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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Apr 01. 2024

살다 살다 그런 손님은 처음이었다.(마지막)

 그 길로 A는 몇 주에 한 번, 길게는 몇 달에 한 번 우리 집에 왔다. 와서 사는 얘기, 힘든 얘기, 그냥 하러 왔다. 나는 계속 들었다. A는 처녀 귀신도 있었지만, 윗대에는 살아생전 기도에 전념했던 세존 할머니, 서너 살배기 선녀도 있었고, 선녀 그게 내 귀에 대고 콜라를 좋아한다기에 기분 나쁠 때 콜라 마시면 좀 나아지지 않냐고도 물어봤다. 자기만 아는 식습관인데 어떻게 알았냐는 대답도 생생하다. 누구든 기분 착잡할 때 탄산 마시면 좀 낫지 않냐고 생각하면 사절이다. 그건 진짜 A의 식습관이었다. 정확히는 A를 따라다니는 선녀의 습관이었다.


 손님 A는 대략 일 년간 기도를 먼저 올렸다. 나는 굿할 때 돈 적게 받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 정확히 돈 받고, 확실히 고친다는 주의라서 한 번 굿 잡으면 몇 달씩 그 손님한테만 매달리니 돈 적게 받을 수 없다. 큰 굿 값 때문에 A는 기도 먼저 올렸다. 기도는 일 년 단위로 받는다. A의 증세를 말끔히 고칠 수는 없지만 더 심화되지 않게 막는 힘이 있다.


 그때 A는 만날 수도, 헤어질 수도 없고, 있어도 싫고 없으면 더 싫은 남자와 동거 중이었는데 기도 올린 날 남자가 동거 관두자고 했다. 한집에 살면서 골치 아팠던 놈이 자진해서 나간다니까 A는 나를 더 믿을 수밖에 없었다. 기도 올릴 무렵에 A에게 미리 말한 일이긴 했다. 원앙에 휘둘리지 않는 기도를 할 거니까 남자친구랑 헤어질 수도 있다고,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당신 짝지가 아닌 건 당신이 더 알 것 같다고. 근데 집을 뛰쳐나갈 줄은 몰랐다. 거기까진 나도 예상 못했던 바다.

  

 골치 아픈 놈이 집을 나가고, 연락이 끊기고, 새 직장을 구했더니 예전과 달리 버텨지고, 가족이 화합되고…. 그게 A의 기도가 시작된 후 벌어진 일들이다. A는 빌어야 할 팔자라 기도가 착착 잘 붙기도 했고, A가 나를 대단히 신뢰해 줘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A의 연락이 올 때마다,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요즘 잘 지낸다고 할 때마다 다 A가 나를 믿어줘서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지만 인간답게 살아 보겠다는 간절함이 만든 결과였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면 반드시 살 수 있다고 믿는다. A의 본성이 못돼 빠졌어도, 독해 빠졌어도 살겠다는 집념이 있어 살아남았다고 믿는다. A는 이제 당신 못된 인간인 거 안다. 그렇지만 그 본성 마주하고, 정말 베풀고 살아 보겠다고 난리다.


 A는 이제 우울하지 않다. 기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굿도 했다. 그게 벌써 4, 5년 전 일이다. 처녀 귀신 그게 얼마나 오래 묵었는지 벗겨낸다고 식겁을 쳤다. 사람을 산 채로 눕혀놓고 삼베 천에 말아 군웅을 쳤다. 군웅은 몸에 묵은 영가를 벗겨내는 작업인데, 그 영가 귀신 얼마나 오래 묵었는지 군웅칠 때 그냥 친 게 아니었다. 그때 A의 온몸을 삼베 천으로 말고, 눈도 귀도 다 가려놓고 군웅을 쳐서 A는 다 모를 것이다. 굿 하고도 두 번 다시 처녀 귀신 행세하고 살지 말라고 오밤중 산에 몇 번을 올라 양밥했는지 모른다. 일할 줄 아는 보살은 이렇게 한다. 몇천만 원 떼먹는 사기꾼이 아니란 말이다. 나는 내가 돈 많이 받는다고 생각 안 한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일, 아무도 안 하려는 일을 하고, 것도 몇 달씩 A만 고치며 받는 돈인데 내가 돈을 많이 받는다니 택도 없는 소리다.


 그 길로 A가 여전히 남자에 미쳐 나돌거나, 마음 못 잡거나, 살기 싫어했으면 A는 나를 가만 안 뒀을 것이다. A 성격에 나를 가만둘 리 없다. 어떻게든 찾아내어 내게 준 돈을 받아내려 했을 것이다. A가 내게 준 돈을 아까워할 수 없는 것도, 지금껏 내게 오는 것도 나는 A에게 한 약속을 전부 지켰기 때문이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형제를 꺼냈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살던 식구를 고치고, 무엇보다 네 인생이 고작 남자에 휘둘려 전전긍긍 안 하게 됐잖은가. 아픈 데도 없다. 잘 지낸다.

 

 A가 나를 만나 과거를 버리고 이렇게 살게 된 거, 실은 욕 한 줄이면 된다. 개떡 같았던 네 인생 진짜 개과천선했구나. 어디서도 마음 못 붙잡고 거지 같은 연애나 하면서 지긋지긋하게 살던 게, 언제는 사기꾼 무당한테 홀려 집구석에 공양물을 일곱 개씩 떠 두던 게, 철 따라 계절 따라 우울에 휘둘리며 그렇게 살던 게. 근데 나는 어디 가서 나 잘났소 소리는 못한다. 내 인생도 네 인생이랑 다를 거 없었으니까. 신병 걸려서 거지 같았던 내 인생 신 잘 받아서, 선생 잘 만나서 이렇게 됐으니까 말이다. 나는 네게 내가 받은 거 돌려준 거뿐이다. 신병에 걸렸거나, 처녀 귀신이 붙었거나, 어차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에 좌지우지당했던 삶이고, 너도 그렇지 않은 삶을 한 번은 살아봐야 하니까.


 자 이제 됐다. A 얘기는 여기서 끝이다. 너는 이제 잘 살 것이다. 평범하고 돈 잘 버는 야무진 남자 만나서 결혼할 것이고, 네가 굿해서 처녀 귀신 보내준 덕에 잘 풀리는 너희 집 일도 쭉 잘 될 것이다. 사람들 다 보는 데서 네 인생 까발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용기 내준 것도 고맙다. 맨날 하는 그 은혜 갚겠단 소리, 내 글 주제가 돼줘서 은혜 조금 갚은 셈 치면 되겠다.




  A씨, 앞으로도 쭉 건강하세요. 우리는 한 주에 두어 번은 연락하지만 앞으로도 쭉 그랬으면 좋겠고요. 책을 네 권이나 사줘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당신이 잘 살 수 있도록 늘 기도하고, 바라고, 그러면서 지낼게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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