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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Dec 06. 2023

사장님, 출근부터 하세요.

초보 서점 주인의 일상1.


눈을 떴다.

....?

10시네?

서점 오픈할 시간이다. 나는 영업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라고 공지한 작은 서점의 주인이다. 그리고 작은 서점주인답게 혼자 일한다. 그런데 오픈할 시간에 잠에서 깨면 어쩌겠다는 걸까?




내 꿈은 서점 주인. 

그 꿈을 이룬 지금은 현실 서점 주인. 

꿈을 이루었으니 엄청난 현실이 펼쳐졌을까? 

매일매일 안 먹어도 배부르고 힘이 솟아서 대단한 일들을 해내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예상했으면서도 당황스러운 건 생각보다 더욱 제멋대로인 내 행동 때문이다.


대단한 일은 바라지도 않는다. 기본중의 기본, 출근시간도 못지켜서 내내 지각이다.


한량생활을 4년 반이나 했으니 갑자기 부지런해지기는 어렵지? 그렇지?

라고 어르고 달래고 이해해보고 하면서 지내온 시간이 벌써 몇개월.


더 큰 문제는 스트레스도 안 받는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왜 이렇게 가벼운거지? 양심 좀 챙기자. 쉬는 동안 현실감각이나 긴장감이라는 개념을 아주 잊어버린 거야? 스스로에게 잔소리를 해봐야 타격감 제로다.


이상한 점은 내가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회사출근시간 같이 공식적으로 지켜야 하는 부분은 물론이고 사적인 약속시간도 칼같이 지키려고 신경 쓴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것을 선호하는 타입이다. 그런데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내 사업장의 출근시간은 왜 안 지키는 건지 너무 이상했다.


나는 대체 왜
가게 오픈 시간을 마음대로 어기는가?



예상이유 1. 손님의 빈도


오픈한 지 오래되지 않은 작은 서점이 손님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특히 오전시간에는 대체로 한가하기 때문에 10시 출근 따위 안 지켜도 별 타격 없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상이유 2. 공간의 특성


지금 사용하는 서점 공간은 조금 독특하다. 단독점포를 임대해서 사용하는 형식이 아니라, 커다란 점포공간을 몇몇 사업자들이 나누어서 사용하는 샵바이샵(**샵인샵이랑은 살짝 다른 것 같아서 이름 지어 보았다) 형태다. 중앙의 공용공간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 각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내가 출근하지 않아도 공간이 열려있을 때가 있다는 뜻이다. 


대체로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열려있으니 내가 출근을 하든 말든 공간에 손님들이 들어올 수는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무인이용 안내문을 붙여놓고 마음 놓고 자리를 비우는 안 좋은(?) 습관도 생겼다.



예상이유 3. 마음의 평화


굉장히 좋은 것 같으면서도 안 좋다. 마음이 평화롭다는 것은 행복도로 보나 건강측면으로 보나 아주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너무 평화로워서 어떠한 상태도 수용하게 되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적당한 긴장감이 있어야 뭐라도 개선해 보려고 움직일 것 아닌가. 손님이 없어도, 책이 팔리지 않아도, 수익모델을 고민하긴 하는데 생각하는 족족 돈이 안될 것 같아도 불안하지가 않다. 이게 무슨 일이람.



예상이유 4. 내 가게니까


내 가게다. 내가 열고 내가 닫고 내가 운영하고 내가 책임진다. 그러니까 늦은 것도 내 책임, 늦어서 그만큼 판매를 하지 못한 것도 내 책임, 운영시간을 자꾸 어겨서 손님들의 신뢰가 무너져서 점점 더 안 오게 되더라도 내 책임.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주지 않으므로 마음이 딱히 불편하지 않다. 내가 책임지면 되니까.



적어놓고 보니 예상이유 1,2,3,4가 모두 적용되어 나의 자유로운 행동패턴을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손님과의 약속은 약속이 아닌가? 1:1 약속은 아니지만 불특정다수와의 약속. SNS와 검색포털에 버젓이 운영시간을 공시해 놓고 어겨버리는 건 그 내용을 본 사람들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닌가?


혹시 알아? 검색해보고 너무너무 오고 싶어서 일부러 시간 내서 왔다가 서점 주인이 출근을 안하는 바람에 실망하고 돌아간 누군가가 있었을지?




반성한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의 약속만 약속인 줄 알고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로 보고 있는지는 알 수도 느낄 수도 없어서 그랬다. 변명은 이제 그만. 약속을 잘 지키기로 마음을 다져본다.


실망하고 돌아갈지도 모를 마음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니까. 이미 누군가가 그랬다면, 미안합니다. 앞으로 잘해볼게요.


약속을 잘 지키려면 약속시간 변경이 필요할 것 같다. 단순히 공간이 오픈된 시간이 아닌, 내가 직접 서점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으로. 


그 동안 무인안내문만 믿고 너무 멋대로였다. 무인운영 안내문은 구구절절 공손하긴 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결국은 다음과 같이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아서 보시고 살 거면 입금하고 가져가세요.


아, 건조해. 

냉랭해.


나조차 무인샵을 선호하지 않으면서 무인으로 방치해 두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

오픈시간 새로 공지하면 매일매일 잘 지켜야지.

오픈시간 전에 도착해서 마음부터 넉넉하게 준비해 놓아야지.


어서오세요, 언제나 환영입니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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