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디자인창의력_06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창의기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법, KJ 법, 매트릭스(matrix) 법 등입니다. 디자인을 전공해본 학생이나 전문가들은 경험해보았겠지만 이런 방법들이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역으로 자신이 가장 창의적이었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을 되돌려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머릿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랐던 기억입니다. 놀러 가서 무엇을 하고 놀까 하고 생각할 때도 좋고, 학교에서 축제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도 좋고, 디자인 과제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를 생각하는 경우도 좋습니다.
아마도 개인마다 상황은 다 다르겠지만 창의력이 마구 폭발하던 때는 무언가 엄청 흥미롭거나 하여 지속적인 집중이 이루어졌을 때, 그리고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이 재미있고 신명 날 때였을 것입니다.
티벳 승려들의 토론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전혀 다른 이야기를 잠시 하고자 합니다.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텔레비전에서 티베트의 승려 학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동자승들부터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를 가진 청소년들이 승려가 되기 위해 절에서 생활하고 교육받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대부분의 장면은 어둡고 조용한 공간 속에서 낮은 음성으로 불경을 외우고 절을 하고 차분히 움직이는 그런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이질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넓은 운동장 같은 곳에 수백 명의 학승들이 모여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몸을 흔들고 비틀고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학승들은 둘씩 짝을 짓고 있었는데, 한 명은 의자에 앉아있고 다른 한 명은 그 앞에 서서 미친 사람인 듯 술에 취한 사람인 듯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백 쌍이 운동장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승려가 되기 위한 과정이 너무도 힘드니까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내레이터가 그 장면에 대한 아주 의외의 설명을 했습니다.
그 장면은 승려들이 읽은 경의 내용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서서 춤을 추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의자에 앉은 사람은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자세히 보니 그대로였습니다.
서서 술 취한 사람처럼 춤을 추던 사람이 이야기를 마치면 의자에 앉고 앉아서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일어나 또 미친 사람처럼 몸을 흔들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순간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승려가 되려는 사람들... 승려가 된다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대로 따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경을 읽는 것은 곧 부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인데, 단순히 글만 읽으면 그 뜻을 이해하기 힘드니까 몸을 움직여 일종의 흥분상태를 만들고, 경의 내용을 반추하면서 느끼고 깨달으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뭔가 나 자신이 어떤 일에 미친 듯이 집중하여 창의가 분출될 때와 비슷한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는 가장 심오한 철학의 하나이며 단순히 그 내용을 글로만 읽는다고 하여 알게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글의 뜻을 이해하고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 훨씬 어렵겠지요.
그래서 읽고 읽고 또 읽는 것이 그 내용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이듯이 읽거나 들어서 알게 된 지식을 느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승려라는 2,000년도 더 된 철학자를 양성하는 교육프로그램에서 어찌 보면 이러한 해괴한 몸을 움직여 흥분상태를 만들어 글로 읽은 내용을 깨달음으로 가져가게 하는 교육방법을 개발해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논어에 공자의 아들이 공자에게 유학의 핵심 뜻인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그 뜻을 묻기 전에 시경을 읽으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경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시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마음을 나타낸 것이기에 시를 읽으면 감성적인 흥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의 감성적인 흥기란 감각적인 자극을 받아 흥분된 상태와는 다릅니다. 감각적으로 자극받아 흥분된 상태면 오히려 사리 변별이 어려워지고 올바른 사고와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감성적으로 흥기 된 상태는 머리의 회전이 빨라지고 잡생각이 없어져 집중하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도 자신이 아들에게 먼저 그 상태를 만들고 뜻을 들어야 그 깊은 뜻을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시를 먼저 읽으라고 한 것입니다.
최근에 뉴스에서 미국의 모 대학에서 연구한 결과 자리에 앉아서 생각하는 것보다 일어서서 걸어 다니며 생각을 할 때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가 쉽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티베트의 승려들은 무려 2,000년 이상 이전에 알았는지도 모릅니다(몸을 흔들며 경에 대하여 토론을 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불교의 기원에서 본다면).
이야기를 정리하면 창의는 창의적 기법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니 창의적 기법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법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잘 사용되는 상태를 먼저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창의적이 되려면 먼저 몸의 상태를 창의적인 상태가 되게 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우선 문제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에 관련된 지식을 다 공부하고 그다음에 창의적인 상태에서 집중하여 정서적 흥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창의적인 결과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