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자만심 그리고 진실된 사랑
⭐️⭐️⭐️⭐️(4점/5점)
두 교황.
역사이자, 우정이자, 치유이자, 나의 삶을 반성하는 영화.
“죄를 지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삶을 제대로 즐길 용기가 없었다는 죄를 지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는 본인의 죄를 프란치스코에게 고해성사할 때,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을 들으며 많이 무거운 심정을 품었다. 최근 들어 지금의 삶을 즐기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있던 찰나였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참으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그 시절엔, 나이가 들면 더욱 멋있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는 요즘,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멋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자부하긴 어렵고 그저 사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놓아주질 않는다. 어디서부터 일종의 슬럼프와 같은 느낌이 계속되고 있는 줄 모르겠다만, 추측이 되는 계기들은 있겠다. 그러한 계기들의 순간에 나의 선택을 옳았던 것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이 본인에게 적절한 순간에 음성을 내려주길 기다렸다. 기다림의 음성이 닿질 않자,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연인에게 청혼을 한다. 그리고 청혼을 위해 꽃다발을 품에 안고 돌아선 골목에서 조용한 성당을 만난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문에 다가선 순간, 저 멀리서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위해 자리하라고 안내하신다. 그저 지나치기 위한 성당이었을 뿐인데, 이곳에서 그는 주님의 메시지를 만난다. 그렇게 그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의 날, 성직자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인생의 매 순간, 모든 순간 그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다. 고민의 합당한 근거들은 있었겠지만, 우리는 뒤돌아서 후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는 나의 선택에 확신을 갖진 못하지만 여하튼 뭐든 하나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들의 집합일 수도 있겠다. 절대 정적일 수 없는 우리들의 삶에, 이 영화는 나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정신적 자만심’과 ‘진실된 사랑.’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 모두 정신적으로 자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인정한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욱 겸손하고 경청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선택에 자만하지 말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최선의 기준은 무엇이 될까? 아마도 그게 ‘진실된’ 사랑이지 않을까 싶다. 자아에 대한 사랑 또 타인에 대한 사랑. 예를 들어 진심으로 나의 내면을 내비쳐보고 있는지, 그 목소리를 듣고 용기 내어 행동을 이어가는지. 그리고 또 반대로 타인의 눈물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타인에게도 진심의 사랑을 내보일 수 있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멋있는 어른이 되기에 가장 크게 부족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아마도 위 두 가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올해는 조금 더 용기 있는 선택들로 가득 차길 노력해 본다. 그리고 또 진실된 사랑으로 마주해 본다. 내 삶도, 나의 가족도, 나의 연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