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서점 주인의 일상2.
깜짝이야!
매장을 둘러보는 사람이 갑자기 눈에 보인다. 딸랑, 하는 출입문 방울소리 못 들었는데 언제 들어온 거지? 내가 진열해 놓은 책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살펴보고 있다. 어? 저기는 정리하다가 만 곳인데 저렇게까지 자세히 보면 민망한데. 헤헤, 저 책은 야심 차게 새로 들여놓은 책인데 관심 있게 보고 있네?
손님이 있건없건 관심 따위 없는 듯 피씨작업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의 온 신경은 서점을 방문한 손님에게 집중되어 있다. 계산하러 오면 카드결제기가 잘 동작되어야 할 텐데, 적절한 사이즈의 쇼핑백 재고가 있던가? 매장이 너무 조용해서 구경하기 부담스러운 건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손님이 책 하나 굿즈 하나 집어 들고 나에게 다가오더니 쭈뼛거리며 말한다.
- 이거...
말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수줍음이 많은 손님이군. 손님이 구매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하면 안 되니까 잽싸게 응답한다.
- 계산하시겠어요?
읏! 너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나?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말하는 것은 어렵다. 너무 따뜻하면 부담스러울 것 같고 너무 차가우면 불친절하다고 느낄 것 같아서 손님을 대하는 말의 온도에 신경을 많이 쓴다. 말 한마디 하는데 이렇게까지 신경 써본 적이 있었나 싶다.
- 감사합니다.
친절해 보이고 싶어서 싱긋 웃으며 인사한다.
- 안녕히 계세요.
손님도 빙긋 웃으며 인사한다.
- 안녕히 가세요.
기분 좋은 교류가 끝났다.
서점을 열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내가 이렇게까지 뚝딱거릴 줄이야. 손님이 오면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없어진다. 글을 쓰다가도, 그림을 그리다가도, 서류 작업을 하다가도 모든 집중력이 손님에게 모이면서 다른 작업들은 정지상태가 된다. 매장이 마음에 드는지, 둘러보기 편안한지,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신경 쓰지 않는 척하고 있으면 귀찮게 여긴다고 느끼지는 않을지, 내 시선이 매장을 향하면 부담스럽다고 느끼지는 않을지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행동하나 시선하나 고갯짓하나조차 조심스러워진다.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업무가 처음 이어서일까? 전혀 아니다. 과거의 화려한 알바 경력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아르바이트가 서비스직이었기 때문에 손님을 대하는 일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의 마음과 사장의 마음은 확연히 다른 모양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만들어낸 작은 가게. 그래서 방문한 손님들에게 '좋은 걸 주고 싶은' 마음이 유난히 큰 걸지도 모르겠다. 서점에 들어온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사도 좋으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럼 뭐 먹고 사냐고? 음... 다 방법이 있지... 않을까? 뭐든 진심으로 하다 보면 길이 보이게 마련이다. 옆길, 샛길, 갓길, 육교, 지하도 등등 만들면 된다.
이 또한 서점을 열기 전에는 몰랐다. 이렇게 착하고 따뜻한 마음을 진심으로 가득 머금고 일하게 될 줄이야. 나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야. 손해 보는 일 절대 안 하고 퍼주고 베푸는 거 귀찮아하는 사람이야.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내가 만든 나의 서점은 나를 자꾸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꼭꼭 눌러 담아놓은 착하고 다정한 나를 잡아 끄집어낸다. 이제 나와, 안전해.
- 정말?
- 그럼. 여기는 안전해. 네가 만들었잖아.
이상하다. 괜히 울컥한다. 나 안전하고 싶었구나. 안전하고 싶어서 차가워지려고 했구나. 안전하고 싶어서 날을 세웠구나.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겠다고 서점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곳을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좋아.
누구나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원래의 컨셉은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즐거움은 각양각색이고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안전한 느낌은 누구에게나 줄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까칠함도 없고, 어떤 부담도 없는, 무해한 공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기분 좋음'은 덤이다.
그러려면 언어의 온도 연습부터 계속해야겠군. 서점 운영하는 짧은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한 말 5 문장을 연습해 본다.
- 안녕하세요?
- 계산하시겠어요?
-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 안녕히 가세요.
-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적당한 온도로 말하는 건 어렵다. 이 어렵다는 느낌이, 말 한마디의 온도를 신경 쓰는 마음이, 오래갔으면 좋겠다. 그만큼 내가 진심이라는 뜻일 테니.
딸랑.
손님이 왔다.
안녕하세요,를 할까 말까. 지금 타이밍에 인사하면 부담스러워할까? 신경 안 쓰는 척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는 게 나으려나?
아, 또 시작이다.
-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