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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Jul 31. 2023

100% 수제 영국 결혼식

영국 결혼식 참석 2일 차의 기록

이튿날 오전엔 요거트와 과일, 베이컨과 소시지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 포스파크 쇼핑몰로 향했다. 신랑 신부에게 주기 위한 결혼식 축하 카드를 구하기 위함이다.


영국을 위시한 영연방 국가들에선 카드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다. 마트나 문구점에 들어서면 여러 개의 진열장을 차지한 어마어마한 수의 카드를 마주할 수 있다. 한국인도 익숙한 생일 축하 카드(생일을 맞는 주인공의 나이대 별로 나눠져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조차 없는)부터 결혼, 이별, 쾌유를 빕니다, 시험 합격 기원 등 인간의 온갖 경조사는 다 모아둔 것 같은 카드를 구경하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결혼식 축하 카드, 2023


여하튼 우리가 골라든 건 양 귀퉁이에 잔잔한 나뭇잎사귀가 양각되어 있고, 파스텔톤의 웨딩 케이크와 알록달록한 꽃들이 그려진 성인 손바닥 두 개만 한 크기의 결혼 축하 카드다. 크기만큼 가격도 셌지만 가족의 결혼식이니만큼 카드도 어느 정도 급이 있는 걸 고르는 게 예의라 했다.


영국의 석회수를 만나면 더욱 부슬부슬해지는 불쌍한 머리카락을 달래주기 위한 헤어크림 등의 화장품 쇼핑을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 예정된 손님들인 주인공인 신랑 신부와 양 측의 부모님, 오랜 고향 친구, 한국에서 사귄 친구 커플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신랑 신부는 생각보다 차분한 모습이었다. 이 결혼식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준비하며 기다려 왔기 때문일까. 인륜지대사를 앞두고 과도한 흥분감은 자제하고 차분히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는 화려한 모자를 상자에서 꺼내 보여주고,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은 짙은 갈색 트위드 양복의 품을 재며 결혼식 복장을 정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한국 혼주들에게 빛깔 고운 한복이 필수인 것처럼 여기선 모자에 힘을 주는 것이 보통이다.


결혼식장에서 쓸 랜턴과 양초, 거대한 통나무 절편들을 앞에 두고 양가 식구들이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모여 앉아 준비를 시작했다. 결혼식장을 장식할 수십 개의 예쁜 진(gin) 보틀도 한 곳에 모아 담기 시작한다. 결혼식장을 밝혀줄 커다란 양초와 손님들의 의자를 장식할 사각거리는 흰색 천, 랜턴들 모두 가족들이 손수 수제 제작한 것들이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5단 케이크 역시 동네에서 알아주는 케이크 디자이너에게 주문한 것이란다.


어느 정도 준비가 마무리되어 가자 뒷마당 바비큐가 시작되었다. 영국산 육즙 가득한 소시지에 도톰한 버거, 허브로 양념된 치킨 꼬치구이에 케첩과 브라운소스, 야채샐러드, 어른 주먹보다 큰 브레드 번(bread buns)이 다이닝 룸에 뷔페식으로 예쁘게 차려지면 손님들이 각자의 그릇에 양껏 담아 집안 정원 가까이 지은 손님맞이용 온실(conservatory)에서 먹는 식이다.


신랑 신부가 기르는 2살 배기 통통한 케언 테리어(Cairn terrier)가 쉴 틈 없이 통통한 꼬리를 흔들며 바비큐 기계를 맴돌더니, 급기야는 바닥에 놓인 바비큐 장갑을 정신없이 핥기 시작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준다.


청명한 여름날의 상징과도 같은 영국답지 않게 계속해서 부슬부슬 비가 쏟아지는 모양새다. 목요일 결혼식에도 아니나 다를까 비 소식이 예정되어 있지만, 3년 간의 기다림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전진한다.


저작권자 © Sunyoung Cho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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