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나에겐 꿈이 없었다.
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영화가 있다. 꽤 오래된 영화 '비트'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를 듯하다. 영화를 본 지가 오래돼서 줄거리가 또렷이 기억나지는 않고 전체적인 느낌만 남아있지만 첫 문장만큼은 기억이 난다. 나야말로 꿈이 없어서, 몹시 공감했던 문장이니까.
어린 시절에는 꿈이 없어서 스트레스였다. 다들 꿈이라는 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주기적으로 조사했고, 미래에 되고 싶은 것 그리기, 하고 싶은 일 써내기 등등의 활동을 시켜댔다. 하지만 특별한 꿈이 없었던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거나, 누구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도록 무난한 직업을 그려냈다. 나도 모르는 꿈을 자꾸 묻는 것이 싫었다. 자신의 꿈에 대해 열정적으로 발표하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했다. 꿈이라는 건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사실 꿈을 단순히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정의한다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래희망이란 내가 어른이 되어서 하게 될 일이었고, '해보고 싶으면서 실현 가능한 일'인 셈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을 보며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배우가 꿈'이에요, 하기에는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도 현실성이 없어서 누구에게 이야기도 못했다.
그저 학교를 다녔고, 졸업하면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고,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난의 끝판왕 같은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무난하다는 건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회사원'이라는 가짜꿈이 생겼다. 다니게 될 회사가 돈을 많이 주는 회사면 좋겠다는 특별한(?) 희망사항도 생겼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었다. 비록 가짜꿈일지라도 어쨌든 이루었다.
하면 다 돼.
나에게 꿈이란 사치품이었다. 흥미와 적성. 물론 좋지. 그런데 어느 세월에 그런 걸 찾아. 아무 일이나 익숙해지면 할만한 거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흥미와 적성에 맞지 않는 분야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돈을 많이 주는 편인 회사를 택했다.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맞지 않는 일이란 없다고, 하면 다 된다고. 실체 없는 대상과 부단히 싸웠다. 사치부릴 여유 없는 자의 오기 비슷한 거였다. 맞지 않는 일에 나를 맞추려고 투쟁하는 느낌으로 회사에 다녔다. 내 생각을 믿고 다니다보니 익숙해졌고, 어느새 '일 잘하는 직원'이 되어있었다. 이것봐, 되잖아.
내가 이긴 줄 알았다. 그런데 가슴이 답답했다. 사실 늘 답답하긴 했다. 견딜만하다고 생각했을 뿐. 시간이 지날수록 일은 편해지는데 몸과 마음은 더 괴로워졌다. 이상했다.
그러다가 인정할 때가 왔다. 나는 졌다. 완벽하게 졌다. 흥미와 적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는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깨닫는 순간 회사를 나왔다.
무의미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흥미와 적성을 무시한 괴로운 시간은 나에게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주었고 어렸을 때 감히 꿈꿀 수 없어서 접어두었던 '꿈찾기'라는 사치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꿈은 찾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고 뚝딱 찾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꿈꾸는 법을 모르고 자란 아이는 꿈이 없는 어른이 된다. 이미 꿈이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꿈을 찾는 일이 어려웠다. 꿈이 없으니 꿈을 만들어야 하잖아? 그렇게 4년이 지났다.
나는 언제까지 놀 수 있을까?
나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게 될까?
-To be continued-
* 퇴사 후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 이야기는 브런치북 '어느 퇴사자 이야기'에 있으니 생략하고, 이번에는 꿈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써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