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세상에서 어릴 적 나를 찾기
나는 레고를 좋아하지 않았다.
미니멀함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어딘가 맞지 않는 옷 같은 존재니까. 오죽하면 레고 팬들은 “Forever sorting (영원한 정리)“란 고행의 길을 걷는다고 하지 않는가.
아니, 사실 처음부터 레고를 좋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어릴 적 장난감 가게 선반에서 봤던 분홍빛 비치 바를 배경으로 음료수를 들고 있던 갈색 포니테일 미니피겨. 그게 어찌나 갖고 싶었던지. 꿈에도 아른거릴 정도였다.
그 분홍빛 꿈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르르 사라지고 말았지만.
주말엔 레고랜드를 다녀왔다.
팔자에도 없는 레고랜드라고 생각했지만, 거대한 미니피겨 펌킨 헤드를 보는 순간부터 약간 두근대기 시작한 마음. 레고로 만들어진 거대한 하나의 도시. 어릴 적 단순한 블록으로 쌓았던 세계가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그 분홍색 솜사탕 빛 꿈들이 어디선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레고 4D 영화관에선 옆자리에 앉은 꼬마보다 더 신이 나서 영화를 보고, 실물 꽃 사이즈만큼 커진 레고 꽃 블록에 장난스레 코를 대고 사진을 찍었다. 기념품 가게에선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미니 피겨를 만들어보다, 어딘가 엉성하고 나사 빠진 내 미니피겨 모습에 실소가 나오기도 했고.
퇴근길엔 레고 스토어를 들렀다. 수많은 레고 장난감 중 내가 선택한 건 2024년 어드벤트 캘린더. 연말이면 늘 어드벤트 캘린더에서 초콜릿을 빼먹으면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곤 했는데, 이번엔 레고 버전이다. 어릴 적엔 부모님께 수없이 읍소해야 살 수 있었던 그 레고. 이렇게 간단히, 내 카드로 살 수 있다는 현실에 엄청난 갭을 느꼈다. 즐거우면서도 묘하게 서글픈 느낌.
뭐, 다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거겠지.
인스타그램 : @sunyoung_choi_writer
영국에서의 소소한 일상과 여행을 담은
푸드 에세이,
"영국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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