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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힘찬 Dec 30. 2023

올해 마지막 출근, 마지막 근무시간에 한 일

그렇게 2023년 회사생활을 마무리했다.


12월 29일 금요일은, 올해 마지막 출근. 그리고 마침 내가 강의를 맡은 날이었다. 우리 회사는 매주 금요일 '교육 데이'라는 명칭으로, 오전 시간에 내부 임직원으로 구성된 강사진이 강의를 진행한다. 대부분 본부장급 이상이 교육을 맡지만, 업무 특성 때문에 생겨난 피해자(?)들도 몇 있다.


내가 그 피해자 중 한 사람으로, 아마도 '스토리'라는 독특한 업무 영역 때문이거나 '작가' 출신이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어서 선정된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올해 교육 데이 때, 총 3번의 강의를 진행했다. 어제는 올해 마지막 출근 일이었고, 올해 마지막 강사는 공교롭게도 나였다. 그나마 강의 시간이 좀 줄어서.. 이번에 주어진 시간은 1시간 20분. 하지만 다른 업무  때문에 강의를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무'에 관한 강의를 해야 하는데, 내 직무는 딱히 정리하여 보여줄 만한 자료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젝트가 정해지면, 열심히 조사하고,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펼치고, 열심히 정리하고, 열심히 다시 쓰고. 늘 그게 다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아니 이번에도. 나는 내 식대로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마지막 출근, 마지막 시간이라니,  참 좋은 타이밍이 아닌가.




그래서 강의 제목은 '스토리는 핑계고'. 유재석의 핑계고를 워낙 재밌게 보기도 하고.. 내가 교육데이 때 들려줘야 할 것은 스토리 팀 직무에 대한 것이지만, 나는 매번 업무 얘기를 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핑계고다.


나는 '글쓰기 =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논리로 강의를 시작했다. 실제로 말로 할 것을 종이나 화면에 옮겨 적으면 그냥 그게 글쓰기다. 그걸 어떻게 풀어쓰느냐, 펼치느냐, 줄이느냐, 꾸미느냐에 따라 에세이가 되기도 하고, 시나 카피가 되기도, 소설이 되기도 한다.




글쓰기 <->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 회사

글쓰기, 커뮤니케이션, 회사 <-> 이해


내가 도입부에서 했던 말을 요약하면, 글쓰기는 소통이고, 소통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는 나를 이해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을 할 때 실력보다는 소통, 커뮤니케이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화합이 제대로 이루어진 조직은, 가진 실력이 제곱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소통을 놓친 조직은 가진 실력이 마이너스될 뿐 아니라 때로는 0으로 수렴되기도 하니까.



그렇게 열심히 빌드업을 마친 나는, 본론을 꺼내 들었다. 자주 애용하는 '집중할 때 듣기 좋은 음악'을 틀어 놓고, 준비한 용지를 나눠주었다. 용지에는 응답해야 할 3가지 항목과, 채워야 할 15개의 빈칸이 있었다.


나를 나타내는 키워드 BEST 5

올해 나의 빅뉴스 BEST 5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BEST 5


자유롭게, 편하게 채울 수 있도록 20분의 시간을 주었고, 나도 그들 곁에 앉아 종이를 채워나갔다. 내가 준비했지만, 나조차도 처음 항목부터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간단해 보이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꽤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라는 것.


다들 쓰기 싫어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누구 하나 빠짐없이 집중하며, 진지하게, 종이를 채우고 있었다. 쓰다 망설이는 사람,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는 사람, 핸드폰으로 기록을 찾아보는 사람, 잠시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 그럼에도 글씨가 써지는 그 소리는 멈춤이 없었다. 그 슥삭거리는 소리에 물들어, 나도 조금 더 진지하게, 빈칸을 모두 채웠다.



10월부터 회사가 계속 시끄러웠다. 현실적인 문제도 많았고, 그로 인한 감정의 소모도 심했다. 다들 많이 지쳐 있었고, 또 그 이상으로 화가 쌓여있었다. 그래서 더욱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한 해를 돌아보고, 한 해를 정리할 시간. 나를 돌아보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정리할 시간. 하지만 내가 진짜(?) 준비한 순서는 사실 그다음이었다.


함께 일 하는 사람과

편하게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


모두 작성을 마친 후, 3명씩 소그룹으로 나누고 나도 그중 한 그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교육의 진짜 과제인 '그룹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다. 지금 작성한 각 항목들을, 순서대로 이야기하며 나누는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하기에는 조금 낯선 시간일 수 있겠다고, 어색할 수도, 부끄럽거나 불편해 할 수도 있겠다고, 어느 정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각 그룹은 생각보다 활발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때론 웃음소리, 때론 걱정소리, 때론 위로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그룹만 4명이라서, 게다가 내가 말이 너무 많아서, 가장 오래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우리 그룹이 모든 항목에 대한 대화를 끝마쳤을 때도 다른 그룹들은 여전히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갔어요."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적어도,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날은 오전근무만 있는 날이었다. 내가 맡은 강의 타임이, 올해 우리 회사의 마지막 근무시간이었다. 빈자리가 워낙 많아서 참여 인원은 적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편하게, 솔직하게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다.


올해 내내 불만이 참 많았고,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고민과 걱정, 아픔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나눈 대화들 덕분에, 그날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 덕분에, 참 기분 좋은 마무리가 되었다. 강의를 마친 후 함께 웃으며 조금 더 수다를 떨었고, 우리는 그렇게 새해 인사까지 주고받았다.


갑작스러운 시간이었겠지만, 그들에게도 부디 좋은 마무리였기를 바래본다.




아래는 그날 내가 작성한 항목 중 일부


나를 나타내는 키워드


1. 감성제곱


'너는 감성에 미친 애 같아..'라는 말을 듣고, 처음 만들었던 작가 닉네임. 그리고 내 첫 채널명이자, 첫 책 제목이었고, 커피와 카페라는 공간을 워낙 좋아해서 큰 꿈을 안고 오픈했던 카페의 이름도 '감성제곱'이었다.


2. 작은 마음


워낙 예민하고, 워낙 소심해서, 상처도 잘 받고 잘 삐졌던 나에게 한 친구가 소심하다는 기분 나쁜 말 대신 만들어줬던 별명이 '작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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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나의 빅뉴스


1. 육아휴직과 복직


비록 2개월이었지만, 참 값지게 보냈던 시간. 아내와 아이와 너무도 행복하고 따뜻한 추억을 많이 쌓았고, 지칠 대로 지쳐있었던 회사생활에 있어서도 굉장히 리프레시가 되었다. 우리 회사에서 남자 육아휴직은 내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2. 회식 중에 이빨 깨짐


복직하고 바로 있었던 회사 회식 중에 고기를 먹다가 이빨이 깨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치료비는 78만원.. 회식도 근무의 일부 아니던가? 산재처리라도 되었다면 좀 덜 억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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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1. 가족과 한국일주


회사에 다니고 이래저래 출장을 다니다가, 해외가 아닌 한국을 쭉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별 사례조사도 꽤 많이 하다 보니, 가족들과 저곳을 이렇게 저렇게 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다음 육아휴직 때 한 번..?


2. 회사 이야기로 책 출간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쓰는 글들은 전부 감성적인 소재였다. 사랑과 이별, 그리고 가족. 작가가 아닌 직장인으로 몇 년 살아보니, 생각에도 성향에도 꽤 큰 변화가 찾아왔다. 이 과정들을, 이 과정 속에서 마주한 희로애락을 꼭 책으로 펼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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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23년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네요.


모두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심삶일 : 글/사진 이작가(이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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