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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Apr 17. 2024

반성문.

 보름간 기도하며 지냈다. 기도는 종류가 여러 가지다. 보살은 매일 새벽과 밤마다 법당서 기도하는 것은 물론, 7일 기도, 21일 기도, 100일 기도, 1000일 기도, 이렇듯 기간을 정해놓고 할 때도 있다. 지난 보름간 기도는 기간을 정하고 한 건 아니고 평소보다 좀 더 신경 쓰자는 주의였다. 딱히 음식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냥 했다. 만사가 힘들었다. 한 번씩 그럴 때가 온다. 다 꼴 보기 싫을 때 말이다. 그때는 글도, 사람도, 신도, 나 자신도, 다 내 뜻대로 안 되어서 한 번 훅 털어봐야 한다. 묵은 때 먹은 이불을 털어내듯 나 자신을 팍팍 털어보면 버릴 것, 가져갈 것이 나눠진다. 그러려고 다 놓고 기도만 했다. 장장 보름 만에 글을 올리는데 그건 기도가 잘 됐다는 말이다.


 설하 언니가 도움을 많이 줬다. 머리 뚜껑이 열려서 아무것도 못 하겠다 싶을 때 언니가 제동을 걸었다. 너 요즘 너무 달렸어, 너무 많은 걸 했어, 싹 놓고 당분간 기도만 해봐, 그런 식으로. 언니는 늘 공감과 해결책을 동시에 준다. 언니가 무당이라 그렇겠지만 분야 최고인 건 틀림없다. 나는 하는 일을 멈추거나, 잠깐 쉬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해서 언니 옆에서 기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니가 없었으면 죽었을 거란 말을 자주 하는 건 과장이 아니다. 나는 엔진이 갈리는 줄도 모르고 달리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새 터져 죽었을 걸 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게 잘못됐다는 걸 안 지는 얼마 안 됐다.


 기도하는 내내 이러쿵저러쿵, 뒤죽박죽, 우당탕탕, 울고, 짜증 내고, 화내고, 결국은 이 모든 게 인간 번뇌라 아무것도 아닐지니…, 인간 마음에 사로잡혀 눈물도 나고, 화도 나는 것이 무슨 보살이냐 그러면서 잘 끝냈다. 고작 보름 기도한 거 가지고 다 됐다면 코웃음 칠 일이지만 인간 번뇌에 사로잡히면 괴로운 게 내 삶이라는 거 다시 배웠다. 마음에 더 진하게 새길 수 있었다. 사람도, 인생도, 돈도, 아무튼 뭐도, 그거 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고작 물질에 그치지 않는 무엇일지니 신을 섬기는 제자 된 나는 물질 이상의 가치를 항상 겨냥해야만 한다고, 이 사실이 너무 기가 막혀서 돌아버릴 것 같지만 나는 그래도 해내고 만다고, 업을 잘 닦아서 다음 생에 태어나면 대통령이나 시켜달라고 결판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시험만 보면 전 과목 백점 받았을 때, 도청에서 영재라며 데려갈 때, 쟤네 언니도 모의고사 전국 100위권 안이던데 동생도 공부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했을 때, 나는 그때 꿈이 법무부 장관이었다. 그 무렵 신문에 강금실 장관의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걸렸는데 가족 중 누군가가 윤우는 나중에 자라면 장관이나 하라고, 등을 토닥여주면서 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게 뭘 하는지도, 무슨 권한이 있는지도 다 모르면서 내 손으로 적어내면 누구든 그럴싸하게 봐줄 걸 아니까 그랬을 것이다.


 영리한 이미지를 타자에게 삽입하는 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그 재주가 가끔 내 눈도 가려서 필요 이상으로 나를 똑똑하게 여기고, 자만에도 빠뜨리고, 남에게 상처도 주고 그랬을 것이다. 근데 이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죽을 때까지 내 눈 가리는 일, 자신을 속이는 일, 혹은 과대평가하는 일은 못 하잖은가. 그런 걸 안 해야, 단 한순간도 부끄럽지 않아야 다른 사람 인생에 개입하는 일, 즉 점을 칠 수 있다. 그게 바로 제자다.


 이 지긋지긋하고 하기 싫어 죽겠는 일이 왜 내게 왔을까, 내가 왜 제자가 됐을까, 이 머리로 밖에 나가 돈만 벌어보라면 잘만 벌겠는데 왜 그러지도 못하고 매 순간 공명정대해야 할까,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을까, 보름간 법당에 앉아 염병을 떨다가 그만하기로 했다. 신이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면 가면 신이겠는가. 사실 신이 왜 온 지는, 내 소명이 무엇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제자 하는 거 너무 힘드니까 신한테 대들었던 거 같다. 이거 왜 이러냐고, 하기 싫다고, 내가 대체 어디까지 해야 하냐고, 근데 조금 더 하면 할아버지가 손발 다 묶고 아무것도 못 하게 앞길 막아버릴 것 같아서 관둔다. 오늘 이 반성문을 시작으로 짱짱하게 달려보려고 쓴다. 나는 제자 해도 일등 할 거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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