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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Mar 23. 2024

에필로그. 가이드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는지요?

안녕하세요, 가이드님.

잘 지내셨나요? 벌써 가이드님과 함께 베트남 다낭과 호이안을 여행한 지 2달이 훌쩍 지났네요.

처음에는 가이드님의 친절함과 싹싹함, 그리고 꾸미지 않는 소박하고 진솔한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외국에서 생활하는 한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젊은 나이에 객지에서 생활하는 것의 버거움과 현실적인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버스 안에서 퀴즈를 내서 맞히면 자그마한 선물을 주시는 등 소소한 이벤트를 준비해 주신 것도 감사했습니다. 자칫 멍 때리고 앉아있기 쉬운 패키지여행에서 소소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저 눈만 붙이고 있는 게 아니라, 설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장치였던 것 같아요. 가이드님의 삶의 이야기도 공유해 주시면서 저희들과 친밀감을 나누려고 했던 게 돋보였습니다. 베트남 다른 도시에서는 한국어 선생님을 하다가 그만두고 다낭에 와 업계 분들의 텃세 때문에 낮은 직급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까지 tmi 정보를 알려주셨죠.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베트남 여성분과 결혼도 하고, 다른 베트남 도시에 정착해 카페를 차리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했던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매일 일정 마치고 들어오면 그날 찍은 수십 장의 사진을 보내주시면서 따스한 인사말을 보내주시는 것도 여느 가이드와 다른 좋은 점이라고 느꼈습니다. 또 여행이 끝날 때는 영상까지 편집해서 선물로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었죠. 아, 정말 우리 가이드님이 마음이 좋으신 분이구나, 우리를 많이 신경 써주시는구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기왕이면 좋은 분 만났다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하는 게 좋으니 좋은 면을 많이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크게는 아버지 생일 축하를 현지에서 멋지게 할 수 있게 준비해 주신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 전날 찍은 우리 가족사진으로 케이크에 토퍼까지 준비해 주시겠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길래 제가 놀라자, 한국에서 파티플래너 일을 했었다고 하시면서 흔쾌히 호의를 베풀어주시겠다고 하셨지요. 케이크와 작은 꽃다발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화려한 과일바구니까지 준비해 주셔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바쁜 일정 때문인지, 약속했던 토퍼는 없었지만요.


사실 이때까지는 여러 가지 감사한 일들을 많이 해주셔서 좋기도 했지만, 슬슬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원래 대가 없이 뭔가를 받음으로써 생기는 부채감을 싫어하는 편이라, 이 즈음부터는 약간 부담스럽기 시작하더라고요. 누군가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을 때 정당한 비용을 치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하면서 돈 벌기 시작한 이후로 철칙처럼 지키고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어찌 되었건 마지막에 가이드 팁을 조금 더 드리면 되겠다 생각했기에 일단 그냥 넘어가게 되었죠.


하지만, 여행 마지막 날 의무적인 쇼핑 투어가 시작되고, 침향 판매 센터에 들렀을 때부터 뭔가 가이드님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패키지 가족들을 난처한 상황에 빠뜨려 놓고, 너무도 의연하게 강사님과 한 통속이 되어 침향을 추천하는 모습을 봤을 때, 그제야 저는 뒤에 벌어질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여행 초반부터 우리에게 작은 물질적 심리적 호의를 베풀면서 적립금을 쌓아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더라고요. 침향의 가격은 한 사람 여행 비용 이상이었으니, 혹시 가이드님의 친절함 전략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아주 좋은 셈법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침향을 포함한 판매품들이 정말 좋은 상품이어서 추천했을 거라고 저는 아직도 믿고 싶습니다.


헤어지기 직전 한국에 도착하면 안전 문제 때문에라도 꼭 카톡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하셨지요. 너무너무 피곤하고 안 보내도 될 것 같았지만, 저희를 걱정하며 호소하던 모습이 떠올라 잘 도착했다고 남긴 메시지를 한 달 넘게 안 읽으시더군요. 이대로 '안읽씹'일까 궁금해서 그 뒤로 몇 번 더 확인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읽긴 읽으신 걸요.(혹시 잘못 누른 건 아닐까 싶었죠.) 저희 어머니가 꽤 애타게 기다린 여행 갈무리 동영상은 감감무소식이 되고 말았네요. 사실 기대는 안 했습니다. 당신에게는 시즌 내내 알아서 베트남으로 찾아오는 수많은 다음 패키지 팀과 어르신들이 있을 테니깐요. 이해관계가 확실한 상대에게 필요한 만큼 투자하는 게 속물적이고 돈에 눈먼 인간들의 특징이니깐요. 그저 돈만 벌고, 사람 같은 건 카톡에서 차단해버리고 나면 아무 상관도 없는 게 돼버리는 게 이 시대니깐요.


진짜 같은 가짜가 더 무섭다고들 하지요. 또 요즘은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라는 게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이겠지요?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남을 등 처먹지 않고 성실하게 돈 벌어 부자 되는 시대는 한참 지났잖아요? 당신이 되고 싶다던 카페 사장의 꿈도 혹시 만들어진 예쁜 포장지는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저릿한 안타까움이 몰려옵니다.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나의 꿈마저도 가짜로 준비해 팔아야 하는 세상이라면, 아마도 그건 아저씨 개인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이 세태가 문제인 게 분명할 겁니다.


아저씨가 추구하는 돈벌이 전략이 얼마나 살림살이가 빠르게 나아지는 방법인지 알 길은 없으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의뭉스럽게 남아버린 당신이 불쌍하고 안 됐습니다. 그런 성공담을 쌓아 올린 사람은 그 길만이 정답이라고 굳게 믿고, 다른 가치들을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잃어버립니다. 무엇보다 저에게는 당신은 신뢰할 수 없는,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유형의 사람으로 오래도록 남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걸 깨닫게 해 주셔서 고마워요. 굿럭을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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