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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Jul 25. 2024

엄마 기일

 엄마 기일이다. 나는 살아생전 엄마와 친한 것도, 친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양반 법도를 따지다 못해 모든 세대가 집안 업적을 기억하도록 조상 행적을 모조리 문서화시키는 별난 집에 시집왔다. 6대 할아버지는 고종 시대 영의정을 지낸 이 유원의 친척이고 벗이었다. 존함은 이 상현, 호는 만오공이다. 살아생전 두 분은 경주이씨 월성군후 용재공파의 모든 행적을 책으로 남겼다. 내가 그걸 받았다. 권 수로 300권이 넘는다. 법당 옆 방에 모셨다.


 이 별난 집에 시집온 엄마는 이 집안 며느리들이 그렇듯 오래 못 살았다. 그러나 나는 엄마 죽음이 가엽거나 불쌍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한 같은 거 없이 살았다. 평소 앓던 지병이 있는 것도 아녔고, 몸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하늘에 구멍 뚫린 듯 비가 퍼붓던 날에 거짓말처럼 심장이 멈췄다. 이 일이 있기 일주일 전쯤 가족 중 누가 죽는 꿈을 꿨는데 그게 엄마인 모양이었다. 놀랐고, 두려웠고, 슬펐다. 그러나 장례 치르는 3일만 울고 단 한 번도 안 울었다. 나는 살짝 이상해진 사람처럼 글 쓰고 책을 만들었다. 책이 잘 됐고 손님이 몰리고, 늘 바빴지만 조금 더 바빠졌다. 엄마의 죽음이 나를 몰입하게 했다. 나는 엄마 죽음이 나를 나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는 저승에서 당신이 산 자일 적 지은 죄를 닦고 있다고, 그래서 내가 잘 풀리는 거라고 믿게 됐다.


 딸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걸 내내 보고 살아야 한다는 걸 우리 엄마는 인정하지 못했다. 자식이 무속인 되는 것만큼 부모 가슴 미어지는 일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 엄마는 내 팔자를 슬퍼하진 않았다. 그냥 인정을 못 했다. 나는 제발 인정해 달라고 떼를 써보기도, 엄마를 밀어내보기도, 당겨보기도 했다. 결국 엄마가 내게 졌을 때, 정확히는 내가 모시는 할아버지에게 져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 엄마는 죽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살아서는 누구에게 진 적 없고, 하고픈 거 다 하게 해주는 남편 만나 떵떵거렸던 엄마가 처음으로 졌다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말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 밤 11시에 제사를 지낸다. 엄마 기일은 음력으로 내일인데 원래 제사란 게 돌아가신 전날 밤 11시에 지낸다. 그게 법도다. 기제사는 저녁 8시도 아니고, 저녁 9시도 아니고, 아침은 더더욱 아니고 정확히 돌아가신 전날 밤 11시를 맞춰 지내야 망자가 밥을 먹는다. 엄마는 미미 꿈에 살아생전 자주 해 먹었던 청경채 무침을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제 아침을 먹고 엄마 제사 음식을 지어야 한다. 슬프지 않다. 다른 사람 저승으로 인도해 잘 계시라 빌어드리듯 해야 할 일을 하는 기분이다. 어쩌면 이 일은 진짜 내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기분 나쁘지 않다.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잘 있다. 엄마도 그러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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