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함께 만드는 놀이터- 참여설계워크샵
나는 아이들의 능력을 믿는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가진 그대로를 꺼내기를 기대한다.
결과물보다 결과물을 향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결과물을 향해 가는지 모른다.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잘할자신있다고 생각하는 이보다는 나 못하는데..과연 내가 뭘할수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현재에 살고 있다. 오늘! 그래서 오늘, 지금의 과정에 집중할 뿐이다.
그래서 난 긴여정을 미리 설명하지 않는다. 큰 틀을 처음에만 간단히 설명할 뿐, 그 날에 할 내용과 지난번에 해온 내용,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다음번의 내용을 간략히 얘기한다.
그런 나의 의견들은 다른 어른들과 가끔 충돌한다.
과정을 중시하는거에 동의한다면서,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기쁘다면서...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에 당연히 그럴거라고 말했으면서..
아이들이 만드는 모형시간을 불편해서 견디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처음 아이들이 생각하느라, 고민하느라, 주저하느라, 겁내하느라 한참동안이나 바닥이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간이 가장 값지고 빛나는 시간이다. 그들의 뇌는 자극하고 폭발하며 시냅스끼리 마구 연결되고 있다. 그것이 손으로까지 연결되는 시간을 기다려줘야 한다.
모형만드는 시간은 2시간 30분으로 길게 잡았다. 보통은 1시간~2시간인데 불안하다고 여유있게 잡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편하게 공유하며 발표도 하고 좋을 것 같아 동의했다.
2시간 30분이 지났다. 네 팀 중, 두 팀은 마무리가 되었고, 발달장애 아동 혼자서의 작업은 1시간만에 끝났다. 갑자기 주최측에서 다음 주 한번더 모여서 마무리를 하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마무리하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마음을 읽어주고 한 계획인 것 같아서 감사했다.
그러나 그 의도가 아니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워크샵의 결과물을 기사도 내고, 지자체에 제출도 할 계획인데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안되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워크샵 진행 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오늘 모형이 다 만들어졌어야하는데, 그럼 전문인력들이 투입되서 아이들 만드는걸 도와줬어야 하는거 아니냐, 보통은 다 그렇게 하는데 왜 나는 그러지 않았냐...
이 워크샵은 내가 진행하고 주최측과 함께 한다. 직원 3명과 대학생 자원봉사자 4명이 자원하여 더이상의 어른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아주 많다. 직원들은 준비사항을 챙겼고,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하는 역할로 충분했다. 감사했다.
모형 작업을 할 때에 나는, 아이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본인의 생각과 표현해냄을 뿌듯해하도록, 작은 성취감을 얻도록, 어려움이 있는 부분을 스스로 알았을때 그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팁을 주는 역할을 한다. 함께하는 분들께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진심의 마음만 준비해달라고 부탁한다. 어른은 아이들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기때문에 더 잘 알고, 더 잘 하는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 과정의 주최자가 누구인지만 생각하면 된다. 대신 해주면 안되고, 방법을 알려주거나 같이 고민하는 것이면 된다. 마지막에 발표는 단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일 뿐이며, 이미 작업하는 과정에서 순간 순간 공감하고 구체적으로 칭찬하고, 그들의 작업 스토리를 들으며 감동받고, 피드백을 주고 같이 웃고, 실패했을 때 용기를 주고, 같이 다시 해보고, 그러한 장면장면들이 훨씬 더 소중하다.
나와 함께하는 이 시간만큼은, 이곳에서만큼은 완벽할 필요도 없고 어떤 존재든 그대로여도 괜찮다.
중요한 건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고 있다는 것.
함께할수록 우리는 더 재밌고, 더 용기나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더 넓어지니까!
아이들은 1시간이 지난 후부터 신나게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아이들은 점점 더 즐겼는데, 어른들은 점점 더 불안해한다. 무엇때문일까? 욕심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주 한 번 더 하기로 한 이유를 물었던 거다. 아이들이 마무리를 마음편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인건지, 모형을 좀 더 제대로 만들게 하기 위한 마음인건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느낄 것이다. 그럼 그후에는 어른들 눈에 만족이 될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들이 손을 대서 마무리하는 상황까지 가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시작했는지조차 잊게 된다.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도 화가 났다. 하고싶은대로 둬야지 내가 어쩌겠는가.. 내 방식이 마음에 안들면 다음부터 부르지 않으면 그만인것이고, 나는 내 가치관을 믿고 이렇게 계속 아이들 마음에 맞추는 방식은 변함없을 것이다.
