다.




:) 빨래 건조대


빨래건조대 또한 쉽게 얻을 수 없었다. 아,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 UK’에서 주문하면 금세 집으로 배송해 주기는 했다. 그런데 영국에서 흔하게 보이는 빨래건조대는 위로 높은 3단짜리 건조대였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티셔츠 하나만 널어도 아랫단까지 내려와 옷가지가 잘 마르지 않았다. 심지어 옷을 가득 널면 건조대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에어비앤비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지혜이다.)     


< 영국에서 흔한 세로형 빨래건조대 예시 사진 (출처:아마존UK) >


한국에서 많이들 쓰는 가로로 쭉 양팔을 펼친 형태의 빨래건조대를 찾아, 역시나 바스 시내의 마트를 다 돌았다. 그런데 어느 곳에도 빨래건조대가 없었다. 내가 찾는 가로형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건조대가 없었다. 대체 마트에 이게 없다면 건조대는 어디서 파는 것일까? 영국 지인이 ‘B&Q’에 가 보라고 추천했다. 보통 식품을 파는 일반 마트에는 건조대 같은 건 팔지 않는다고.

B&Q는 생활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우리 나라는 이마트나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모여 있지만, 영국의 마트는 식품과 세탁세재 같은 소모용 생필품을 파는 마트(막스앤스펜서나 세인즈버리 등)와 빨래건조대나 가든용품 등 크기가 큰 생활용품을 파는 곳이 나뉘어져 있었다. 물론 중첩되는 품목들도 많고, ASDA 같은 ‘수퍼’ 대형 마트는 도시 외곽에 넓게 자리하며 모든 것을 망라해 판매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인의 팁 덕분에 빨래건조대를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게 된 우리는, 끝내 ‘이케아’에서 빨래건조대를 샀다. 생활용품을 파는 마트에서도 주를 이루는 건조대는 내가 선호하지 않는 3단 건조대. 낯선 도시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나와 맞지 않는 것이 있음을 발견하는 일, 그것을 대체해 줄 익숙한 무엇을 만나면 고향을 만난 듯 감격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스웨덴'에서 온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하.




:) 참치캔


그러나 무엇보다 절정의 ‘낯선 맛’을 보여준 것은 참치캔이었다.

영국에서 내가 지낸 바스에는 한국 식당이 한 곳도 없었다. 늘 한식에 목말라 있던 우리 가족은 아시아 마트에서 김밥 김을 발견했고, 참치 김밥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전에 참치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참치캔을 사 본 경험이 있는 나는, 영국의 참치캔은 ‘해바라기유(Sunflower Oil)’에 저장된 참치캔과 ‘물(spring water)’에 저장된 참치캔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익히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것과 유사한 식감과 맛의 참치캔은 당연히 해바라기유 참치캔. 집 앞 편의점으로 가서 나는 꼼꼼하게 ‘Sunflower Oil’를 확인하고 참치캔을 사 왔다.

하지만 곧, 김밥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참치캔을 따려다가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참치캔 어디에도 캔을 따는 손잡이가 없었다. 콜라캔이나 맥주캔에 붙어 있는 그 작은 타원형의 따개 손잡이 말이다. 내가 꼼꼼하게 ‘Sunflower Oil’ 글자를 확인하고 편의점에서 사 온 참치캔은 과거에 별도의 통조림 오픈 칼을 이용해서 따야만 했던 완전한 평면의 캔이었다.


< 옛날 통조림캔 예시 사진 (출처 : 네이버) >


이런 캔을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엄마가 캔 가장자리에 통조림용 칼을 걸고 꾹꾹 눌러 탔으니 벌써 3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아직도 이런 캔이 시중에 판매되리라곤 상상도 못한 나는, ‘Sunflower Oil’에 집착한 나머지(스프링 워터에 든 참치캔이 그만큼 맛이 없다) 캔 뚜껑을 체크할 여유가 없었다.

아니다, 여유가 있었어도 신경 써서 보지 못했을 것이다. 별도의 도구가 필요한 옛날 방식의 캔은 나의 관찰 범주에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에 샌드위치를 위해 영국 마트에서 샀던 참치캔이 따개 손잡이가 붙어 있는 익숙한 형태의 캔이었기에 더욱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몰랐던 것은 두 종류의 캔이 모두 유통되고 있다는 것.

이제 와서 ‘굳이 왜 두 가지가 다?’라는 의문을 품는 것은 참치캔 뚜껑을 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편의점에 가서 바꿔 온다거나 다른 가게에 가서 다시 사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내가 사 온 것이 동네의 유일한 가게에서 파는 유일한 ‘Sunflower Oil’ 참치캔이었다.

이미 사온 캔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단 한 번을 위해 통조림 칼을 사는 것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주방 서랍에서 칼과 견과류를 깨는 작은 망치를 이용해 통조리에 작은 구멍을 냈다. 그리고 가위를 꺼내 통조림 뚜껑을 오렸다. 그렇다. 나는 그날 통조림을 딴 것이 아니라, 오렸다. 딱딱한 캔에 튕겨 나온 칼에 다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십여 분가량 참치캔과 씨름을 한 끝에 캔을 열었다.

“열려라, 참치”


< 불굴의 의지로 가위로 오려낸 영국 참치캔 >


이후 참치캔을 살 때는 ‘Sunflower Oil’라는 글자뿐 아니라 뚜껑의 생김도 꼼꼼히 확인했다. 왜 아직도 (우리나라 기준으로) 옛날 방식의 참치캔이 남아있냐는 질문은 여전히 불용하다. 따개 손잡이가 없는 것이 옛날 방식인 것은 우리의 기준이고, 이곳에서는 여전히 이용되는 방식, 최고의 편의성이 아니라 ‘이 정도면 적당한 편리함’을 따르는, 그들의 생활방식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그렇게 ‘다른’ 생활 방식을 수용하고, 내가 아는 방식과의 차이를 조금 더 꼼꼼하고 정성스러운 관찰로 상쇄해 가는 것이다.






앞서 나열한 것들과 같은 연유로, 12월 연말 생나무 크리스마스트리를 거실에 세우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트리 거치대’를 매우 힘겹게 구한 바 있다. 우리는 ‘생나무 크리스마스트리’가 처음인 낯선 도시의 이방인이었으므로. (웃음)



크리스마스의 로망 실현을 위한 트리 스탠드 확보를 위한 분투와 전나무 향이 솔솔 풍기는 생나무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감상은 에세이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에서 여타의 ‘즐거운 겨울’ 이야기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영국 작은 도시의 소소한 겨울, 크리스마스, 또 다른 영국의 작은 마을로의 연말 여행 등등 이국의 겨울의 맛을 즐기고 싶다면, 그리고 그외의 수많은 '이상하고 아름다운' 낯선 도시의 생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을 만나 보자.





  영국, 작은 도시에서의 일 년,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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