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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Dec 25. 2021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운 이유 : 20대 마음의 처방전

누구나 쉽게 프리패스로 발급할 수 있는 방법.

얼마 전, 블로그에 썼던 지난 일기들을 오랜만에 되돌아봤습니다. 저는 늘, 블로그에 일기를 쓸 때마다, 뭔가에 항상 '고민'을 하고 있더군요. 고민이란 단어가 늘 모든 페이지마다 짝꿍처럼 있었어요. 직장인 4년차로 접어들면서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 사랑에 대한 용기가 부족한 것에 대한 고민 등등. 결국엔 일, 사랑 이 두 가지가 저의 고민 원천의 대다수였어요. 그만큼 고민의 달인인 저는, 제 고민이나 걱정을 그저 내버려두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20대를 9년간 겪어오며, 제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처방전'에 대해 나름대로의 연구를 하며 석박사를 노리던 사람이었습니다.



20대 초반, 마음이 담긴 응원의 한 마디 - '너는 할 수 있어.', '넌 존재만으로도 특별해'.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존재만으로도 꽤 괜찮다'라는 걸 쉽게 이야기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청춘이니까 아프다'와 같은 말이 유행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죠. 청춘이라면 고통은 응당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댓가 수준으로 여겨졌습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춘에게는 그저, 이런 저런 고민이 당연했고 새벽 잠을 쪼개가면서도 무언가를 해야했고 열정페이에 익숙한 세대였습니다.

해서, 20대 초반까지 저는 제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위로해주는 게 크나큰 메시지가 되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꽃밭에 가있었습니다. 이런 달콤한 말들에 쉬이 마음이 편해지고 기름칠을 여러번 둘러대도 남을 정도로 마음이 금방 따뜻해졌던 나이.



20대 중반,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마음의 일상 회복하기

그렇다면 20대 중반은 어떨까요. 남이 가져다준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나이입니다. '사람'에 의지하게 되고 그 사람으로부터 얻는 행복감이 나의 행복 지분 100을 차지하였을 때만큼 위험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섬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한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늘 사람은, 파도처럼 내 곁에 가까워져 오고 또 저만치 멀어져감을 반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행복 지분 100을 갖고 있던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내 행복 또한 사라지며 다시 마음 회복을 하는 데에는 정말이지, 꽤 많은 시간과 그 시간을 견딜 마음력이 필요합니다.

그걸 알게 되는 20대 중반에는, 이제 '나 혼자서도 행복해지는 시간'이 어떤 걸지 고민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 쉬이 회복이 되는 편이었습니다. '사람이 없는 평일에 혼자 카페 가서 커피 마시기', '혼영하기', '혼자 전시 보러 가기' 등등. 그 누구도 내 마음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는 시공간 속에서 평화로이 '나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20대 후반, 나에게 묻고 또 물어서, 고민의 본질에 가까워지기


20대 초중반에 해오던 처방전에는 이미 내성이 생겨.. 단번에 먹혀들지 않는 2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찬양 해주거나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혼자 시간을 보내도 '비상약처럼' 잠깐의 회복은 되지만 그것이 곧 완치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가진 그 고민들은 신발 안에 든 아주 작은 모래알처럼, 분명 털어냈던 것 같은데 숨은 모래알이 툭툭 한알씩, 한알씩 다시 좁은 공간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현실적인 사람이 되면서,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TMI : 제 MBTI는 TJ가 아닌 FP입니다..) 즉 달콤한 말을 아무리 들어도, 혼자서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아무리 많이 보내더라도 '현실을 뒤로하고' 마음에 바람을 주는 일들이었던 것입니다. 잠시 쉬어가라고. 시원하게 식히고 가라고. 20대 후반이 되니 마음에 물과 햇빛을 주는 일들을 찾게 됩니다. 무럭무럭 자라나 건강해져서, 어떻게 하면 냉혹한 현실을 두눈으로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 그리고 극복할 수 있는 강한 마음력까지 거머쥘 수 있도록.



최근의 저에게 조금 당황스러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완치가 됐다고 생각했던 고민이 다시금 떠올랐던 것입니다. 저에게는 '타인과의 비교'로 인한 스트레스는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를 제외하고는 없었습니다. 나보다 '주변인'들에 대해 더 많은 시선이 가던 시기였기에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그러다 마음의 시선을 나 자신으로 꽂은 이후부터는, 제 목표는 '누구보다 더'가 아닌, '어제의 나보다 더'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입사를 하면서부터는, 어제의 나보다 더 성장을 하고 싶어서 사원일지를 쓰기 시작했지요. 제가 배운 것들, 제가 느꼈던 감정 등을 기록하였고, 한 달 뒤, 1년 뒤, 3년 뒤의 제가 그 글을 보면서 점차 어제의 나보다 성장해나가는 것을 너무나도 뚜렷이 느낄 수 있던 시절.

하지만 4년차이자 20대 끝자락에 있는 지금은, 또 다시 제 시선이 타인에게로 꽂히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주변에서는 집을 사기도 하고 차를 사기도 하며, 또 MZ세대가 가장 취업을 하고 싶어한다는 '네카라쿠배'로의 성공적인 이직을 하기도 했습니다. 혹은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광고수상제에서의 성과가 있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만한 성과가 없었기에 고민이 많았지요.

그후 또 다시 저는 여러 사색 끝에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중요한 건, 우울한 감정을 배제하고 "내가 왜 타인들에게 눈길을 돌리게 됐나" 이유(본질)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저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들만이 가진 각자의 서사를 담은 성과를 이루어내는 모습들이 부러웠던 것입니다. 제가 단순히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면 아예 과거로 돌아가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해야 했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하지요.

하지만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결과를 내고 싶다면? 앞으로의 내가 만들어내면 그만이니까.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문제인 것이기에 고민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즉, 고민의 본질에 가까워지기 위해 지속적인 why를 내던지면, 현실적으로 내가 해낼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고민의 해답을 얻게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난 실수란 거 안 믿어요. 우리를 만드는 건 바로 실수예요.
실수가 당신을 이리 데려왔죠? 실수 덕분에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요.


영화 《디스 민즈 워》의 좋아하는 대사의 한 대목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실수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기에 새로운 기회 혹은 새로운 재미난 일을 시작할 수 있음을 제 글을 읽는 독자 분들께도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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