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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으니 Feb 20. 2024

각도의 중요성보다 시선의 중요성

혹은, 감정의 중요성

나는 축구에 관심이 없었다.

대한민국이 4강에 올라가며 국민이 축구에 열광했던 2002년 당시에도 축구 때문에 좋아하는 드라마가 결방한다고 불평했다. 그나마 아이들을 좋아해서 축구 예능이었던 <날아라 슛돌이> 정도만 챙겨봤던 기억이 전부일 정도로 축구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축구와 담쌓고 지내다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 출전하는 선수들 중에 슛돌이 출신이 있다는 말에 '누구지?'라며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이강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전혀 모르고 지나갔던 U-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에게 준우승을 안겨준 이강인의 실력이 눈부셔서 관련 영상들을 몰아보다 보니 축구 자체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본격적으로 축구 덕질을 하게 됐다. 그리고 간첩은 아니지만.. 축구에 무지했던 나는 이제야 손흥민도 알게 되었다. 맨유 박지성은 고유명사처럼 알고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손흥민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이강인을 시작으로 손흥민, 황희찬, 김민재까지 우리나라에 실력 있는 축구선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 내가 한국축구 황금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실감했다. 그렇게 난 축구에 너무 늦게 입덕하여 2022년 카타르 월드컵부터 이번 아시안컵 요르단전까지 국대 경기는 빼놓지 않고 챙겨보면서 열렬히 응원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탁구 게이트' 

내가 축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슛돌이 천재 이강인의 하극상 사건.

(참고로, 나는 전적으로 축구협회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감독이 문제였고, 그런 감독을 기용한 그 X가 제일! 제에에에일!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지들이 문제인 건 아는지 선수들에게로 그 시선을 돌려버렸다.) 

쏟아지는 기사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확실이강인은 탁구를 쳤고, 손흥민은 손가락을 다쳤다. 그리고 손흥민이 손가락을 다친 이강인은 웃으면서 물병 던지기 놀이를 했다는 것이다. 

(느림보 같던 축협의 빠르게 인정한) 이 하극상 사건으로 나를 포함하여 많은 한국축구 팬들이 이강인을 바라보시선이 달라졌다. 이후로 쏟아지는 이강인 하극상 관련 영상들을 보면서 (축구 협회의 시선 돌리기에 완전히 낚여버린) 내 시선에, 내 감정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분명 영상들은 이전에도 봤던 영상이었는데... 좋은 시선으로, 좋은 감정으로 영상을 접했을 마냥 귀엽게 보였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고, 오히려 어쩔 땐 (선을 잘 넘는다는 예전 인터뷰 발언들) 국대 깡다구 멋지다고 하면서 덕질했는데...

일련의 사건들 이후로 좋지 않은 프레임을 씌운 채 그 영상들을 다시 보니... 하나같이 버릇없고 나쁘게만 보였다. 


그중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대표적인 영상을 하나 꼽아봤다. 

기자: 손흥민 선수가 이강인 선수도 이제 책임감을 가져야 될 시기가 온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강인: 모든 선수가 책임감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대표하는 거기 때문에...

나는 이 인터뷰 영상을 처음 접했을 때 이강인의 답변을 보며 귀엽게 생겼으면서 축구도 잘하는데 겸손하기까지 하다며 이강인 덕질에 더 박차를 가했었다. 분명 그 당시 나의 시선으로 본 이강인의 모습은 겸손함이었다. 자신에게 주는 관심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자기만 누리지 않고,  모든 선수들에게 돌리는 것으로 느꼈다. 그러다가 이번 사건으로 이 영상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때 이강인의 발언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처음과 완전히 달랐다. 다시 본 이강인의 모습은 건방졌다. 이강인을 생각한 손흥민의 마음을 무시한 채, 다른 선수들에게 책임감을 떠넘기는 발언으로 느껴졌다. 


그 당시 이강인이 어떤 마음으로 저 대답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같은 영상이고 같은 말이었는데, 내가 어떤 시선으로,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이토록 다르게 보인다는 것에 대한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사람의 시선이,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 중요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똑같은 사람일지라도 누군가(혹은, 나)의 시선과 감정이 어떠냐에 따라 그 한 사람이 좋게 보이기도, 나쁘게 보이기도 하니. 절대! 함부로! 어떤 이를, 한 사람을 평가하고 재단하면 안 되겠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물론, 그전에도 이런 생각을 전혀 안 했던 건 아니지만... 알면서도 잘 실천되진 않았던 것뿐.


그나저나 정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명언이다. 명속담이로다.  



ps. 

그나저나... 역시 이론과 실천은 정말 다르다.   

한 때 유행했던 밸런스 질문 중 [착하지만 일 못하는 사람(=인성) VS 싸가지 없지만 일 잘하는 사람(=능력)]에 대한 선택으로 많은 사람들이 [싸가지 없지만 일 잘하는 사람=능력]을 높은 비율로 뽑았다는 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나도 능력을 선택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역시 능력보단 인성이 먼저인 듯싶다. 인성이 좋으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좋을 거고, 그럼 일을 못해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되겠지만, 싸가지가 없다면 내가 보는 시선에 그 사람의 잘난 능력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테니...


아... 아닌가? 일 못하고 잘하는 건 팩트이고 착하고 싸가지 없는건 각자의 시선에 달린 문제이니 역시 일 잘하는 사람, 능력을 선택하는 게 맞는 건가? 


작심삶일 / 글: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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