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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Mar 20. 2024

100명의 사주를 손으로 써 본 얘기.

 * 책 출간에 앞서 사전 주문을 받았고, 사전 주문자 100명에게 수기 사주와 굿즈를 동봉해 보냈습니다. 그 후기입니다.






 살면서 백 건의 사주를 수기로 작성해 각자가 사는 집에 배송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봤다. 백 명의 사람들은 이름도, 사주도, 사는 곳도 다 달랐는데 이 많은 사람이 저마다 다른 서사를 품고 살아간다는 게 무섭고 신비했다. 서사는 대략 싸움이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이름이, 각자만의 전투 중이었다. 나 자신과 싸우거나, 가족과 싸우거나, 회사와 싸우거나, 병마와 싸우거나, 아무튼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과 싸우거나 싸울 예정이었다. 나는 그들의 승리를 빌었다.


 서울의 한강 이남 어딘가에 있는 A는 지금까지의 인생이 너무 가혹해서 잘 살아가라고, 제발 그렇게 되라고 중얼거리며 사주를 썼다. A는 지금껏 자신의 팔자와 싸웠다. 지독한 팔자에 지지 않으려고 약을 먹고 악을 썼다. 그렇다면 A는 칼로 스스로를 찌르는 셈이다. 자신의 팔자와 싸우니까 말이다.


 B는 동해와 인접한 곳에 사는데 조용한 집에서 뭘 그렇게 사부작거리는지, 말 못 할 비밀은 왜 이리 많은지 세상 밖에 나오는 게 어떻겠냐 다그치듯 썼다. 어떤 이는 스스로를 작게 본다. 작게 봐야만 할 것 같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B는 재능 많은 사람이다. 분명 잘 살 것이다.


 백 명의 서사를 알아 버렸을 때, 네 진심이 무엇인지 봐 버렸을 때, 그래서 네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조금 알았을 때, 내 인생은 평범할 리 없다고 다시 배웠다. 세상이 내게 다른 사람 마음 알아채는 재주를 주신 건 내가 뭐 돼서 그런 게 아니고, 무엇도 욕심 갖지 말고 바치듯 살라는 뜻이라고 말이다. 며칠 머리가 아팠다. 죽을 때까지 제자로 산다는 사실이 무서웠던 것 같다. 그러나 알고 있다. 무섭고, 두렵고, 힘들어도 해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겸손해져야겠다. 스스로 목을 죄고 단속해야겠다. 뭣 하나 성에 안 차면 안 되는 고집 센 성격이지만 더 그래야겠다. 더 악써야겠다. 더 강해져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가 더 아팠다. 심지어 조금 억울하기까지 했다. 얼마나 강해져야 괜찮을지 알 수 없어서, 스스로 감옥을 만들고 기어가겠다 해 놓고 옥문이 얼마나 촘촘할지 가늠할 수 없어서 억울했다. 언제나처럼 답은 하나였다. 그냥 버티는 거다. 그냥 해내는 거다. 해내다 보면 어디쯤 왔다고 알 수 있는 구간이 올 것이다. 그렇게 잠에 들 수 있었다.

   

 보시하자며 벌인 일이지만 이번에도 내가 배웠다. 나는 늘 이런 식으로 빚을 진다. 너 좋으라고 해주면 결국 내가 뭘 얻어버린다. 나는 그게 염치없어서 다음을 기약한다. 그때는 더 퍼줘야겠다고 맘을 먹는다. 자꾸 빚을 져서 큰일이다. 게다가 미미는 마음도 착해서 내 일에 동참한다. 제 돈을 펑펑 써가며 굿즈를 만들고, 벌어서 어디 쓰냐며 나한테 다 써버린다. 나… 닦고 살라고 제자 된 건데 자꾸 받기만 해서 괜찮을까. 이번 일 막바지에 제자 된 게 조금 겁났던 건 베푼 것보다 받은 게 많아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잘 살아야겠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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