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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Mar 26. 2024

살다 살다 그런 손님은 처음이었다.(1)

 때는 바야흐로 2018년. 내 나이 스물다섯, 생생한 이십 대 중반 청춘이었다. 그때 내 주변 사람들은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연기를 하거나, 뭐가 됐든 제작하는 맥락의 사람이 많았던 것 같은데 나는 속세 단절을 선언하고 무속인이 됐다. 그리고는 점을 참 잘도 봤다.


 스물다섯 땐 지금보다 몇 배는 바빴다. 노동력으로 치면 요즘이 훨씬 무겁다. 요즘은 그때보다 복채도 비싸거니와 손님이 기도나 굿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점 보는 손님을 줄이고 일에 집중한다. 과거에는 하루에도 일곱 명씩, 열 명씩 점을 봤으니 정신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무튼 진짜 바빴다. 나는 예약도 달에 두 번만 받았는데 한 번 받을 때마다 삼백 명씩 연락이 오곤 했다. 삼 개월 치 예약이 1분도 안 돼서 찼다.


 점 잘 치는 걸로 치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요즘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연륜이 차서 말을 깎을 줄 알기 때문일 것이다. 2018년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 분명 특정 대상을 놓고 하는 말의 내용은 같은데 모양에 차이가 있다. 그땐 훨씬 생생했다. 부끄럽지만 거짓 하나 보태지 않고 예시를 들어드리자면 과거에는 ‘ 당신 집에 바다에 빠져서 죽은 사람 누구예요. 따라 들어와요. ’라고 점을 쳤으면, 이제는 ‘ 원양 나가서 돌아가신 분이 보이는데 혹시 아실까요. 이분이 한이 깊어요. ’라고 점을 친다.


 분명 같은 말인데 전자는 무섭게 들리고 후자는 들어볼 만하다. 물론, 보이고 들리는 바를 있는 그대로 말하고, 내담자의 발목을 잡는 사실을 정확히 전달해 해결해 주는 게 무속인이 할 일이라지만 상대가 나를 편하게 느끼게끔 말하는 것 역시 무속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는 걸 차차 깨달은 것이다. 처음 무속인 됐을 땐 한 인간을 관통하듯 보이는 과거와 미래가 너무 생생해서,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말씀드렸는데 그게 평범한 인간들에게 공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 지나고서야 안 셈이다.


 아무튼 그 무렵이다. 손님 A도 스물다섯의 생생 팔팔한 이윤우에게 왔다. 거칠고, 깎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말하고, 손님이 삐딱하게 굴면 돈 필요 없으니까 내 집에서 나가라던 어린 시절 이윤우한테…. 시종일관 폭풍전야가 감도는 내 법당에 손님 A는 벌벌 떨면서 왔다. 내가 뭐라 해서 떠는 게 아니라 이런 걸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A는 나와 동갑이었으며, 첫인상은 여리고, 소심하고 겁 많은 사회적 약자였. 근데 약자가 아니더라. 와…. 얘 진짜 어떡하지. 그게 A 인생 뚜껑을 열어본 내 첫 소감이었다. 얘, 인생 진짜 어떡하지. 얘는 약자도 아니면서 왜 약자 행세를 하고 있지. 그나저나 앞으로는 어떡하지. 얘 인생은 어떡하지? 진짜 눈앞이 깜깜했다.


 ( 2화에서 계속 )


 



* 손님 A는 2018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저희 법당에 오시는 분입니다.

글의 주제로 쓰임을 허락 맡고 한치의 거짓도, 과장도, 보탬도 없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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