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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완 Jan 12. 2024

첫 전철을 타는 분들을 보셨나요?

경인전철 단상2


1년 몇 개월을 송파구 문정동 인근으로 출퇴근한 적이 있다. 처음에 혼잡한 시간에 전철을 탔다가 죽을 뻔했다. 출근 시간에 1호선으로 부평서 노량진, 9호선 급행으로 노량진에서 석촌역, 그리고 8호선으로 문정역까지.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첫 지하철이었다. 그때 백운역에서 서울행 첫 열차는 5시18분이었다. 그런데 가끔 첫 열차를 놓치고 다음 열차를 타다가 나는 한가지 현상을 발견했다. 일단 첫 열차에 손님이 많은 반면에 서서히 줄었다가 7시부터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 전철을 타고 다니다가 나는 그 원인을 알았다. 우선 신도림에서 내리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 강남 지역의 사무실에서 청소를 하시는 분들로 보인다. 어릴적 서울 아현동에 살던 당숙모님도 근처 대학에서 청소 노동자로 계셨다. 서울에 올 때 가끔 잘 일이 있었는데, 당숙모는 새벽같이 집을 나섰던 기억이 선명하다.      

또 사람이 많이 내리는 곳은 노량진이다. 신도림은 나이 지긋한 분들이 내린다면 노량진은 당연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내린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재수를 하는 경인지역 젊은 이들이다. 그들은 부모님의 기대 속에 등용문의 꿈을 안고, 다음을 준비한다.    

  

생각해보면 돌아가신 노회찬 의원도 아침 첫 시내버스에 관해 한 말이 있다. 노의원의 명 연설로 꼽히는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다. 인상적인 부분이 생각난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들 눈앞에 있었느냐.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느냐"     


그런데 생각해보면 경인선 전철은 옛날에 길게 더 늘어졌었다. 내가 어렸던 1980년 전후 열댓가구였던 고향 마을은 그때 이촌향도로 인해 모두 도시로 떠났다. 옆집 영범이네는 의정부로 영재네는 서울 중화동으로 떠났다. 인천에도 그때 올라온 수많은 고향 사람들이 올라왔다.      

전라도에서 충청도에서 시작된 긴 이동의 끈이 경인전철로 이어진 느낌이 든다. 심지어는 중국 동북3성에서 건너온 우리나라판 디아스포라의 역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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