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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Jul 30. 2023

7월의 크리스마스와 카레맛 소시지

영국 결혼식 첫날 여정의 기록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맛집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세계 여느 공항이 다 그렇겠지만 말이다. 생수 하나에 5유로를 훌쩍 넘는 이 살벌한 곳에서 가성비란 단어는 사치다. 하여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텨보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가 넘어가자, 텅 빈 뱃속은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을 들락거려 봤지만 안 그래도 불편한 속에 하누타(헤이즐넛 초콜릿 크림이 들어간 독일 과자)가 웬 말이냐.


뭔가 따뜻한 것이 먹고 싶은 그때, B게이트 한복판에 위치한 목 좋은 카페를 발견했다. 긴 줄을 서서 메뉴판을 읽어내 린다. 간단한 식사 메뉴에 커리 부어스트가 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커리 부어스트


나는 커리 부어스트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겨울 독일에서 지겹도록 통통한 커리 부어스트를 먹어댔기 때문이다. 간식으론 훌륭하나 계속되는 식사거리로 적합한 녀석은 아니었다. 여하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 속에서 그 묘한 고기 누린내와 커리 냄새를 떠올렸다. 그리고 과감히 6.90유로를 지불했다.


커다란 독일 빵과 함께 서빙된 커리 부어스트는 기억보다 꽤 괜찮은 맛이었다. 육즙이 터지는 담백한 소시지에 달달하고 감칠맛 나는 커리 소스와 파우더. 퍼석하게 찢어지는 식사용 빵에 소스를 찍어먹으니 간이 딱 맞았다. 모든 것이 밍밍한 무채색인 공항 카페테리아치곤 현지의 그것에 매우 근접한 경험이었다.


3시간 여의 대기를 마치고 올라탄 버밍엄행 루프트한자 비행기에선 꼬마병에 담긴 물과 노란색 포장지에 싸인 초콜릿만을 제공했다. 초콜릿에 진심인 나라답게 기내 제공용 초콜릿도 꽤 먹을 만한 수준이었으나 정신없이 잠드는 통에 어떻게 버밍엄에 도착했는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늘 영국행 비행기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공항 밖은 쌀쌀하다.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레스터셔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주황색 따스한 불빛들을 켜놓은 옹기종기한 영국식 전원주택들을 보니 어쩐지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7월의 크리스마스라.


도착한 집의 손님용 방 침대에는 핀란드의 디자이너 브랜드 “마리메꼬”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꽃무늬 베딩과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샛노란 시트가 깔려 있다. 사이드 테이블엔 환영의 의미로 한국 태극부채와 접이식 부채가 꽂혀 있었다. 작년엔 보이지 않았던 크리스털 서랍장도 한편에 놓여 있다. 영국의 집에는 으레 손님방이 한 두 개씩 있게 마련이고, 깨끗하게 정돈된 손님방에서 주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목요일에 있을 결혼식에 대한 계획을 간단히 듣는 시간을 가진다. 누가 같은 디너 테이블에 앉느냐 하는 문제와 강아지를 웨딩 사진에 등장시키느냐 따위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들이다.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넘어간다. 내일을 기약하며 잠을 청해 본다. 고흐의 해바라기 색깔을 닮은 침대는 어딘가 따스하다.


저작권자 © Sunyoung Cho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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