화가 났던 것에서 이제는 내가 놓친 것이 있었는가, 내가 부족했던 것은 무엇이였는가 찬찬히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내에 완전한 모형을 완성하지 못해서 그들은 불안하고 화가 날 수 있지. 그렇다면 내가 시간 조절을 잘 못한걸까? 2시간 30분. 보통 초등학교에서 1시간 30분~2시간을 진행했었고, 유치원에서는 50분동안 했었다. 그런데 왜 여기는 더 걸렸던 걸까?
아주아주 긴 생각 끝에 나는 작은 결론에 다다랐다. 아이들이 다 다르다는건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사항이다. 그리고 환경이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절대 동감하고 있다.
그것을 현실에서 마주한 것이다.
워크샵 첫 날을 떠올렸다. 끝나고나서 이상하게도 유난히 더 힘이 들었다. 에너지가 바닥을 치고 아무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기운을 다 써버렸다. 단 1시간 만에..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14명의 남녀초등학생 (3~6학년), 2명의 여중학생, 2명의 발달장애 4학년 남학생...
놀이를 하고, 굉장히 쉽고 재미있는 시간인데 왜 힘이 들었지? 발달장애 아이들이 있어서? 아니, 전혀 아니다.
아이들 모두가 마음이 닫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은 스킨쉽에도 굉장히 민감하고, 어른과의 신뢰감도 없어보이고, 다른사람과의 눈을 마주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다.
왜 그렇지? 왜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일까?
3일 후, 주최측과 워크샵 리뷰를 하며 조금 알게되었다. 모인 아이들은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센터에서 왔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들이 여러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이 아이들은 비장애아동들 대표로 왔지만 아마도 가정에서 학교에서 동네에서 상처받고 소외받는 아픈 아이들이였을지도 모른다.
발달장애 부모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워크샵이 비장애아이들 위주의 방식이라 불만이라고 하셨다. 모이는 시간도, 놀이터도, 내용도 진행방식도 발달장애 아동들의 피해와 어려움의 이야기였다.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했다. 그런데 한 가지 그분의 눈에 안보이시는 부분이 있기도하다. 비장애 아동들은 공식적으로 명명되지만 않았을 뿐이지 각자 다르게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고, 다르게 피해를 입고 있는 아이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아픔이 행동으로 나와 자의로 소외되기도, 타의로 놀림을 받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
모두가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산다. 모두의 아픔을 잊게하는, 기분이 좋아지는 놀이터를 만들어야겠다.
워크샵을 처음 계획할때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 그들의 부모들과 함께하는 단계별 점진적 소통과 놀이의 형식이였는데, 주최측으로부터 인식개선에 대한 부분은 추후 따로 잡겠으니 보여줄 결과물 만드는 형식을 요청해서 바꾸었던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주최측과 장애아도 부모대표는 내게 "이 아이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발달장애란.... 이런거예요" 라고 설명해 주기를 요청했다. 나는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지 않았다.
통합놀이터를 만들자고 모였는데, 굳이 그렇게 나누고 분류해줘야 할까? 그런 설명으로 이해를 기대할 필요가 있을까? 그 아이도 그걸 바랄까? 알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내 생각은, 굳이 그렇게 사전에 분류하는 것이 이 아이는 너희들과 다르다고 특별하다고 설명해 주는 게 아닐까? 오히려 일부러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하지는 않을까? 똑같은 입장으로 당당하게! 어린이 디자이너로써 참여하고 있음을 그 아이 자신도, 다른 아이들도 느꼈으면 바란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도 소리지르기도 하고, 규칙을 안지키기도 하고, 남의 말을 듣지도 않기도 하고, 불편함을 주기도 하는데... 그냥 저 아이는 저렇구나.. 싫으면 멀리있을테고 괜찮으면 그냥 어울리겠지. 학교에서 말썽쟁이들, 선생님말 안듣고 맘대로 하는 아이들, 주의력결핍아이들, 말안통하는 마마보이, 주먹이 먼저 나가는 폭력적인 아이. 여러 다른 아이들처럼 성격이, 행동이 좀 다른 아이로 보면 된다. 문제가 있고, 부족한점이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를뿐이다.
