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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재 Jun 14. 2022

오만한자존심과 소중한가치관사이의 경계

스승님께 털어놓는 속마음

[오만한 자존심과 지키고 싶은 가치관 사이의 경계]


Dear. 늘 그리운 스승님께..


Wie geht's dir? The world seems a little more relaxed that we are out of Corona crisis.

Did you both in Daimhausen, your winter garden, and Minu become a little more peaceful?


지난번에 보여드렸던 통합놀이터 디자인을 완성했어요. 오랜기간에 걸쳐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들과의 워크샵을 진행하고 장애아동의 부모들, 노인분들, 방문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면서 애정과 영혼을 담아 모두를 위한 놀이터를 그려냈죠.  몇 차례의 수정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첨부하여 발표 미팅을 했어요.

놀랍겠지만, 관계자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어요.  그동안 감동받는 반응만 봤지, 이런건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웠었다고 고백할께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환경 디자인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무조건 국산 놀이기구를 써서 평범한 놀이터로 바꿔달라고 합니다. 동선과 기능과 의미가 조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기구만 바꾸라고 하는 것은 디자인 전체를 바꿔야 하는 것임을 설명했어요. 디자인 속의 구성요소 5개의 놀이기구 중 2개는 국산제품으로 대체했고 3개는 해외 제품이였어요. 그런데 나머지는 장애인, 노약자, 유모차 모두 즐길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국산 대체품을 찾지 못했어요. 제가 이해되고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없이 무조건 국산 기성품으로 교체하라고 하네요. 제가 아무리 설득해도 그들은 듣지 않았어요. 제가 준비한 자료는 일찌감치 덮어놓았더군요.  서로 논리적이고 타당한 설득과 타협으로 좋은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느꼈습니다.


"단 1%도 내 자신에 대해, 내 디자인에 대해 의심하면 안된다" 고 하셨죠. "그래야 상대방이 설득되고 확신을 가지게 된다" 고요. 한국의 양태오 디자이너가 이런 말을 해 주었어요.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설명을 하다보면 특별한 결계가 생긴다"고. "그래서 그 결계 안에선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고 모두가 압도된다" 라고요.


네, 저는 제 디자인에 100%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고 그들의 고민(예산,민원,보수,기간,내구성)에 대한 솔루션을 제안하고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과 귀를 막고, 좋은 놀이터가 아니여도 좋으니 욕먹어도 좋으니 평범한 놀이터로 만드는 것을 선택하겠다고 합니다. 그런 의도에 저는 함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더 행복한 환경을 위해서잖아요.

그렇다면, 저는 도울 수 없다고 말했어요. 그 자리에서 일어났고, 설계비용을 반환하고 저의 디자인을 보호했습니다. 원래 그들이 선호하던 실시부분을 같이하고 있는 회사가 그동안 저와 디자인 소통했었으니 말썽쟁이가 빠진 상태에서 서로 행복하게 진행하고 있을겁니다.


그렇게 박차고 나온 후, 사실 저는 많이 힘들었어요. 내가 내린 결론과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혼란에서 벗어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나의 똥고집은 아니였을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이 세계에 있는 것인가, 여러 관계자들의 생각을 들어봤어요.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그동안 이야기 들으며 소통 나눈 사람들의 소망을 이뤄줄 수 없다는거였어요. 몇 분에게는 전화를 걸어서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죠. 같이 워크샵하며 기대에 찼던 아이들은 만나지도 못하고 사과도 못하는데 어쩌죠?

매일 매일 이 괴로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아마도 죄책감과 후회 부분 때문일지도 몰라요. 사실 저에게는 중요하면서 좋은 기회이기도 했거든요. 열심히 노력해놓고 스스로 날려버린거니까요.

어리석었다고 혼내실까요?


그런데요... 오만한 자존심과 지키고 싶은 가치관-나만의 철학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고객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할까요?

그쵸..그들의 요구를 따라줘야 저는 돈을 벌지요. 하지만 저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도전하지 않고, 편하게 쉽게 놀이터를 만든다면 진정으로 사용자를 위한 더 나은 놀이터를,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누가 만드나요?

모두가 조용히 제자리에 있으면 어떻게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힘은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저는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놀면서 삶을 배워가는 놀이 환경을 만들고 그 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으로 자랄거라고 믿어요.  


이번 디자인에 칭찬 많이 해주셔서 신났었는데 좋은 소식 전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직은 바보같지만, 이 바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할거예요. 아시죠?


두 분의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을 위해 매일 기도합니다.


Big Love from Korea

stupid Yeon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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