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끝에 맛보는 풍미

사골국과 라따뚜이

by 부라톤

어릴 적 겨울이 되면 어머니는 사골을 사 오셨다.

사골이 무엇인지 알 리 없는 어린 나는 어머니는

저 정체불명의 뼈다귀를 무엇에 쓰실지 궁금했다.


차가운 물을 통에 가득 담고

어머니는 뼈를 물에 담는다.

핏물을 빼는 작업이다.

하루정도 지난 후에 어머니는 커다란 통에

뼈를 넣고 계속 끓이셨다.

그렇게 한번 오랜 시간을 끓이고 통에 국물을 통에 옮기신다. 그 과정을 적어도 4,5번은 반복하신

그렇게 탄생한 사골국.

집안에 습기와 뼈 끓이는 냄새가 자욱하다.


겨울이면 응당 겪는 환영인사다.

사골국은 겨울을 이겨내도록 돕는, 지친 몸을

달래는 보양식이다.


이제 어머니는 겨울철 매일 사골국으로 시작되는

레퍼토리로 우리를 보양시키실 것이다.


어린 시절 사골국 안의 감칠맛을 몰랐다.

고소함 속에 담긴 묵직함 맛.

나도 모르게 계속 손이 가는 맛.

감탄을 이끌어내는 맛.


풍미.

풍미는 기다림으로 맛볼 수 있다.


음식 장사를 업으로 하는 나에게 감칠맛은

반드시 알아야 하고 탐구해야 할 대상이다.

언젠가 닭 육수를 깊게 우린 후

파스타의 기본 육수로 사용해보았다.

'아...!!'

겨울철 사골국을 끓이느라 창가에 서린 습기.

후루룩 땀을 흘리며 들이키는 나의 얼굴이 스친다.


요리는 추억을 떠올려 현재를 위로하며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이 있다.

어릴 적 그 기다림을 추억하게 한 요리.

프로방스의 대표음식인 라따뚜이다.


라따뚜이는 기다림이다.

기다리며 천천히 익어가는 야채들이

서로 어울리도록 놔둬야 한다.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기를 원한다.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수많은

새로운 기술이 발전했다.

냉장고와 냉동고는 재료를 보관하고 끊임없이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인류의 소망의 결실이다.

지금은 '빠르게, 더 맛있게'다.


기다림의 과정을 건너뛰기 위해

화학조미료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맛은 결국 한계를 드러낸다.

그 한계에 만족하기 시작하면 성장은 멈춰버린다.

멈추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지만 이겨내야

나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기다림의 과정은 고되다.

재료를 만들다가 기름에 상처가 나고,

칼에 베이기도 한다.

결과로 매 번 평가당하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깊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나만의 철학이 생기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면

타인의 평가를 여유롭게 경청하여 발전 가능성을 높여간다.


라따뚜이는 야채만으로 만들어내는

기다림의 음식이다.

토마토, 주키니, 가지, 파프리카, 마늘, 양파, 올리브 오일, 후추, 소금, 로즈메리

1. 각각의 재료들을 두께 2미리 정도의 두께로 자른다.

(토마토는 뜨거운 물에 잠깐 넣었다가 빼서 껍질을 벗긴다.)


2. 차례차례 색깔을 재료별로 내 취향에 맞춰서 배열한다.


3. 자르고 남은 자투리들과 올리브유, 마늘, 양파와 로즈메리를 함께 찐 다음 믹서기로 갈아준다.


4. 3번의 소스를 한두 숟가락을 펜에 고루 펴준다(너무 많지 않게)


5. 배열한 재료들을 원형으로 차곡차곡 쌓아준다.


6. 140도로 예열한 오븐에 1시간 30분-2시간 익힌다.


7. 원하는 양만을 접시에 올리고 소스를 다시 얹는다.

소금, 후추,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를 살짝 얹으면 맛에 풍부함의 더해진다.


오븐에서 꺼낸 라따뚜이의 첫 향은

오래전 어머니께서 뻣뻣한 시래기를 부드럽게 삶아내던 부엌의 향이었다.

나는 시래기의 그 냄새가 싫었다.

프로방스의 향기는 시래기 냄새였을까?

접시에 담고 소스를 얹고 살짝 소금과 후추,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를 뿌리고 입에 넣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대지를 흠뻑 적시며 반겨주었다.

묵직하면서도 재료가 하나 되어 어우러지는 맛.

라따뚜이는 기다림의 결과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깊이, 조화, 겸손


사골국에 밥을 말아 시래기 무침과 김치를 한 숟갈에 얹어 입에 넣는 순간의 미소가 지금 입술에 맺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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