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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Oct 13. 2020

음악치료사의 코로나 극복기 8

슬기로운 호텔 생활의 실정

만족스러운 자가격리 필수품과 함께 슬기로운 호텔 생활은 순조로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나는 단순히 매일 아침 가슴 졸이며 불안 불안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출퇴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아주 다행이었다. 이 때는 뉴욕 MTA 대중교통이 잘 운행되지 않았다 - 지하철이 12분에 한 대 오면 다행이었다. 그만큼 수많은 대중교통 직원들이 감염되었었다. 출퇴근 대신, 매일 아침 세상 불편하게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출석체크가 아닌 병가 체크를 했다. 나는 꼬박 11주 동안 일주일에 5번, 56일 간 빠짐없이 전화를 해야 했다. 의사 노트를 이메일로 제출하면서도 매일 전화를 해야 한다는 상사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너무 아플 때는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며 상사에게 이메일이 왔다.


어찌 됐건, 드디어 휴식을 취할 줄 알았는데, 증상은 호전되는 듯싶더니 더 악화되었다. 열은 없었지만 오한으로 인해 호텔방 온도를 화씨 80도로 해두었다. 미각 후각은 여전히 돌아올 줄을 몰랐고, 입맛도 없거니와 먹으면 먹는 대로 설사를 했다. 근육통과 깨질듯한 머리 아픔은 계속되었고, 호텔로 오고 나서 평균 수면 시간은 겨우 두세 시간 정도로, 옆방에 누가 들어와 있는지에 따라 아예 잠을 못 자기도 했다. 때문에 하루 종일 피곤에 찌들어 쪽잠 같은 낮잠을 여러 번 자며 수면을 보충했다.


호텔 격리를 시작한 지 5일 차 때 챙겨 온 식량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입맛이 없었지만, 잘 먹어야 했기에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음식점은 배달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음식에 들어가 있을 조미료나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싶었다. 집밥이 먹고 싶었다. 미국에서 맺어진 소중한 가족인 정윤언니가 미역국, 소고기 뭇국, 갈비찜, 생강차와 간식까지 엄청난 양의 음식을 택시로 배달해줬다. 더불어 내 친한 친구 주영이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나를 위해 음식부터 한약, 비타민, 생활용품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주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나 지인이라도, 감염될까 조심하고 쉽게 방문하지 못하는데, 정말 내 생명에 은인이다. 비록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해서 슬펐지만,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식사 후 각종 비타민과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 그리고 아주 참을 수 없는 두통을 느낄 때엔 타이레놀을 먹었다. 원래 고통을 잘 참기도 하지만,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서 타이레놀도 최대한 멀리했다.



하루 일과는 아침 7시 반쯤 상사에게 병가 전화를 하고, 8시에 아침을 챙겨 먹었다. 비타민과 영양제를 먹은 뒤 후식으로 오렌지, 귤, 유자차를 꼭 챙겨 먹고, 과자랑 초콜릿도 많이 먹었다. 그러고 나서 침대에 누워 컨디션이 좋으면 기타를 연습했고, 아니면 넷플릭스로 시간을 보냈다. 점심은 12시, 저녁은 6-8시 사이에 먹고  코로나 실시간 현황을 확인하거나 코로나 관련 영상 및 자료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종종 친구들이나 달리기 모임 사람들과 줌으로 영상을 했고, 전화통화나 보이스톡을 했다.


증상이 심해지고, 한두 명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사람들과 얘기하고 소통하며 좋은 점도 있었지만, 마음이 상하는 일도 많았다. 예를 들면, 내 증상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혹시 코로나가 뇌에도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까라는 발언을 했었는데, 사람들 반응은 내가 너무 오버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런 사례가 나오지도 않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머리가 깨질듯한 고통으로 아무래도 연관이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코로나 경증인 젊은 20-30대 성인들의 뇌졸중 사례가 발표되었다. 이미 미각과 후각을 포함해서 신경계를 장악한 코로나가 뇌에 영향을 미치는 건 놀랍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증상과 몸의 변화를 더 집중해서 파악하고 기록했다.


건강함 빼면 시체인 내가 왜 이렇게까지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는지, 왜 다른 경증환자들이나 나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또래 동료 확진자들처럼 미각 후각 손상만 있지 않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곱씹었다. 호텔 격리는 전혀 슬기롭지 못했고, 암담했다. 날 위해 애써준 정윤언니와 주영이에게 너무나 고마웠고, 6주 동안 버티고 살아남은 내가 대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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