같은 한 공간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큰 의미이고 통합된 작은 사회이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았다. 끝까지..아이들도 묻지 않았다. 단지 한 가지 지켰던건, 워크샵 동안 서로 교감은 없었을지라도 먼저 나가는 그 아이에게 잘가라고 모두가 인사하는건 놓치지 않았던거 하나 뿐이다. 그것은 그 아이가 장애아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작업을 함께 하던 한 아이와 헤어질때의 인사일뿐인 자연스러운 행동이였다. 그런 자연스러운 함께 사는 사회의 모습을 유도하고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게 어른으로써 할일이라고 생각한다.
워크샵 두 번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자폐성의 발달장애 한 아이가 혼자 앉겠다고 저멀리 자원봉사자와 따로 앉아있었다. 그렇게 두고 자기소개하는 시간이였는데, 미술심리치료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시도해보았다.
털실을 던져주면서 받는 사람이 한가지 소개하고 계속해서 엮이게 되는 자기소개시간. 이건 혼자서 하기는 어렵지. 아이들이 시작하자, 흥미를 보인 이 아이는 그룹으로 들어가서 앉겠다고 일어섰다. 원래의 그룹으로 안내해주었다. 그후로는 그 그룹안에서 작게 조금씩 함께하기도 혼자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시간에도 그렇게 보냈다...나 혼자서 감동했었나보다...
그래서, 다시 왜 이 아이들이 더 오래걸렸을까?
닫혀있는 마음을 여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동안 자신의 의견을 꺼내놓는 기회가 부족했었다.
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어른과의 만남이 부족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좀 더 필요했다.
물에 조금씩 젖다보니 이제는 마음껏 젖어도 된다는 마음을 길게 갖고 싶어했다.
천천히, 느리게, 소중하게,
혼자서보다 함께하는 것에 대한 어색함, 방해가 될까봐 내세우지 못하는 두려움을 스스로 이겨내야했다.
그 어려운 걸 순수한 아이들이기에 해냈다.
2시간 30분만에? 아니다. 그동안 만났던 4번의 만남 시간동안 천천히 아주 조금씩 마주하면서 걸어온 것이다. 코로나때문에 스킨쉽 과정을 많이 생략하긴 했지만, 만날때마다, 헤어질때마다 나만이라도 안아주고 칭찬해주고 응원해주고, 수시로 눈맞춤하고 더 많이 들어주려고 했고, 서로 함께 하고 돕고 도와주고 말하고 들어주도록 유도해왔던 시간들이 겹겹이 마음 속에 쌓였기를 바랬다.
워크샵이 끝나고 이제 못 만나는데 아이들은 서운한 표현을 하지 않았다. 보통 워크샵 끝날때는 아이들이 와락 안겨오거나 아쉬워서 떠나질 못하고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고 사랑한다고 하고 행복했다고 하고 끌어안는게 마침이였는데.... 응? 내가 잘 못했나? 내가 아이들에게 믿음보다는 부담을 줬었나? 더 이해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아이들에겐 뭐든지 시간이 더 필요하지, 원래의 계획대로 7회를 만났더라면 아마 달랐을거야. 마음의 마침표가 잘 찍어졌을테야. 그래서 그런거야. 서운해하지 말자.
사진은 거짓말 하지 않잖아? 횟수를 거듭할 수록 아이들의 표정과 태도가 달라지는것이 보였다. 점점 밝아진다.. 점점 말이 많아진다... 그걸로 됐다. 너희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이 워크샵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바램은 있다.
사람들과 눈마주치며 따뜻하게 인사하며 지내기를...
자기 안에 가능성을 더 믿고 꺼내보는 기회를 더 많이 갖기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용기를 내기를..
내 이야기를 남이 들어줄거라는 믿음이 있기를..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를..
작고 작은 성취감이 모여 큰 희망을 꿈 꿀 수 있기를...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기를...
너무나 훌륭했어. 너희들을 통해 나는 부족한 나를 반성하고 배우며 같이 성장할 수 있어서 고마웠어.
이 고마운 마음이 그곳까지 닿을까?
너희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미 멋진 사람이야!
-2022년 4월 9일 통합놀이터 참여설계 워크샵을 마치며... 이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