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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목 Apr 05. 2019

아름다움의 상대성과 절대성

제6장 디자인조형창작_09

디자인은 궁극적으로 아름답고 실용적인 사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따라서 아름다움은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움이란 절대적인 것일까요? 상대적인 것일까요?      


원빈이라는 영화배우는 남자인 제가 봐도 너무나 잘생겼습니다. 혹은 김태희를 생각해봅니다. 원빈이나 김태희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잘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대상으로부터 결정되는 것이며, 대상 안에 미의 조건들이 있는 것일까요?     


다른 경우를 생각해봅니다.

여러분이 미팅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학생은 남학생 A를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어떤 여학생은 남학생 B를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속된 말로 제 눈에 안경인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아름다움은 위의 대상 속에 미의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즉, 사람의 인식 작용이며 대상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는 의견이 맞을까요?     


만일, 아름다운 조형을 만들기 위하여, 트렌드를 조사하고 조형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조사하고 잘 팔리는 상품에 대한 조형요소를 분석하고 한다면 이는 조형 속에 미의 조건이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의 행위들입니다.      


그리고 수용자의 입장이나 견해를 전혀 고려치 않고 자신만의 관점이나 견해로 작품을 한다면 이는 어차피 아름다움은 개인의 견해이며 입장일 뿐이다라는 입장에서의 창작행위입니다.


참으로 어느 한편의 관점을 수용하기가 힘듭니다.     

미학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면 근대 이전의 미학은 사물 속에 미를 잉태하는 절대기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합니다. 

따라서 질서니 조화니 등의 조형원리에 대한 탐구가 활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미학에서는 미란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서적 체험이라고 생각하여 미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미적 체험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고 합니다. 즉, 미는 개개인의 경험과 사고 작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정리하면 근대 이후에는 원빈이나 김태희가 아름다운 것은 미인의 기준을 잘 만족시키기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근대 이후에는 미팅을 나가 선호하는 사람이 각기 다른 것은 개인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애매한 경우도 있습니다. 원빈이나 김태희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근대 이전의 미학적 원리로는 설명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미팅에 나갔는데 특정인에게 모든 여성들이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근대 이전의 미학적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사물 내에 미의 원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관점이나 혹은 미는 철저히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관점들의 극단적인 입장을 수용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를 근대 이전의 미학적 입장에서 가정한다면, 대상에 미를 결정짓는 요인이 있으나 사람에 따라 이를 판독하고 해석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할 수 있고, 현대 미학의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미를 판단하는 것은 개개인의 정보처리과정이며 따라서 차이가 생길 수 있으나, 그 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사는 집단에서는 그 정보처리의 성향이나 패턴에서 유사성을 보여 집단적 미의 호불호 성향이 생긴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사물 속에서 미의 원리를 탐구하고 대상 속에 그 미적 원리는 포함시키면 모든 사람들이 이름 다음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는 사람들에게 미를 느끼게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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