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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Mar 29. 2024

살다 살다 그런 손님은 처음이었다.(3)

 못돼 빠진 게 밖에서 착한 척하고 돌아다니느라 애를 깨나 먹었겠다, 그러나 네 착한 척은 잘살아 보겠다고, 남에게 지지 않겠다고 그런 거니까 인정해 줘야겠다, 잘 살겠다는 욕심이 커서 가면 써버린 거 실은 네가 제일 힘들었을 테니까 고생했다고 말해야겠다…. 그게 내 첫마디였다. 고생했다고, 먹고 사느라 힘들었을 텐데 수고 많았다고. 말 떨어지자마자 A는 울었다.


 원래 이런 애들은 고생 많았다고 하면 운다. 왜냐면 진짜 고생했기 때문이다. 갖고 태어난 본성은 상대방 뺨을 몇 번이고 갈기고, 간혹 수틀리면 뒤통수도 쳤을 게 안 그러고 살았으니까. 제 본성을 꾹꾹 눌러가면서 착한 척하느라 진짜 고생했으니까. 원래 사람은 자기 본성대로 사는 게 가장 맘 편한데 얘는 정반대로 살아버렸으니까. 그 마음 불편한 일을 얘는 평생 했다.


 다행히 다음 손님이 없어 한참 봤다. 귀신 얘기는 잠깐 미뤄두고, 먹고사는 게 힘들지요, 만나는 남자는 별론데 왜 만나고 있어요, 그간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는데도 예쁘게 컸네요, 뭐 그런 얘기들. 그러다 드디어 올 것이 와버렸다.

 

 네 인생이 자꾸만 자꾸만 꼬이는 거, 간혹 남자에 미치는 거, 근데 그놈들이 하나같이 괴상한 거, 급작스레 우울한 거, 그 모든 일들의 원인을 말할 때가 왔다. 나는 이 순간이 가장 무섭다. 정말 무섭다. 너 처녀 귀신 붙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거 말이다. 그 귀신 나만 보이잖은가. 그건 네 눈에는 안 보이는 믿음의 영역이다. 믿음의 영역은 입 밖에 꺼내는 것만으로도 남의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잠정적 사기꾼 취급을 받을 수도 있고, 미친 사람 취급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말해줘야 한다. 네가 어떤 식으로 나를 오해하고, 밖에 나가 곡해할지 모르지만 너는 오늘 손님으로 여기 왔다. 나는 제자 돼서 네가 잘 살 수 있게 말해줄 필요가 있다. 나아가 너를 고쳐줄 수도 있다. 네가 날 믿어만 준다면 그깟 귀신 하나쯤 떼다 내 버려줄 수 있다.

   

 “ 근데, 집안사람 중에 명(命) 다 못하고 돌아가신 여자분 모르세요? 제가 봤을 땐 이분이 자기 한을 좀 알아달라는데요. ”


 “ 여자? 명을 다 못한 거면 일찍 돌아가신 건가요? 잘 모르는데…. ”


 아…. 큰일 났다. 잘 모른다는 사람한테 있다고 멱살 붙잡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어쩌겠어. 내 눈에 보이니까 있는 거 맞다. 있다고 말해야 한다.


 “ 있는데요 여자. 피부병으로 죽었나. 얼굴 새빨개져서 들어오는데요. 청춘에 죽어서 사랑 타령하면서 들어오는데. 그러니까 A 씨가 자꾸 남자한테 미치고, 미쳐도 꼭 당신이랑 비슷하게 사랑 타령하는 것들한테 미치는데. ”

  

 “ 잘 모르겠는데…. 한 번도 안 들어봤어요. ”


 잘 모른다는 데 이걸 붙잡고 내가 무슨 말을 더하랴. 그래. 이제부터는 진짜 네가 믿거나 말거나다. 나는 내 방식대로 점 보련다.


 “ A님. 제가 볼 때는 친가 쪽 조상 중에 청춘에 죽은 여자가 있고, 이 여자 떼 내서 천상 보내 줘야 됩니다. 친가 조상 가운데 피부병 앓다가 청춘에 죽은 여자예요. 청춘에 죽어 사랑에 한이 있어요. 그래서 A 씨 지금껏 남자 때문에 애 먹은 것 같아요. 사랑하고 싶고, 안 하면 안 되고, 막상 만나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옆에 있어도 지랄 같고, 없어도 지랄 같고, 근데 만나는 남자마다 다 안 그래요? ”


 눈을 끔뻑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놀랐지만 안 놀란 척하면서, A는 잠자코 내 말을 들었다. 그래, 좋다. 남자야 그렇다 치자. 너희 집 처녀 귀신은 한이 깊어서 독해 빠졌다. 분명 너 말고도 네 식구들 다 괴롭혔을 거다. 얘기를 확장해 보자.


 “ 이 여자 피부병 앓다 죽어서 A님도 한 번씩 피부 때문에 고생할 것 같은데요. 또, 이 여자가 집안 식구들 다 헤집는 통에 다른 식구들도 우울증 걸려서 고생 많이 했겠는데 어떠세요. 저 이거 고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여자만 떼다가 천상에 올려주면 집안 식구도 다 멀쩡해지겠는데. 제가 틀렸나요? ”


 나 바보 아니다. 끼워 맞추기 식 점칠 줄도 모르고, A는 내게 가족이 어떻다 말해준 적도 없다. A는 피부 멀쩡하게 내 앞에 왔고, 처녀 귀신 얼굴 뒤집어진 거 보고 A도 한 번씩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안 거다. A는 내 말 듣자마자 펑펑 울고 난리가 났다. 워낙 차분해서 발작하며 우는 건 아니라도 눈물 닦으면 흐르고, 닦으면 흐르고, 얼굴 불어 터져라 내내 울었다.


 나… 진짜 네가 남자에 미쳐서 나도는 거, 맘 못 잡고 사는 거, 너희 가족 누구는 우울증 걸리고 누구는 알코올 중독 걸린 거, 나 진짜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만 떼어 내면 진짜 괜찮은 거 맞다. 굿 값 받으면 일하고 양밥 하느라 내 손에 남는 거 없겠지만 그래도 너 고칠 수 있으면 좋겠다. 네가 갖고 태어난 그 못된 본성, 독기, 그걸로 밥 먹고 사는 데만 집중하면 넌 진짜 부자 될 것 같다. 잘 살 것 같다….


( 4화에서 계속 )




* 손님 A는 2018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저희 법당에 오시는 분입니다.

글의 주제로 쓰임을 허락 맡고 한치의 거짓도, 과장도, 보탬도 없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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