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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Mar 27. 2024

살다 살다 그런 손님은 처음이었다.(2)

 손님 A는 복잡한 팔자였다. 윗대에 살아생전 기도를 많이 드려 세존으로 들어오는 할머니도 계시고, 선녀라며 들어오는 4살 여자애도 따라다녔다. 세존 할머니를 모실 것까진 아닌데 본인 팔자에 애가 많아 보살과 인연을 잡아 기도도 올리고, 보시도 하고, 적당히 빌어 가면 좋은 팔자였다. 이런 팔자는 빌고 살지 않으면 죽거나, 망하거나, 인생 못 살 것까진 아니지만 마음 잡기가 힘들고 감정 풍파가 잦다. 마음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니 한 직장을 꾸준히 다니기 어렵고 감정에 휩쓸려 마음에 병이 든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이런 손님은 많다. 빌어주면 좋은 손님, 마음 잡아줄 누군가 옆에 있어야만 하는 손님, 이런 팔자는 내겐 흔해서 별로 놀랄 것도 없다. A는 팔자고 자시고 할 것보다 큰 문제가 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오오오래 묵은 처녀 귀신, 저거 뭘까.


 손님 A가 찾아왔던 2018년의 나를 미루어 볼 땐, 귀신 보이면 귀신 얘기 먼저 했겠지만 A는 그럴 수 없었다. 사랑에 미치고, 연애에 미치고, 그러면서도 나이에 비해 먹고사는 걱정이 많고, 막내가 돼서는 가족 걱정을 다 떠안고…. 남자에 미쳐서 정신없이 연애나 할 줄 알고, 일이라고는 안 하는 게으름뱅이 같았으면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했겠지만 A는 밥벌이는 확실히 했다. 팔자 드세고 처녀 귀신 붙었어도 본성이 워낙 야무져서 이 꽉 물고 직장 다니며 살았다. 근데 그게 잘 될 리 없다. 어느 날은 드센 팔자에 휘말려 급하게 직장을 관두고, 어느 날은 처녀 귀신에 말려 남자에 미쳐버리고, 어느 날은 다 부질없다며 살기 싫어하고, 제멋대로인 감정처럼 들쑥날쑥 살았다. 그렇지만 살았다. 본성이 독하고 야무진 탓에 직장을 관두면 금세 다른 직장을 구해 버렸다.


 당시 A는 하루를 살아도 아침 다르고 점심 다르고 저녁 달랐을 것이다. 하루 중 언제는 일에 미치고, 언제는 남자에 미치고, 언제는 남자에 미쳤던 자신이 싫어 우울하고, 감정이 들쭉날쭉 제멋대로 구는데 먹고는 살아야 하니 가면을 잘 썼다. 전편에서 A를 사회적 약자처럼 '보이는' 사람에 비유했는데, A는 어떤 일이든 괜찮다며 웃을 줄 알기 때문이었다. 괜찮다며 웃는 사람은 착해 보이고 괜히 한번 도와주고 싶잖은가. 근데 A는 괜찮아서 웃는 게 아니라 괜찮다고 웃는 사람이 착해 보이는 걸 아니까 웃는 거다. 속은 상대방 뺨을 몇 번씩 날렸을 본성이면서 꾹꾹 참고 착해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그런 맥락으로 언제 어떤 표정을 짓는 게 약자처럼 보이는지, 도와줄 수밖에 없는지 아는 유형이었다. 나는 그게 싫어서 안 괜찮은데 왜 괜찮다고 거짓말하냐는 말을 언젠가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다른 데선 네 눈웃음에, 네 착한 척에 속아줬겠지만 나는 아니다. 너는 독종이다. 처녀 귀신 붙어서 자꾸만 남자에 미치는 게, 팔자가 드세서 한 직장 오래 붙어 있기도 어려운 게, 가족 사랑하니까 짐 되기 싫고,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가면 쓰는 법을 너무 빨리 익힌 진짜 독종이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지지 않을 수 있는지 잘 아는 강자였다. 무력을 부려 남을 누르는 것보다 부러 약자가 되는 게 수월히 이기는 법이라는 걸 잘 아는 사람 말이다. 다 파악했다. 이제 점을 쳐 줄 차례다. 너는 오늘 여기서 탈탈 털리고 집에 갈 것이다. 나는 너를 반드시 거기서 빼낼 것이다.


( 3화에서 계속 )





* 손님 A는 2018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저희 법당에 오시는 분입니다.

글의 주제로 쓰임을 허락 맡고 한치의 거짓도, 과장도, 보탬도 없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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